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너구리 Nov 27. 2020

2020 남도여행 8_다산과 백련사 가는 길

다산초당을 방문하는 길은 사실 특별한 기대나 계기가 있기보다는 아주 당연한 선택이다. 강진을 대표하는 그 무엇이 있든지 다산 정약용이라는 불세출의 인물이 지낸 시간의 흔적을 뛰어넘을 그 무엇이 있을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실제가 어떠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의 교육시스템 하에서 배운 실학을 집대성한 인물이자 500여 권이라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천재적 집필을 이뤄냈던 인물에 대한 예의라면 예의로써 강진에 오면 들러보아야 할 장소인 셈이다.


유배 장소가 관광지가 된다는 것은 사실 슬픈 일이기도 하다. 정조에게 가장 총애받던 인물이 자신의 뜻을 펼쳐보지 못하고 학문을 통해서 스스로의 사상을 내보일 수밖에 없는 시대. 그 시대 그는 어떤 생각을 하면 살았을까. 자신을 아끼던 왕 정조가 갑자기 죽은 이후 18년간 유배생활을 해야 했던 장소. 세상은 더이상 자신을 쳐다보지 않을 것임을 잘 알기에 그의 학문연구는 더 처절했을런지 모른다. 또 가장 박학다식한 학자의 뜻과 감회를 이 먼땅 강진에 내려와서 볼 수 있다는 것이 안쓰럽다는 생각도 든다. 그에게 18년은 학문을 연구하여 자신의 뜻을 정리하는 데는 좋은 시간이었겠지만 그의 사상이 현실의 벽에 부딪혀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하긴 유배가 아니었다면 그 많은 저서를 남기지도 못했을 것이기는 하다.

18년간의 유배기 간 중 11년을 묵었다는 이곳 다산초당을 자연스럽게 걸어 올라간다. 뿌리의 길로 유명하기도 한 나무뿌리로 길들이 움푹 파여있는 상태를 보며 형해화한 사람의 모습과 정신만 남은 한 인간의 정체성을 느낀다고 하면 지나친 분석일 텐가. 암튼 유배자의 초당은 어딜 봐도 멋지다고 할 구석은 아니지 않겠는가.


다산이 집필한 책의 숫자는 500여 권이라는 설명과 600여 권이 된다는 주장이 섞여있는 듯하다. 안내판에는 600여 권이라고 하니 정확히 누군가 정리 좀 해주면 안 될까.

한참을 걸어 올라가니 정호승 시인이 '뿌리의 길'이라 불렀던 초당 가는 길의 의미를 알 수 있는 모습이 드러난다. 처음에는 돌계단과 간간히 드러나는 나무뿌리들이 섞여있더니 어느 순간 뿌리들이 실체를 드러내며 이곳이 다산의 생각들의 집합체만 남긴 장소라는 듯 이미지를 전하고 있다. 언뜻 뿌리라기보다는 뼈다귀들이 묻혀있는 곳 같은 느낌이 더욱 강하다.


중간에 다산의 제자인 윤중신의 묘가 선생에 앞서 지나는 사람들을 먼저 맞는다. 당신들보다 내가 다산선생을 먼저 뵙고 배웠네하고 이야기하듯 묘를 그 앞쪽에 쓴 걸 보면 스스로도 꽤나 스승의 발자취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던 분인 모양이다. 

본격적으로 뿌리가 땅속으로 숨어버리자 돌과 바위들이 이번에는 내 차례라며 길 앞을 막아선다. 유배생활의 어려움이라도 보여주려는가. 이곳이 분명 유배지임은 확실한 모양이다. 앞으로 초당이 나무 사이로 모습을 보인다. 왜일까 초당 앞에 안내원이 서성이는 걸 보는 순간 다산초당의 사진을 찍는 게 영 마뜩하지 않다. 정면의 모습을 여백으로 남겨야지 하는 똥고집이 발동하는 순간이다. 대신 옆에서 초당의 모습을 담는다.

다산 4 경이라 불리는 서암, 다산초당, 동암, 천일각의 사진들도 의미 있지만 이를 그림으로 그려놓은 설명이 더 운치가 느껴진다. 그런데 무엇보다 4 경이라 하면 이 장소에서 풍경이 감상할 만해야 할 텐데 도무지 경치라고는 구경할 만한 것이 없다. 아무리 유배지라 해도 당시로서는 이렇게 답답한 장소에 초당을 짓지는 않았으리라는 의구심이 솟는다. 안내원에게 물으니 초당 앞의 나무들이 이후에 조림한 나무라는 설명이 돌아온다. 그럼 그렇지 그런데 굳이 이 앞을 이렇게까지 답답하게 나무들로 가득 채울 필요가 있을까. 그 나무를 일부 정리해서 초당에서 옛적에 보여줬던 경치의 느낌을 살리면 더 좋겠다. 


천재학자가 유배라는 이름으로 지방에 왔으니 근방에서 학문에 관심 있는 자들이라면 모여들었을 것이다. 그들을 통해 다산은 수많은 책을 저술할 수 있었을 것이고 그들과 어떤 식으로든 의견을 나누고 많은 토론을 했을 것이다. 그 결과물이 500여 권에 달하는 저작이 됐을 것이고. 


사실 초당이 위치한 장소는 지리적으로 평평한 곳도 아닌지라 나로서는 굉장히 불편하고 불안감을 느꼈을 만한 곳이었다. 비바람이 치거나 어두워지거나 눈이 오거나 등등 여러 가지 사정이 있어 혼자 있는 날에 그는 어떤 생각을 품으며 시간과 자연을 맞이했을까. 연지석가산이라는 연못과 동암을 둘러보고 그나마 경치가 탁 트인 천일각까지 둘러보고는 잠시 쉬면서 총명했던 시절에서 원숙한 학자로 변해가는 천재의 느낌을 잠시나마 느껴보려 애써본다. 물론 잘 안된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서서히 배가 고파지기 시작했다.

팻말이 하나 눈에 띈다. 백련사 가는 오솔길. 배고픔과 시간상의 문제로 이 길은 포기하려 한다. 그 때 동암 옆으로 관계자 한분이 오시더니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으니 한번 다녀와보란다. 호젓한 오솔길에서 다산의 느낌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으리라는 설명이다. 


백련사와 다산초당 사이에 있는 산이 만덕산이다. 만덕산 이쪽 편에 초당이 있고 이를 넘어가면 백련사가 있다. 역사적으로는 백련사의 혜장선사가 다산의 절친으로 서로가 교류하는 오솔길인 셈이다. 둘 사이에는 내 기준으로 보면 심심함이 서로를 친하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동기였을 것이며 그나마 학문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으니 그 후로도 오랫동안 벗으로 좋은 인연을 가졌을 것이다. 오밤중에 혜장선사가 다산을 찾아 차를 마시며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하니 그림상으로는 멋진 모습임이 분명하다. 내가 그 생활을 하라면 글쎄지만 말이다.


이 지역에는 자연산 차나무가 잘 자라 이를 다려 차를 잘 마시곤 했다 한다. 실제로 백련사 가는 길에는 자연산 차나무가 곳곳에 산재하며 자라고 있었다.


이날 백련사를 가는 길을 택하는 시작은 관계자의 나름 꼬심에 넘어간 때문이지만 초반에는 오솔길을 걸으며 참 잘 왔다는 느낌을 얻을 수 있었다. 다산이 되어 백련사에 친구를 찾아가는 심정을 오롯이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생각도 잠시. 아무리 낮은 산도 산은 산인지라 발걸음이 조금씩 비탈을 오르기 시작하고 능선을 걷기 시작하자 마음이 조금씩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한참을 온 듯 싶은데 아직 백련사에 도착할 기미가 없다. 중간에 자연산 차나무는 곳곳에서 스스로 잘 살아가지만 내 신체의 피곤을 극복하기에는 무언가 부족하다.

능선을 걷다 야생차밭을 멀리하면서 걷다 보니 어느새 백련사 쪽에 다 달았다. 

아뿔싸! 순간 내려가는 계단을 보니 갑자기 마음이 지친다. 이 계단을 내려가는 건 그렇다 치고 다시 올라올 생각을 하니 엄두가 나지 않는다.

'괜히 말을 들었다.'

미련으로 인해 몸이 고생이다. 알았다고 하고 돌아가야 하는데 여기까지 와버렸다. 계단을 보고 있자니 다리도 떨리지만 허기가 더 심해진다. 이미 시간은 점심시간을 훌쩍 넘긴데다 어제의 피곤이 채 풀리지 않았으니 영 몸에 기운이 없다.


"난 이 계단으로 다시 올라올 생각은 전혀 없어!"

동행한 집사람이 급하게 결연한 선언을 한다. 이를 어쩌란 말인가. 그냥 힘들어도 다시 다산초당으로 어찌어찌 돌아간다치고 그 다음 초당에서 주차장까지 다시 내려갈 생각을 하니 아찔하다.

백련사는 꽤나 나름 아늑한 절이다. 어제 그제 본 대흥사와 미황사에 비할 수준은 아니지만 이 지역에서는 괜찮은 절이겠구나 싶다. 근데 집중이 안된다. 멀리 사찰의 대웅보전을 향해 걷다보니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안도감은 도는데 어찌 왔던 길을 돌아간단 말인가. 조금 전 내려온 만덕산을 바라보니 왜 이리 가슴이 철렁하며 다리가 떨리는지. 절생각보다 돌아갈 생각이 더 걱정이다.

다산과 혜장은 산책하듯 이 길을 다녔을 텐데 도무지 산책스럽지 않다. 역시 세상은 밥 힘이 중요하긴 한 모양이다.

절을 보는 듯 마는 듯 아내와 나는 사람을 먼저 찾아 나썬다. 절을 구경하는 사람 3명이 절 구경을 마치고 내려가려 한다. 그런데 그들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이크! 다른 일행을 찾아보기로 한다. 주차장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니 연인인듯 한쌍이 주차장을 향해 내려가고 있다.

"저기요! 실례지만 지금 내려가시나요?"

"그런데요."
"저희가 다산초당 쪽에서 걸어왔는데 너무 힘이 들어서요. 혹시 가시는 방향이 비슷하거나 초당 쪽으로 가실 거면 저희 좀 태워주시면 안 될까요?"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 하지 않던가. 궁하면 통한다고 했으니.

그 커플은 광주에서 나들이 나온 커플로 흔쾌히 우리를 주차장까지 태워줬다. 덕분에 자신들도 오랜만에 다산초당을 올라가 보련다고. 고맙고 친절한 사람들이다.


다시 왔던 길을 걷지 않고 일방통행으로 백련사까지 왔지만 시간과 체력이 여유가 있었으면 좀 더 다른 느낌을 얻을 수 있었으리라. 잠시이긴 하지만 다산이 벗을 만나러 가는  즐거운 상상을 하면서 걷는 길이라니 그에게는 매우 소중한 삶의 한 순간들이었을 것이고 활력소가 되었을 것은 분명한 일이다.

소소한 일상의 중요성이란...


매거진의 이전글 2020남도여행5_달마고도길2_하늘의 암자 도솔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