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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Nov 14. 2020

2020 남도여행 2_두륜산의 기운, 해남 대흥사

가을이 한창 무르익는 느낌을 줄 때 남도를 방문하는 일은 언제나 가슴설레이는 일이다. 해남이라는 지명을 스스로에게 건네줄 때 역시 그랬고 그 방문지가 대흥사라는 것은 언제부턴가 이름은 들어 유명했으나 개인적으로는 잘 모르는 유명인을 만나보는 심정과 같다.

천년고찰이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지만 어떤 모습일까 하는 기대는 사실 절만의 느낌만으로 전해지지 않는다. 절을 평가할 때 어쩔 수 없이 같이 평가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 절이 어느 장소에 자리 잡고 앉았는가 하는 점이다.

월출산과 두륜산이라는 영암과 해남의 유명한 산세들을 익히 들어봤지만 실제로 발길을 닿아본 경험은 전혀 없었다. 그러기에 대흥사가 두륜산 자락에 자리를 잡았다는 이야기는 평지에 나름 우뚝 솟은 산세에 소담하게 자리 잡은 느낌을 상상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결론부터 이야기자 하면 나의 상상은 언제나 너무나 실없고 뻔하다는 것 때문에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만다는 것이다.  천년고찰이라는 느낌이 오히려 늙고 쇠락한 느낌을 주거나하는 선입견을 완전히 없앤 상태에서 초입으로 들어가는 심정은 스스로 자책의 바위를 앉고 굴러가는 것과 비슷했다.

 

우선 두륜산이라는 해남의 산이 이렇게까지 악산일 거라는 점을 생각하지 못했다. 놀라운 반전이다. 남도에서 사는 사람들은 '왠 뻘쭘한 헛소리를 하는겐가?'라고 탓할 수도 있겠지만 잘 모른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아무런 상상을 할 수 없다는 것이고 기껏해야 자기가 본 대로의 상상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을 의미한다.


두륜산 초입의 도착은 굉장히 넓은 주차장과 입구로 인해 마치 고등학교 시절 설악산의 숙박동에 도착한 듯한 기분을 들게끔 혹은 전국의 명사찰 중 선운사나 계룡산 동학사 입구쯤에 도착한 느낌과 흡사했다. 나쁘게 이야기하면 모든 대중들의 수요를 다 받아들여 이미 오래전부터 자리를 잡고 있는 능구렁이 같이 여유로운 자태를 뽐낸다는 다소 부정적인 이미지를 생각나게 했다. 너무나 멋지면 그런 생각이 절로 든다. 내가 오늘 보았을 때 이렇게 멋진 절인데 그 느낌을 천년 동안 계속 유지했을 것이고 절과 스님에게는 얼마나 많은 여유를 제고한 것일까를 생각하게 한다는 것이다.

오랜만에 접하는 산사의 초입은 마음을 폴짝폴짝 뛰게 만들었다. 뭐가 그러냐고? 여러 군데에서 이야기를 한 내용이지만 제주에서는 가을의 느낌을 육지에서처럼 느낄 수 없는데다 계곡의 물소리가 육지에서 자란 이들에게는 고향과 같은 땅의 소리라는 점에서 그렇다. 제주는 제주의 장점이 많지만 계곡의 물소리만은 결코 대체할 수 없는 고향의 느낌과 같은 것이다. 내게는 그렇다.


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며 마음이 가라앉는 이 기분은 산사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는 호젓함에서 그 여유로움을 배가시킨다.  공기의 썰렁함이 볼에 닿을 때마다 나의 육신과 정신의 합일을 재촉하는 듯하다. 이곳에 왔구나. 참 좋은 풍광과 분위기와 무엇보다 기운을 가지고 있구나. 그러니 천 년 전부터 이곳에 절을 지을 생각을 했겠네. 옛사람들은 장소를 참으로 잘 보는 느낌이다. 자연의 느낌을 살리면서 그곳에서 기운을 뽑아낼 수 있는 재주를 지녔다. 요즘 세상의 기기에 의존해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인문적인 창의성이라고나 할까.

중간에 들르게 된 암자가 나를 깜짝놀래킨다. 이게 무슨 암자란 말인가. 웬만한 절보다 건물도 크고 터도 넓다. 오히려 여기서 정진하기에 별로라는 생각이 든다. 그냥 무슨 사당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나의 마음을 빼앗은 것은 그 암자 앞에 떡하니 자리 잡은 기와집이다. 이곳은 정체가 뭐지? 절의 부속건물이 여기에 이렇게 자리 잡을 리 없을 테고 담을 기웃거린다. 허걱. 100년의 역사가 숨 쉬는 한국 최초의 한옥 여관이란다. 이름도 묘하게 유선여관이라니. 이곳에 며칠 묵으며 두륜산의 기운을 접하면 세상 모든 근심이 없어질 기세다. 과장된 상상도 해본다.


무엇보다 이 여관이 문을 열면 다시 오고 싶다. 괜히 여관을 배경으로 한 허접한 옛날이야기를 상상해본다. 예전 같으면 고시생과 지역 처녀와의 섬씽에 관한 이야기를 상상하기에는 딱 좋은 배경이지만 그런 상상을 하기에는 너무나 고리타분하다. 뭐 다른 이야기가 없을까. 집사람과 한참을 이야기해본다. 오히려 어떤 이유로든 팬들로부터 심하게 질타를 받고 같은 동료들로부터 디스를 당하는 래퍼와 다리가 다쳐 쉬러 온 무용수와의 황당한 이야기를 꾸며보면 어떨까 주거니 받거니 하며 공동창작을 해본다. 나중에 이야기를 만들어봐야지. 그보다는 꼭 다시 와보고 싶다.


본격적으로 절의 입구에 다다르는 다리에 도달했다. 다리 이름이 적절하다. 피안교. 피안의 이쪽과 저쪽을 나누는 다리답게 구력도 오래되고 아래로 흐르는 개울도 한껏 호젓함을 뽐내게 해 준다. 

이곳을 건넜으니 이곳은 서방정토여야 되고 그 길의 첫걸음을 맞이해준 돌 팻말이 반갑다. 돌이든 나무든 길이든 기둥이든 오래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으면 언제나 사람들을 경건하게 만들어 준다. 대흥사라는 돌 표지석이 그 대상이 되고 말았다. 멋진 표지석이다.

그러나 그 표지석보다 더 멋진 두 가지가 방문자를 반긴다.

나무가 묘하게 구부러져 동그란 모양과 가지가 뻗어있는 뽐새가 꼭 학이나 다른 새의 모습을 한 나무가 보인다.한그루의 커다란 소나무(소나무가 맞기는 하겠지?)가 너무 높게 자란때문인지 한쪽으로 기울어져 쳐진상태로 인사하는 듯하다. 지나는 사람들에게 어서 오라는 표시겠지.

다른하나, 표지석은 아니지만 오래된 안내판 하나. 처음에는 저런 이야기를 돌에 빨간 페인트를 칠하면서까지 새겨놓은 것을 보니 이 절의 입장에서 보면 꽃과 나무를 꺾는 중생들의 횡포 아닌 횡포가 몹시도 문제가 된 듯하다.

"꽃과 나무를 꺾지 마시오"

그래 꺾지 말자 자연 그대로가 아름다운 것이니  그대로 놔두자. 그렇지만 저런 표지석은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한다. 효과는 대단히 성공적인 듯.


그에 비하면 일주문은 조금은 너무나 뻔해서 식상하다는 느낌마저 든다. 경내는 사실 너무 탁 트여서 굉장히 커다란 절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게 해 주지만 아쉬움이 하나씩 드러난다.

우선 코로나로 인해 박물관이나 전시관등이 일체 운영 중단 상태다. 이 절의 옛날을 보고 듣고 싶은데 기회를 잃었다.  너무나 큰 절이었던 것이 느껴지는지 평지에 다양한 건물이 너무 탁 트인채 보여주니 신비로움이 상대적으로 적다. 거기에 더해 대웅전이 유네스코 유산 지정으로 인해 복원을 위한 공사 중이라 출입이 안된단다. 

절에 걸어 들어오는 길은 나름 큰절이자 오래된 절의 구력을 생각나게 하지만 막상 절에 도달해서는 큰 인상을 주지는 못한다는 불일치가 어색하다. 다행히 이 먼 곳에까지 와서 역사책에서나 본고 들은 서산대사와 사명당, 뇌묵당이 모셔진 표충사라는 사당을 만났다는 사실. 임진왜란의 승병 지도자로 꽤난 홍길동스럽게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던 이야기가 어릴 적부터 흥미로운 인물들이었는데 이곳에 다 모여있다는 좀 더 반가운 느낌이다.

표충사라는 편액은 1788년 정조로부터 하사되었다고 쓰여있다. 정조의 손길이 여기에까지 미쳤구나. 반가운 일이다.

절의 구석구석을 구경하고 나오며 그나마 아쉬운 대로 3단 석탑과 연못을 보며 구력을 느낀다. 그 뒤로 펼쳐진 두륜산의 바위들이 산의 위세를 느끼기 충분한 기운을 전한다.

더불어 그 기운의 한가운데에 대흥사가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 다시 한번 풍수의 의미를 되새긴다. 

천천히 걷기는 했지만 역시 크고 만만치 않은 절임에는 분명하다. 다만 대웅전이 공사 중이라는 것은 여전히 아쉬운 대목이다.

절 구경을 다하고 나오는데 스님들과 낯선 복장의 사람들이 주차장에 일렬로 도열해있다. 누군가 손님이 오려는 모양이다. 잠시 후 벤츠 차량 2대를 비롯해 시커먼 세단 한 무더기가 주차장 한가운데 매우 권위적으로 도착하고 두서없이 문이 열린다.

차 번호를 보니 외교관 차량이다. 차 옆의 깃발은 분명 오성홍기다. 즉, 중국 외교관 차량이 이곳에 도착했다. 뭐 먹을 일이 있어 이 먼 해남의 절에까지 도착했을꼬. 궁금증에 도로와 차량 통제를 담당하던 경찰에게 가서 묻는다. 

"누가 오는데 이 난리법석입니까?"

"중국 대사랍니다"

중국대사가 불교도인가. 그건 내가 알리가 없는 노릇이지만 우선 무엇보다 차량이 아무런 거침없이 주차장 한가운데 차를 급하게 대고는 사람들이 내리고 먼지를 일으키는 모습이 영 불편하다. 나중에 나갈 준비를 하면서 주차를 했지만 도착하는 과정은 영 맘에 들지 않는다. 쳐다보기 싫은 기색으로 내 갈길을 가기로 했다. 피안교를 넘었는데 저들이 저렇게 대접을 받아야 할 이유가 뭐란 말인가. 여전히 속세의 권위가 이곳에도 통하는 것인지. 그렇게까지 요란하게 도착해서 위세를 떨칠 일인지 모르겠다. 부처임 앞에 자기가 중국대사라고 자랑질하려는지는 모르겠으나 그게 뭐 그리 의미 있는 행차인지 원...

이들을 본 이후 절에 더 이상 머물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급하게 왔던 길로 내려간다. 일단 이곳을 벗어나야겠다. 그래도 유선여관은 머릿속에 여전히 남는다. 그곳에 머물기 위해 다시 와야겠다. 연락해봐야지.<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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