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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Nov 08. 2020

2020남도 1_100년의 무게가 담긴 해남 해창주조창

술은 사람들의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술이 사회적으로 수없이 많은 문제의 근원인 경우가 많음에도 여전히 술은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음식이기도 하고 걸작이라고 일컬어지는 경우는 더할 나위 없이 칭송의 대상이 된다. 

유럽의 와인이 그렇거니와 한국에서도 각 지역별로 다양한 맛을 내는 명주들을 수도 없이 출시하고 있으니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전국의 술도가만을 찾아다녀도 한세월 즐거운 방문이 아닐까 싶다.


사실 어릴 적 집에 손님이 오면 주전자 하나를 들려 받고 막걸리 받아오는 심부름을 종종 했던 기억이 난다. 어림잡아 생각해보아도 1970년대 초반쯤이었을 테다. 워낙 어린 시절이라 단편적인 기억이긴 해도 돌아오는 길에 주전자 입구에 입을 대고 몇 모금씩 막걸리를 마셨던 기억도 함께 떠오르는 것을 보면 어린 시절부터 술을 싫어했던 것은 아닌 모양이다.


나름 동네마다 있던 양조장들이 하나둘씩 사라져 가

고 지역별로 술 브랜드가 정해지면서 한동안 막걸리는 잊힌 술이었던 게 사실이다. 물론 여러 주조장들이 공동브랜드를 내기도 하고 지역마다 특색 있는 탁주를 만드는 일이 어느 순간 예전의 문화를 되살리는 일과 궤를 같이하면서 지역마다 특색 있는 술 브랜드는 지역 문화의 중요한 자원이 되기도 했다.

내 개인적인 경험과 기억에 의하면 탁주로는 이동막걸리든, 조껍데기 막걸리든, 산수유 막걸리든 여러 가지가 있었고 각 지역의 소주 역시 명주의 반열에 이름을 새기고 있다. 내가 스스로 가장 맛있는 막걸리라 평가했던 제주막걸리까지 소주, 막걸리 등의 시장은 백가쟁명인 듯 곳곳에서 새롭게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수제 맥주와 같은 맥락에서 전통 술은 이제 삶의 중요한 콘텐츠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겠다.


해남을 찾으며 방문하게 된 해창주조창은 내가 경험한 사소한 경험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이 100년이 된 주조창이라는 점에서 한껏 점수를 주고 싶다. 나중에 사서 한 모금 먹어본 막걸리지만 제대로 먹어도 되는 몸 컨디션이라면 극찬을 마다하지 않을 맛을 내고 있다. 100년의 세월이 그냥 지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남을 방문하기도 힘들었지만 가장 먼저 들른 이곳은 내가 방문한 시점에도 여전히 택배와 배송 박스를 싸느라 여념이 없었다. 주조창을 찾는 손님이 적지 않은 듯 내가 도착하자마자 주인장은 반갑게 맞이하며 술에 대해 아주 간략한 설명과 함께 택배가 가능하고 먹어본 후 전화주문이 가능하다는 직접적인 매출 확보 마케팅에 나섰다. 잘 짜여진 오랜 경험의 장사 솜씨다.

하지만 이 주조창이 인상적인 이유는 나름 특색을 지닌 널따란 정원이 있고(요즘 들어 정원이 눈에 훨씬 자주 들어온다) 그곳을 활보하며 지내는 다양한 고양이 들이다. 흡사 정원과 고양이들을 보는 순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먼저 떠오르고 고양이가 아닌 토끼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더구나 그림처럼 피터 래빗과 가족들이 생각나는 것은 내 착각이기는 하겠지만 아주 틀리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이를 아는지 여전히 고양이들은  숲 속의 생활을 즐기는데 여념 없이 나를 아랑곳하지 않는다. 아니 진정 고양이 왕국을 방문하면 이런 비슷한 느낌이지 않을까.

고양이를 구경하느라 내가 와있는 곳이 주조창이라는 점마저 잊게 된다. 100년의 세월 간 이 정원을 꾸몄다고 생각하니 소쇄원이나 다른 정원만은 못해도 나름 운치와 기품이 깃들어있는 느낌이라 크지는 않아도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한가운데 작은 연못이 잇고 둘레로 다양한 나무들이 제각각 세월의 연륜을 안은 채 특색 있게 자리하고 있다. 실제 정원이 아름다운 주조창이라는 정원 안내도의 글귀를 고려하면 나름 이유가 있는 설명이라는 점을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설명에는 따르면 이 정원에는 50가지 정도의 수목이 자라고 있는 셈이다. 나무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아무래도 중앙에 마치 껍질을 벗겨놓은 듯한 나무다. 미끈한 구렁이를 연상케 하는 이 나무가 영산홍이란다.  과연 그 붉은색 이쁜 꽃을 피우는 나무라니 믿어지지가 않는다. 

정원 한 구석에 암행어사 백파 신헌구 선생의 공덕비가 세워져 있다. 무슨 글씨가 새겨져 있는지 얼른 봐서는 알 수 없는 노릇이나 안내문의 내용을 보면 5년간 이 지역에서 암행어사 역할을 하며 떠날 때 전답을 마을에 주고 간 것에 대한 공덕비라고 기록되어있다.

글씨에 대한 흔적만 남아있으니 사실 그 내용이 어떤지는 잘 알 도리가 없다. 


다른 한 비석은 오래지 않은 것임을 금세 알 수 있다. 글귀를 읽어보니 서글픈 민족의 역사를 담은 내용이다. 일제시대 태평양전쟁 때 세워졌던 황국신민의 서사 탑이다. 당시 황국신민으로 살아야 했던 사람들의

마음가짐을 강요하는 맹세인 셈이다. 주인장은 전쟁 후 70년 후 정원의 연못에서 파낸 석물로 다 같이 반성하고 참회하는 지표로 삼기 위해 보존하기로 한다며 세워둔 의미를 써넣었다.

별로 유쾌하지는 않은 내용이지만 이런 내용을 직접 본 경우가 처음인지라 당시의 사정을 가늠케 해준다.

내용인 즉 이렇다.

황국신민의 맹세
1. 우리들은 대 일본제국의 신민입니다.
2. 우리들은 마음을 합하여 천황폐하에 충의를 다하겠습니다.
3. 우리들은 괴로움을 참고 단련해서 훌륭하고 강한 국민이 되겠습니다.


이 글귀를 보면서 글자 몇 자만 바꾸면 국민교육헌장이나 박정희 정권 시절 겪었던 사회적 분위기와 별다르지 않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박정희가 만주군관학교에서 일본 교육을 받은 티가 알게 모르게 우리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데까지 생각이 이르게 된다.

사실 정원과 고양이를 구경하느라 정작 술도가의 누룩을 만들어서 술을 만드는 장면은 뒤쪽을 돌아가서야 볼 수 있었다. 누룩을 띄워서 말리는 작업 중이라는데 술 주조 과정을 모르는 나로서는 그러려니 하고 수긍할밖에 없다.

한 바퀴를 돌아 제자리로 오면서 작은 공간이지만 남도의 분위기가 몸에 조금씩 적셔가는 느낌을 받는다. 술 2병을 사들고 털래털래 주조창을 나온다. 먹어보고 주문하리라 했지만 나는 막걸리를 먹으면 안 되는 몸 상태인지라 나중에 한 모금 얻어마실 수밖에 없었으니 맛은 기가 막히다고 표현을 해도 과언이 아닌 듯싶다.

이런 재미로 주조창을 방문하는 일이 즐겁다는 생각. 그리고 서울 근교가 아닌 남도 한참 아래인 해남의 어딘가라는 생각이 정겨움을 배가시킨다. 남도의 즐거움은 사사로운 곳에도 배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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