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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May 08. 2021

코로나와 네트워크의 시대

공동육아를 통해 아이들을 키우며 만난 지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오랜만이다. 어린시절을 함께 보낸 아이들이 대학생이 되었고 당사자도 50줄이 훌쩍 넘었다. 서로 주거니 받거니 술잔을 기울이던 기억도 10여년은 족히 넘었으니 반갑기도 하면서도 서먹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기우다. 어제 만난 친구처럼 시간의 간극은 금새 좁혀진다. 간난쟁이었던 아이들의 성장한 모습에 가슴이 뭉클해지고 세월의 빠름을 실감할 뿐이다.


대학생이 된 딸 2명과 아빠의 제주 도착시간이 각자 다르다. 아빠는 일주일 동안 머물고 아이들이 며칠 후 합류했다. 한 명은 전날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다음 날 일찌감치 비행기를 탔고다른 한명은 오전에 온라인 강의를 듣느라 오후가 되어서야 도착했다.


대학생인 아이들은 학기 중 제주도를 방문하는 일인지라 꽤나 기분이 들떠있다. 그들은 제주 여행을 하는 중간중간 수업 시간에 맞추어 카페나 숙소에서 강의를 듣는다. 학교와 전공이 다르니 한 장소를 방문하다 각자 수업이 있으면 카페에서 수업을 듣고 나머지는 다른 일정을 소화한다.


아빠 역시 코로나로 인해 재택근무 중이었고 모든 일들이 화상회의와 이메일로 이루어진다. 결국 재택근무를 할 수 없는 공항이동 시간에만 회사에 휴가를 내고는 움직인다. 그 아빠의 말을 빌면 어차피 집에 있으나 제주에 있으나 일을 온라인으로 하는 것은 마찬가지라며 본인의 업무에 전혀 지장이 없단다. 그 역시 새벽 4시에 전세계 직원들과 회의를 하기도 하고 대낮에 카페에서 한참을 일한 후 저녁 시간을 즐기는 등 제주에서의 시간을 나름 알차게 보내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나는 일주일간 그와 3번 만났고 아이들과는 참으로 오랜만에 함께 저녁을 먹었다.그 와중에도 아이 한 명은 내일까지 학교 과제를 내야한다며 노트북으로 과제를 제출하는 스케쥴 관리를 하고 있었다.

떠나는 날 역시 3명은 각자의 스케쥴에 맞게 떠났다. 한 명은 오후에 아르바이트가 있기에 오전 비행기를 타고 먼저 떠났고 다음은 오전에 숙소에서 수업을 듣고 오후 수업에 로그인을 하기 위해 김포공항 도착시간을 맞추어 비행기를 탔다. 아빠는 딸들을 먼저 보내놓고는 렌트카를 반납하고 귀경길에 올랐다. 오후 느지막이 집에 잘 도착했노라며 메시지가 왔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이기에 예전의 가족 여행을 생각했지만 그들이 보여준 모습은 참 색달랐다. 어쩌면 너무나 자연스러운데 내가 그렇게 느끼는 것일 수도 있다. 코로나 시대와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디지털노마드라거나 공유 오피스라거나 많은 이야기를 최첨단이나 남다른 것처럼 이야기하곤 했지만 지인의 가족이 보여준 모습은 웃음과 더불어 번뜩 머리를 때리는 충격을 준다.


나도 모르게 바뀌어 버린 우리 시대 삶의 단면이다. 그에 맞는 생활방식과 인프라와 삶의 자세는 잘 갖추고 살아가는지 스스로 묻는다. 더불어 네트워크라는 의미를 좀 더 광범위하게 확장해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해졌다.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끝없는 대면 관계를 강화하는 일이 네트워킹이라고 여겼지만 온라인에서 무수히 이루어지는 네트워킹 역시 좋으나 싫으나 적응하고 인정해야 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나의 네트워크는 아무리 멋지게 포장해도 구시대적인 관계에 머물 수밖에 없겠지만 그것만이 네트워킹의 전부인 듯한 생각은 빨리 벗어나야겠다. 온라인 회의나 다양한 툴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하고 제주에서 그에 맞는 인프라와 삶의 방법에 적응하는 시스템이 잘 갖추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하루종일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세상은 참 빠르게 변하고 내가 아는 것만이 전부인게 아닌 시대다. 마음을 좀더 열어야겠다.


이 재 근/ 컬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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