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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Jun 11. 2016

제주 원도심 산책1_라이킷LIKE IT

디자인소품 매장을 연상시키는 순수한 책방_라이킷과 트엉 

원도심을 개괄적으로 설명하는 글과 지도와 관심 어린 내용을 담은 설명들은 점점 늘고 있다. 나의 원도심 산책은 좀 더 세심한 장소를 선택해서 디테일하게 이야기로 했다. 그 첫 시작을 칠성통 쇼핑거리의 끝자리에 다소곳이 손님을 맞고 있는 책방을 골랐다.



비행기 시간까지 2시간이나 남았다.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원도심을 찾았다. 


나름 유명한 식당에서 짬뽕으로 끼니를 때우고 나머지 시간을 보내야 한다. 길가를 걷는다. 특별히 옷에 대한 집착을 보일 상황도 아니고 마냥 탑동 해변을 걷자니 날씨도 맘에 들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칠성통이다. 앞뒤 좌우를 거닐다 지난번 저녁 늦게 궁금해진 매장 하나가 생각났다. 사선으로 된 쇼핑거리의 끝자락에 자리 잡은 '라이킷'이라는 매장이다. 언뜻 밖에서 본 기억으로는 소품점과 서점을 함께 하는 장소로 기억된다.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그곳을 향했다. 특별히 달리 갈 곳도 없으니 자연스러운 결과다.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판단이 안 선다. 첫 번째 인상은 소품샵의 모양을 한 서점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전후 좌우를 둘러봐도 아는 책들이 없다. 카테고리의 구분도 무의미하고 판형도 제멋대로인 인쇄물들이 책장에 꽂혀 있거나 테이블 위에 전시가 되어 있다. 서점의 일반적인 형태와는 거리가 멀다. 그래도 눈에 보이는 것이 책이니 서점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보이는 모습.

나보다 먼저 들어선 고객 2명이 주인장과 이야기 중이다. 어디서 듣고 왔는지 유통경로, 고객들의 반응 등을 묻고는 실내 사진들을 찍고는 한참을 이야기한다. 나 역시 궁금하고 묻고 싶은 게 많지만 앞사람을 방해할 수는 없어 이곳저곳을 둘러본다. 공간이 좁으니 사실 한눈에 모든 것이 다 드러나 여러 곳을 둘러본다는 것이 똑같은 곳을 여러 번 보는 것과 같은 의미다.


첫 번째 인상은 소품샵의 모양을 한 서점이라는 것이다


앞 손님이 나가고 이번에는 나의 궁금증을 풀기위해 주인장에게 이야기를 청했다. 


이 서점의 정체는 1인 출판과 자가출판 책들을 중심으로 모아놓은 서점이다. 뜻밖이다. 일반적인 서점이 설자리를 못 잡고 하나둘씩 온라인 서점에 밀려 문을 닫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 와중에 검증도 되지 않는 자가출판과 1인 출판 책을 주로 판매하고 있다는 설명에 '참 용기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인가 개인이 만들어낸 책들때문인지 판형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은 물론 책의 형식에도 전혀 구애가 없다. 혹시 소품점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던 이유가 있었다. 자신들의 디자인 구미에 맞게 마음대로 판형과 형식을 만들었을 뿐 아니라 디자인도 멋대로니 책이라기보다는 다양한 노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 당연하다.


신선한 개념이다. 개인적으로 이 서점의 매출이 잘 나올지는 모를 일이지만 이 같은 작업을 부단히 하고 있는 주인장의 노고에 박수를 치고 싶어 졌다.


"혹시 이 같은 책들을 유통하기 위한 별도의 유통채널이 있나요?"


궁금했다. 일인 출판이나 자가출판을 하는 책들만 유통해주는 도매상들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기존의 서적 유통을 염두에 둔 질문이었다.


"아니요. 제가 개인적으로  인터넷 등을 검색하고 일일이 전화를 해서 책을 받아요."

지난한 작업이다. 우스운 얘기지만 이런 일을 제주도 원주민이 할 것 같지 않았다.


"혹시... 서점하신지 얼마나 됐나요?"

"1년 반이요"

"제주 원주민 아니시죠?"

"내려온 지 5년 됐어요"


그럼 그렇지 이런 류의 콘셉트를 잡고 트렌드를 만들고자 지난한 작업을 하는 이주민의 한 모습을 보는 듯하다.

간간히 지나던 커플이나 젊은 여인들이 심심치 않게 서점 문을 열고 들어온다. 칠성통이 주말임에도 이곳까지는 번화하게 활성화되어 있지 않지만 손님이 끊이지 않는 것은 나름 놀랄 일이었다.


주인장 여인은 궁금해서 들어온 고객들 모두에게 일일이 대응하지는 않지만 호기심이 매출과 연결되는 연관성이 떨어지는 현실을 고려하면 그녀의 선택과 태도는 훌륭하다는 판단이 든다.


책이 잘 팔릴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그녀의 설명에는 입구 맨 앞의 매대에 깔린 책들이 가장 잘 팔리는 책들이라는 설명이다. 

이 같은 작업을 부단히 하고 있는 주인장의 노고에 박수를 치고 싶어 졌다

나에게 손에 잡히는 책이 없다는 것이 안타까움으로 다가오지만 나 같은 손님마저 잡아끌 수 있는 모양새는 다행이다 싶었다. 


자가출판의 책들이 대부분 지인들의 손에서 노출 없이 끝나버리고 마는 현실과 달리 조그맣게나마 서점을 통해 독자들의 시야에 노출되는 기회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주인장의 노력에 박수를 쳐야 할 것이다.

다양하게 책들이 전시되어 있는 공간 너머 또 다른 공간이 자리 잡고 있다. 팻말에는 인문책방 트멍이라고 붙어있다.

이건 또 뭥미?


인문책방이라고 쓰여있으니 인문학 관련 책들만 널려 있으리라는 추측은 당연하다. 내용 역시 그러하다. 그런데 방마다 이름을 달리 붙여 놓았나... 또 다른 궁금증이 나를 가만두지 않았다.


"이곳은 콘셉트를 달리하는 장소인가 보내요..."


질문인 듯 아닌 듯 살며시 짚어가며 물었다.


"그곳은 아는 선배가 운영하는 책방이에요. 이쪽은 제가 운영하는 라이킷이고 안쪽은 선배가 매니징하는 트멍이라는 샵인샵 서점이에요"


깜찍한 개념이다. 선배와 나누어 콘셉트를 나누고 비용과 인력운용을 나눌 수 있는 편리함도 함께 얻을 수 있으리라.


트멍의 내부는 조금 작은 공간이지만 나름 자신의 개념을 가지고 꾸민 내용이 얹혀있다. 의자에 나른해 보이는 인형과 자신만의 생각으로 구분해 놓은 책들이 놓여있다. 중요한 것은 일반적인 서점이 서가에 책들을 꽉 채워놓는 것에 비해 여백의 미를 살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곳 역시 한눈에 보면 다 볼 수 있는 장소. 공교롭게도 책보다는 전체적인 분위기가 더 먼저 느껴지는 곳이라 어떤 책이 꽂혀 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길지 않은 시간 뜻밖의 소품형 서점에서 시간을 보내고 나니 나오는 내 모습에서 흐뭇한 웃음이 감도는 것을 느끼게 된다.


차마 책 한 권을 사지는 못했지만 가끔은 들러 자신의 세계를 표현해 보고픈 사람들이 스스로 만들어 낸 책들의 의미와 그 뒤의 여백들을 느끼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듯 싶다.


비록 지금은 옛적의 영화를 잃고 재생을 위해 몸부림치는 원도심의 쇼핑센터 한 구석에 조신하게 앉아있지만 그런 한 귀퉁이의 단아한 모습이 이 거리를 지탱하고 있는 힘이 되리라는 믿음을 갖는다.


스스로 만들어 낸 책들의 의미와 그 뒤의 여백들을 느끼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듯 싶다


원도심에 새롭고 다양한 무언가들이 많이 생기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유명 브랜드도 꾸준히 들어오고 자신만의 개성을 만들기 위한 부띠크 숍 같은 매장들도 몇몇 있지만 차분한 감성을 가지고 원도심을 찾는 사람들에게 살며시 자신의 꿈들을 이야기하는 장소가 있어 좋다.


원도심의 첫 시작이 나쁜 느낌은 아니다.

매장 앞에 가지런히 놓여진 작은 화분들. 그중 한 녀석이 쓰러져 있는 모습이 더 정겹다.


칠설로 쇼핑가의 이름이 새겨진 입구중 한군데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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