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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Nov 08. 2020

2020 남도여행_프롤로그_내가 남도로 간 까닭은?

쉬엄쉬엄 가면 될게라고 생각한 게 어쩌면 평생 못가 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변했다. 그보다는 초조함이 앞선다. 이제나 저제나 하기를 몇십 년이 됐던가. 물론 남도를 다녀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조금 더 깊게 여유롭게 혹은 온전히 목적지 부근을 헤매며 경치와 음식과 건강을 한꺼번에 목표로 삼아서 다잡아 보리라는 마음가짐을 가질 여유는 없었다.


제주에서 가는 남도는 사실 실없다. 배를 타고 가는 방법도 제주-완도, 제주-우수영, 제주-목포, 제주-여수 등 다양한 루트가 있지만 그곳에서 내려 차 없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하물며 대중교통을 통한 이동이라면 한세월이 걸린다는 느낌이 맞을 정도로 시간을 구불구불 돌리는 느낌이다. 인생을 살면서 언제부터 모든 이동을 승용차로 해왔다고 다른 선택을 하지 않는 것인지 모르나 왠지 대학 때나 젊은 시절처럼 하염없이 버스에 몸을 싣고 목적지를 찾아 헤매는 일들에 자신감이 생기지 않는 현실이 되었다. 시간이 흐른 때문이라고 이유를 붙이기로 했다. 내 탓이 아니라 세월 탓이라는 말이다.


몇 년 전부터 가을에는 꼭 한번 이상 남도를 방문하기로 결심했다. 우선 제주의 가을이 내가 알던 가을 하고는 꽤나 다르다는 이유 때문이기도 하고 다른 하나는 단풍과 계곡의 느낌을 아무래도 제주에서는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언제부터인가 제주의 오름과 숲을 보다 보니 어린 시절부터 몸으로 알고 지냈던 육지의 숲과 산, 특히 가을의 단풍 즈음한 고즈넉한 분위기가 그리워진 이유에 기인한다. 최소한 제주에서 남도를 접근하는 일이 서울서 다니는 것에 비하면 훨씬 용이하다는 것을 알아버렸기에 쉽게 결정할 수 있게 됐다.


서울서 다니는 남도길은 사실 고행의 길이다. 우선 자동차로 이동하려 하면 한세월이 걸릴 뿐 아니라 오는 동안 지치고 시간 허비가 많기 때문에 정작 남도에서 느끼는 기쁨의 시간은 그리 크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서울로 돌아갈 때, 대부분 주말이었지만 하염없이 고속도로에서 보내야 하는 귀경길의 아픈 느낌이 가시지 않기에 남도는 접근하기 어려운 난공불락 같은 요새와도 같았다. 그 요새를 비행기 타고 광주로 오면 쉽게 이동할 수 있기에 이때다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남도가 주는 길에 대한 낭만이 아직 가시지 않은 채 살아왔다. 어린 시절 어찌어찌해서 남도를 다니던 시절. 아스라하면서도 나른한 남도의 느낌을 지울 수 없었기에 그 길들을 다시 가보고 싶었을 뿐이다. 남도의 문화가 주는 여유 역시 그 이유에 한몫을 하기도 했다.


작년까지는 단풍이 절정일 때 한 곳을 방문하는 길을 택했다면 무조건 남도의 길을 걸으리라는 결심으로 시간을 정하게 됐다. 물론 가을 여행을 가겠노라는 내 한마디에 열일을 체 쳐 놓고 달려드는 집사람이 있었기에 빼도 박도 못하게끔 시간을 내고 일정을 잡고 숙소와 비행기, 렌터카를 예약하는 일들이 하루아침에 끝나버리고 말았다. 이제는 바로 떠나서 아무도 모르게 평일과 주말을 겹치면서 평소에 가기 힘든 곳을 찾아 헤매기로 했다. 


가장 중요한 선택은 우선 하나 남도의 백반 맛집을 다녀보리라는 결심이었고 두 번째는 디폴트 여행지로 달마산과 미황사가 있는 달마 고도 길을 걷는 코스를 무조건 계획에 포함시키리라는 결심에 근거한다. 나머지는 부수적인 결과물로 달마고도 길을 시작으로 남도의 다양한 길을 걸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게 되었다. 혹시 아는가 남도를 비롯한 둘레길만을 헤매다 책이라도 한 권 나올지 말이다. 


비행기는 공교롭게도 너무 실없이 이륙 후 바로 착륙 모두가 바뀌기에 자동빵처럼 이어지는 비행기 내 수면이 전혀 이루어지지 못했다. 나는 거의 예외 없이 1시간 비행기를 타면 50분 정도는 잠으로 신체리듬을 회복하는 비급을 늘 실천하곤 했는데 광주행 비행기는 이를 실천할 방법이 없다. 바다를 건너기가 무섭게 바로 착륙 모드로 전환하기에 비행기가 최고도로 올라가서 기류를 타고 이동할 기회도 얻지 못하는 것이다. 국내선의 경우 대부분 20분 정도전에 'cabin crew!, prepare for landing'이라는 기장의 말을 들으면 여지없이 잠깐 깼다가 천천히 잠을 깨는 것이 습관화되었는데 광주행은 이 짧은 순간의 기쁨을 앗아가 버렸다.


비행기가 뜨자마자 승무원들에게 착륙 준비를 바로 종용한다. '언제 자냐고, 언제? 이제는 광주공항도 익숙하다  한 두 달에 한번 정도는 오는 느낌. 김포공항이나 제주공항처럼 북적대지 않는다는 느낌을 갖고 있기에 호젓함에 더 가까운 공항인 셈이다.


이제 이륙 후 바로 도착했으니 스케줄대로 움직이면 된다. 스케줄 짜기 쉬워졌다. 맛집 검색과 주변 관광지 검색이면 거의 모든 지역 관광지가 포함된다고 보아야 한다. 이제 그렇게 가자. 무엇이 먼저일까. 또 남도여행이 어찌 진행될 것인가 기대감이 렌터카 전 좌석에 쫙 가라앉는다.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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