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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Oct 26. 2022

제대로 된 태풍과 만나다

[중산간 일기 6]

조금씩 접근해 오는 것을 느끼는 일은 긴장되는 일이다. 이상한 이름의 태풍이 인구에 회자되기 시작한 것은 느닷없이 거대한 태풍이 진로를 열심히 서쪽으로 향하다 갑자기 한반도로 향한 후였다. 역대급이라고 했다. 제주에 내려온 지 10년 제대로 된 태풍을 맞이해본 적이 있었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아마 없는 듯하다.


며칠째 계속 태풍이야기다. 이틀 전부터는 날씨가 사람의 마음을 우울하게 하려 드는지 잔뜩 찌푸린 하늘을 내어 보인다. 전조인가. 비가 거세게 내린다. 그 정도야 거센 비바람일 테니 걱정할 일이 아니다. 문제는 새롭게 이사 온 중산간의 날씨와 그 안에 자리 잡고 앉은 집에 별 탈이 없느냐다. 

 

제주는 비가 아무리 많이 와도 물이 넘쳐 사고가 날 일은 없다. 물이 모이는 천 주변에서 멀어지던가 파도가 몰아치는 바닷가만 멀리한다면 개인적으로 물난리를 겪을 일이 없다. 물론 천 하구의 배수 문제가 터지면 가끔씩 온통 천이 넘쳐 침수되는 일도 있기 하더만 한번 본 이후로 아직은 본 적이 없다.


어제 아침에는 잠깐이나마 구름에 파란 하늘을 보여주는 여유까지 보인다. 이거 태풍이 맞나. 물론 잠깐의 시간을 지나고 나니 다시 먹구름으로 거대한 전진을 시작한다. 하늘이 먹먹하다. 빗줄기가 굵어진다. 조금씩 가까워지는 느낌이다. 괜히 태풍의 행로에 대해 궁금해진다. 화요일 새벽에 제주를 지나고 육지에 상륙한단다.

월요일이 관건이다. 이날을 잘 보내기만 하면 태풍과의 조우는 끝이다. 


오전에 빗줄기가 거세지는 상황을 감수하고 미팅 약속 장소를 향한다. 빗속을 뚫고 굳이 성산을 향하는 이유는 계약이 있기 때문이다. 정작 우리 사무실은 재택근무를 하기로 하고 나는 빗줄기를 헤매고 달린다. 앞이 잘 보이지 않는 탓으로 와이퍼의 속도가 입으로 따라 하기 힘들 만큼 빨리 움직인다.


집으로 무사히 귀환했다. 그 사이 집에서 쭈그리던 강아지 녀석이 눈앞에서 보이질 않는다. 전화가 울린다. 모르는 사람인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여러 차례 통화를 시도하던 끝에 메시지가 도달해있다. 

"버스가 하나네 마당에 있어요"

아차 이 빗속을 뚫고 집에 있던 개가 동네를 활보하고 있는 중이다. 생각만 해도 화가 치민다. 빗속에서 개를 잡으려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닐 텐데. 흠뻑 젖을 각오해야 한다. 예상대로 개는 이곳저곳을 떠돌며 잡히지 않고 물에 흠뻑 젖은 채 신이 나 뛰어다닌다. 내 불쾌지수가 높아지지만 별도리가 없다. 급기야 녀석은 옆 집 개마저 함께 동반하고는 주택 단지를 벗어나 아침 산책길까지 뛰어올라갔다 되돌아왔다. 어찌어찌 잡기는 했지만 개가 하루가 다르게 뺀질대고 있으니 걱정이다. 그렇다고 이미 집안에서 키우는 녀석을 밖으로 내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고. 요즘은 지도 스트레스를 받으면 책상다리를 물어뜯는 등 심심치 않게 사고를 치고 있으니 걱정이다.


아무리 그래도 날씨는 점차 거센 빗줄기를 보내고 저녁에 이르러서는 오가는 행동을 제약할 정도로 바람과 빗줄기가 거세진다. 태풍이 지나는대는 마찬가지일 테지만 흔히 중산간 지역은 제주에서도 비가 더 오고 바람이 세다. 강아지 녀석 하루 종일 갇혀 있어 오줌 마려울까 줄에 묶어 문을 여니 지도 이건 아니지 싶은지 뒤로 물러난다. 그래도 잠시 정신을 가다듬더니 빗속을 향해 용감하게 발을 내딛는다. 그래 밤새 낑낑대지 말고 쉬는 하고 들어와야지. 늘 가던 자리로 가서 볼일을 보더니 더 이상 갈 일이 없는 듯 바로 집으로 직행. 줄을 풀기 무섭게 자신의 보금자리로 직행한다.


다행히 빗소리만 들리며 밖에서 우는 소리가 나지만 문을 열지 못한다. 오는 저녁에 제주를 지난다 하니 기다려 볼 일이다. 다만 태풍의 중심에 닿는 순간이 기다려진다. 그러면 언제 태풍이 오냐는 듯 조용해질 테니. 잠깐 문을 열었다가 온 몸에 물벼락을 맞고 나니 현실감이 다가온다. 그래 태풍의 한가운데 있는 게 맞지.

별일이 없이 잘 지나도록 기도라도 해야 할 모양이다. 중산간에서의 새로운 도전을 또 하나 넘기는 고비가 되는 것이다. 곧 제주를 지난다는 그 시간이다. 태풍의 눈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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