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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Apr 13. 2016

또 봄이 기다려지는 이유_청보리밭

알작지를 지나 이호태우에서라도 보고 싶은 푸르름

봄날에는 어딘들 아름답지 않은 곳이 있으랴.

하물려 사람조차 봄날 같은 나이에는 더더욱 그러하리니...


4월 들어 봄꽃과 함께 가장 머릿속에 먼저 떠오르는 장면은 청보리밭이다. 

출렁이는 보리의 푸르름이 넘실되는 순간들이 왠지 마음이 움직이는듯 괜히 설레이는 순간들이 떠오르는 모습때문이다. 더구나 어릴적 기억들을 자꾸 되새기게 하는 힘까지 지니고 있으니 더 생각난다.

 

마음이야 가파도를 넘어 가보고 싶지만 혼자서 가기에는 너무나 짙게 감성을 자극할 것이 뻔해 누구와 함께가 아니라면 포기하기로 했다.


대신 이호태우 옆 알작지까지의 청보리밭은 개발의 광풍 속에서 그나마 아직 남아있는 보리밭이려니 하고 찾아 나선다.


어릴 적 한하운 시인의 보리피리를 읽으며 무슨 생각으로 저 같은 시구절을 지었을까 궁금해 했었다. 그 궁금증은 아직도 여전한데 지난해 제주의 청보리밭을 처음 보고는 그 시구절이 가장 먼저 떠올랐고 그 느낌을 이제서야 이해할 듯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그 시구절이 들린다.


보리 피리 

보리 피리 불며
봄 언덕
고향 그리워
피 ― ㄹ 닐니리

보리 피리 불며
꽃 청산
어린 때 그리워
피 ― ㄹ 닐니리

보리 피리 불며
인환의 거리
인간사 그리워
피 ― ㄹ 닐니리

보리 피리 불며
방랑의 기산하(幾山河)
눈물의 언덕을 지나
피 ― ㄹ 닐니리


무엇을 느끼 든 어떻게 다가오든 그냥 보리밭에는 어울리는 시구절이다.

외도동 마을에는 이미 주택건축의 광풍이 가득 차고 보리밭 한가운데까지 그 영향력을 강력히 뻗치고 있었다. 점점 보리를 심을 특별한 이유가 없을게다. 주택지로 사용하면 훨씬 효율이 좋을 테니까. 보리밭이었던 자리에 빌라와 공동주택이 들어서고 몇몇 밭들은 특별한 작물을 심어논 것 없이 방치되어 있는 바닷가. 


바람이 있으면 흔들거리는 보리를 벗 삼아 가슴마저 하늘거릴테지만 오늘따라 바람이 없다. 길가에 띄엄띄엄 피어난 유채꽃만이 보리밭을 지켜보는 듯하다.


몇몇 보리밭을 찾아 걷는 사람들과 연인들, 예전부터 추천해주던 관광지로서 알작지와 이호태우 사이의 보리밭을 보러 왔는지 렌터카가 이곳 밭길 사이를 헤매이고 다닌다. 더 이상 이곳 보리밭을 소개할 일은 없을 것 같다. 아마 내년이면 더더욱 줄어들 것은 자명한 일이다.

보리밭 사이로 보이는 이호태우의 상징물인 붉은색과 흰색 말 등대가 보인다. 멀리 도두봉과 함께 그나마 제주의 정취를 보여주는 모습. 그것이 아직은 위안이 되는 거리, 하지만 개발의 확장 속도를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인 것이 자명하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보리피리 불며 피~닐리리... 그 느낌을 가슴에 계속 품고 싶다. 수십 년을 한하운 시인의 시구절을 간직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발걸음을 자연스럽게 이호태우로 옮긴다. 지지난해 겨울 제주에 내려와 맞는 첫해 폭풍우 치듯 몰아치는 파도에 순간적인 통쾌함을 느꼈던 자리다. 그 자리에 여전히 사람들은 차를 마시고 해안도로 확장공사는 진행 중이며 서핑을 배우는 사람들은 아직 차가운 날씨에도 바닷속에서 열심이다. 


지금 그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그 입술은 내 가슴에 있어

...<중략>...

사랑은 가도 과거는 남는 것 ...

내 서늘한 가슴에 있건만


박인환 시인의  <세월이 가면>이라는 구절이 입에서 중얼거려진다. 제목이 맞나? 

내용은 두서 없지만 암튼 세월은 가도 기억은 가슴에 남는 것.

내년 이맘때면 또 다른 봄을 맞을 것이고 그때도 청보리밭을 여전히 기억하리라.

그 너머에 있는 붉은색 목마가 들판을 뛰어놀 꿈을 꾸며...

작년 이맘때 비슷한 풍경의 느낌은 이렇게 달랐습니다.

벌써 일년이 지났지만 그 감흥은 여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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