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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Apr 12. 2016

 불투명한 날의 오름_바리메오름

이름이 낯선 바리메와 족은바리메

토요일의 해맑음에 연이어 하늘이 푸르러지기를 기대하는 마음은 욕심이었나 보다.

잠깐 창가로 비치는 파란 하늘이 어느새 찌뿌듯한 뿌연 하늘로 바뀌어 간다. 드넓은 풍광을 바라볼 기회는 잊기로 했다.


오늘의 맑음이 내일에 대한 희망과 동일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과거의 흔적이 미래에 영향을 줄 수는 있겠지만 그대로 연결되리라는 생각은 오만한 착각임을 다시 한번 절감한다. 날씨에 대한 기대 역시 마찬가지다. 기대를 내려놓아도 오름이 어디 가는 것도 아닌 그대로인데 안쓰러워하는 것은 나 혼자만의 심정일뿐이다.

어제 일로 다녀온 어음리에 바리메오름이 있다. 오히려 노꼬메오름보다 가깝다. 그냥 옆에 있는 오름이었구나. 지도를 보고 알았다.


지난 5월 노꼬메에 와보고는 오랜만에 이 근처로 오는 서쪽 오름이다. 물론 얼마 전 다녀온 저지오름도 있었지만 왜 그런지 오랫만이라는 생각이 먼저 앞선다. 


제2산록도로 일터다. 평화로에서 빠져나간 길에는 어음과 납읍리 대신 한라산 쪽을 향하도록  이정표가 이어져 있었고 바리메오름이라는 이정표 대신 '함박재농장 4km'라는 돌에 새긴 이정표만 방문객을 기다리고 있다.


안쪽 목장길로 들어서자 곳곳에 사람들이 보인다. 이맘때 전혀 사람이 없을 법한 곳에 차가 서있고 사람들이 서성이는 이유는 한 가지다. 고사리 시즌이다. 나 역시 저 무리에 동참하고 싶지만 난 고사리가 어찌 생겼는지도 잘 모른다. 


여러 번 제주 고사리를  먹어본 적이 있지만 제주 고사리 맛은 특별하다. 함께 다닐 사람이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고사리를 꺾으러 갈 생각을 하는 자신이 순간 우습게 느껴지기도 했다. 일단 같이 갈 사람이 없는 셈이고...


여전히 사람을 사귀는 일은 쉽지 않다. 또한 관계를 유지하는 일이란 웬만한 기회가 없다면 섣불리 다가서기 쉽지 않은 일이다. 어느새 주말에 혼자 여행을 다니는 일이 익숙해졌다. 문제는 이리되면 갈 수 있는 곳과 느낄 수 있는 장소가 한정된다는 안 좋은 점이 추가로 생긴다.

안타깝게도 바리메오름은 숲으로 우거진 오름이다. 숲이 우거져 있다고 나쁘거나 할 이유는 없다. 일단 노꼬메라는 이름과 함께 바리메라는 생소한 이름이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지 않을까 기대가 생긴다.


그 기대가 사라졌다. 내가 아는 '바리' 그대로의 의미다. 절에서 공양할 때 쓰는 밥그릇인 '바리'처럼 분화구의 모습이 생겼다 해서  바리라고 부른단다.메는 뫼의 변형이다. 사실 분화구가 다 그 모양이 그거 아닌가? 원형의 분화구이거나 한쪽이 터져버린 말발굽형이거나 큰 차이는 없는 셈이다. 암튼 분화구의 모습을 보고 바리를 연상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의 상상을 벗어나 있는 옛사람들의 작명에 박수를 보낸다. 


2km 넘도록 목장길들을 따라 들어가 보니 나름 잘 준비된 주차장이 보인다. 제주 오름을 오르면서 의외의 결과가 종종 이렇다. 꽤나 유명한 오름이라고 찾아가 보면 입구는 그럴듯하지만 주차장이 변변치 않은 곳이 있는가 하면 산속 깊이 들어왔다고 생각했는데 옹색하리라는 추측을 벗고 제대로 된 주차장과 넓은 입구가 준비된 곳이 있다. 바리메 오름은 두 번째에 해당된다. 


표시판을 보니 족은바리메도 바로 옆에 붙어 있다. 바로 옆에 있어 이름 붙이기 쉬워 '작은'이라는 이름을 준 모양이다.  


오름 중에는 이처럼 쌍으로 이름이 붙여진 경우가 종종 있다. 다랑쉬와 아끈다랑쉬가 그렇거니와 노꼬메와 족은노꼬메, 바리메와 족은바리메, 노로와 족은노로, 그리고 삼 형제 오름도 있는 것을 보면 그냥 누군가 조금 낮으니 '족은'으로 하고자 한 제안에 별 이의 없이 받아들였으리라 싶다.


주차장에는 차가 꽤나 서있다. 올라가면서 혹은 정상에서 만난 사람들에 비해 자동차수가 제법 많다는 느낌을 준다.

바리메는 시작부터 곁을 주지 않는다. 역시 직선적이다 못해 숨을 코앞까지 내몬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초반부터 숨을 헐떡이게 하고 가슴을 부여잡고 올라간다.


자동차로 치면 등판능력의 한계시험이다. 내 등판능력이 이토록 약한가를 시험하듯 첫 시작의 발걸음부터 전혀 여유를 주지 않으며 몰아친다.


중간중간 약간 옆으로 쉬어가는 길이 있기는 하지만 느끼는 고통에 비하면 뒤돌았을 때 돌아오는 보상은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한 풍경이다. 멋진 서쪽의 넓은 중산간과 바다를 보여 주는 각도가 아니다. 더구나 날씨 탓인지 뿌연 하늘은 감동도 희석시키는 모양이다.

어디쯤 왔나 궁금해하는 찰나 좌우로 갈라진 탐방로 표지판이 나온다. 그렇다면 여기부터는 능선이라는 이야기다. 약간의 힘겨운 발걸음을 몸으로 받으며 정상에 오르자 벤치 하나가 날 기다린다. 누군가 이미 쉬고 있다. 초로의 신사인 듯 한 남성분이 홀로 힘겹게 앉아 숨을 헐떡이고 있다. 저분은 인생을 즐기러 이곳을 찾은 것일까 아님 시간을 보내기 위한 수단쯤으로  이곳을 찾은 것일까. 문뜩 저 사람도 나를 보면서 비슷한 생각을 할 것 같다는 감이 밀려온다.


정상에서 보여준 경치에 대한 느낌은 흐린 날씨로 인해 퇴색됐다. 날이 좋으면 중산간의 탁트인 풍경과 비양도까지 쉬원하게 보일텐데 오늘은 그 호사를 허락하지 않았다. 오래 버티기에 괜한 초조함이 들어 다시 발걸음을 옮기려 벤치를 박차고 일어섰다. 또다시 능선은 숲 속으로 이어지며 한 바퀴를 돌고 돌아 깊이 패인 분화구를 보여준다. 이곳 분화구는 한쪽의 정상이 극도로 높은 모양새를 하고 있다. 

내려온 발걸음을 쉬지 않고 그대로 족은바리메로 향했다. 주차장에는 두 팀이 돗자리를 펴고 식사와 휴식을 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들에게 낯선 이방인으로 서로를 응시하는 시간을 짧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족은바리메로 바로 발걸음을 옮겼다. 


안내판을 살펴보니 이곳은 마을의 관할이 다르다. 바리메는 어음리 소속이었는데 족은바리메는 상가리 소속이다. 이곳 어딘가부터 마을의 경계가 나뉘는 모양이다. 오름의 관리 수준을 보니 족은 바리메가 조금 난 듯하다. 그래 봐야 오십보백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약간의 차이는 느껴진다. 


갈림길이 나온다. 어디를 택할까 역시 왼쪽이다. 자연스러운 선택 이리라 본다. 오름의 정상을 쳐다보니 마땅히 높다거나 정상의 조건이 좋아 보이거나 하지 않는다. 계속되는 숲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풍광에 집중하기보다는 세세한 것에 집중해 보기로 한다. 비로소 풀이 보이고 꽃이 보인다. 이끼가 잔뜩 낀 바위도 보이고 새록새록 돋아나는 새순과 연두색의 잎들이 곳곳에 널려서 제대로 된 봄기운을 전해주고 있다. 이것을 모른 채 그냥 지날 뻔했다. 너무 겉모습과 허세만을 찾으려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돌과 풀이 이렇게 이쁠 줄은 생각지 못했다. 


한참을 걷다 보니 헨젤과 그레텔이 숲 속에 버려졌으면 딱 이랬을 것 같은 숲 속의 모습이 보인다. 넝쿨과 나뭇가지로 겹겹이 둘러싸인 숲 속. 해가 지면 이곳은 어떤 느낌일까. 궁금해졌다. 무서우리라. 나 자신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을까.

이런 모습이 봄을 알리는 풍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돌과 이끼와 풀이라...



내려오는 길  목련이 만개한 한 그루의 나무를 발견했다. 그 나무만 느지막한 시절에 꽃을 피우고 있다. 좀 더 가까이 보기 위해 아래로 내려가니 그곳에서는 눈에 띄지 않는다. 아까 그 자리에서만 잘 볼 수 있다. 마치 신기루 같은 느낌의 한 순간이다. 그나마 얼떨결에 사진을 찍어 논 것이 다행이다. 그 순간을 놓치면 다른 기회가 오리라는 기대와 달리 오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현재의 이 순간이 더 소중한지도 모른다.


그 순간을 다시 간직하기 위해 걸어온 길을 잠시 생각하며 차를 향해 걸었다. 무미건조한 하루일지라도 그 의미는 쌓여 갈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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