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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Feb 19. 2016

위미 가는 길 2

‘서연이네 집’에서 바다를 보지 않는 이유

위미는 제주에서 내가 얻은 안식처다. 풍광이 빼어나다고 할 수도 없는 바다 지형이지만 그 바다를 좋아한다. 그곳에 가면 안정이 있다.


위미 앞바다에 떠있는 평평한 지귀도


제주에 아는 지인들도 거의 없는 내가 낯선 곳 어딘가 갈 곳이 있다는 사실은 사람으로 하여금 귀향 본능을 느끼게 해 준다.


위미는 서귀포의 다른 곳보다 뛰어나지 않다. 그냥 남쪽 바다를 바라보는 머나먼 그리움을 준다.


그 산책 길 한중간에 '서연이네 집'이 있다.


건축학개론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카페에 관광객들이 몰린다. 사실 무슨 명소도 아니고 그곳에 오고 있는 사람들을 이해하면서도 이해하지 못하는 구석이 동시에 있다.


그렇게라도 지명도 있는 장소가 없었다면 사람들은 이곳에 몰려들어 아늑한 바다를 볼 기회를 갖지 못했을 것이다. 

그냥 남쪽 바다를 바라보는 머나먼 그리움을 준다.

서연이네 앞에서 바라보는 바다 역시 뛰어나거나 빼어날 것 하나 없다. 그게 바다가 주는 힘이라는 것을 오래 머물면 머물수록 알게 된다. 그 아늑함은 위미 앞바다가 주는 점점이 펼쳐진 바위와 멀리 평평하기 그지없는 지귀도를 보지 않고는 이해할 수 없다. 그 무엇보다 어느 순간 바다를 보러 왔다거나 바다가 있다는 사실조차 의식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아무런 빼어남이 없으니 편안함으로 쉬기 좋은 장소인 셈이다.

서연이네 집에서 바라본 바다



난 그래서 그곳에 자주 간다. 지난달에도 갔고 지난주에도 갔지만 갈 때마다 똑같은 바다의 사진과 해안도로의 텅 빈 사진을 계속해서 사진에 담는다. 얼마 후에도 다시 똑같은 장소를 찍을 테니만 그래도 늘 새롭다. 그 새로움은 장소의 새로움이 아니다. 바다를 바라보며 그날 느끼는 나 자신의 감성을 확인할 수 있어 새로움이 있다.       

‘서연이네 집’은 마을 입장에서 보면 민폐다. 구옥을 사서 2층으로 올려 카페를 만들었고 건축학개론의 그 여운을 잊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한가인이 바다를 보는 시선을 자신도 느끼고 싶어 한다.  위미의 바다가 주는 여운과 편안함을 보고 가면 다행이다. 그러나 카페 하나로 인한 북새통과 아수랑 장에서 위미 바다는 위로가 되지 않는다.       


바다는 관조하는 것이지 관광하는 것이 아니다


서연이네 집과 붙어있는 바로 옆집에는 가끔 하르방 한 분이 나와 바다 쪽을 본다.  그분은 몇 시간이고 의자에 앉아있지만 바다를 바라보지 않는다. 대신 서연이네 집을 찾는 관광객들을 구경한다.      


그 하르방은 수많은 관광객들과 바다를 보며 무슨 생각이 들까. 그분에게는 관광객들이 하루의  소일거리인 셈이다.     


나 역시 그곳을 지날 때면 빠른 걸음으로 벗어나려 한다. 한 구비만 꺾으면 새로운 아늑함이 있음에도 사람들은 그곳까지 오지 않는다. 행여나 들르는 올레꾼들과 몇몇 관광객들이 호기심 어린 마음으로 갤러리를 기웃하고 바다의 느낌을 가슴과 카메라에 담아간다.      


관광지에서 바다를 바라보지 않게 되는 이유를 알았다. 바다는 관조하는 것이지 관광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바다는 관조하는 것이지 관광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관광지의 바다는 위로를 주지 않는다. 서연이네 집 앞의 바다를 보러 위미에 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바다를 핑계로 나를 보러 간다. 내가 그곳에 가는 한 아직 되돌아보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내 자신의 긴 꼬리와 같은 여운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위미로 가는 길은 멀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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