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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 Jun 13. 2016

사려니오름_신비를 전해준 소중한 순간

1년만에 열린 길, 사려니가 있게 한 그 이름 사려니오름

통상적으로 사려니숲길의 순방길은 물찻오름 입구에 다 달으면 반을 온 셈이다. 붉은오름 입구부터 걷거나 사려니숲길 입구에서 걷더라도 거의 중간에 해당되는 위치다.


이제부터는 붉은오름 쪽으로 나아있는 길이다. 이 길들은 그나마 흙길의 기분을 좀 더 많이 전해준다. 얼마 되지 않아 갈림길이 나온다. 평소 같으면 당연히 출입금지 팻말이 붙어있어야 하는 길이다.


긴급시 활용될 차량과 더불어 안내원이 서있다. 가던 길을 계속 가면 월든 삼거리가 나오고 여기서 갈라지는 길은 낯선 결과를 만들어 낼 것이다. 길은 길지 않지만 아주 드문 기회다. 성판악까지의 숲길이다. 순간 멈칫멈칫 판단이 유보되는 나 자신을 느낀다. 


이 길로 가보고 싶다. 성판악으로 나아가는 보기 드문 경우를 놓치고 원래의 길로 가려니 아쉽다. 안내원이 조금 전 일행과 나를 같은 동료라고 생각했는지 잠시 전 4명이 이곳을 지나갔다고 얼른 따라가라고 알려준다. 


'뭘 봐서 내가 그들과 일행이라는 것인지...' 본 적이 없으니 알 길도 없다. 

첫 방문의 사려니숲길에서 가장 신선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이곳 삼나무 숲이다

한참을 걸어 내려가자 다시 새로운 갈림길이 나온다. 월든 삼거리다. 삼나무 숲으로 유명한 산책로가 별도로 만들어져 있는 곳. 첫 방문의 사려니숲길에서 가장 신선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이곳 삼나무 숲이다. 


배가 고프다. 안내판을 보니 2시 전에 새롭게 열린 사려니오름 가는 길에 들어서야 한다. 지금 시간은 오후 1시 35분. 아직 25분의 여유가 있다. 점심을 먹어도 된다. 11시 30분 입구를 출발한 지 2시간 만에 처음으로 쉴 수 있다. 정자에 앉았다. 가방 안에서 사가지고 온 김밤 한 줄을 꺼낸든다. 아직 시간이 25분이나 남았는데 왜 이리 마음이 급한지 5분도 채 안 되는 시간에 김밥 한 줄을 꿀꺽했다. 마음이 급한 때문이 아니다. 배가 고파서 더 빨리 먹을 뿐이다. 

월든 삼거리에 기다리고 있는 삼나무 숲. 데크로 잘 짜여진 숲이라 힐링하기에 딱 좋은 곳이다. 그러나 이곳이 껌딱지에 해당하는지 나중에 알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붉은오름 입구 쪽으로 걸어 나가고 몇몇 사람들만 사려니오름 길을 향한다. 앞으로 남은 거리는 10.5km. 거리상으로는 2시간 조금 더 걸리겠지만  문제는 사려니 오름의 난이도다. 


오랫동안 사람들이 다니지 않은 덕인지 기존의 사려니 숲길과 달리 임도가 조금 더 자연에 가깝게 느껴졌다. 길 한가운데도 풀들이 나있고 임도 역시 조금 좁은 느낌이다. 


누군가는 월든 삼거리의 이름에 대해 불만이 있겠지만 나는 이 삼거리의 이름에 찬성한다. 좋던 싫든 자연적인 삶에 대한 전 세계적인 유명세에서 월든만큼 유명세를 가진 이름이 있을까. 비록 소로우가 3년남짓밖에 자연생활을 하지 않았다지만 그의 기록은 자연생활의 표본인 것을 부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기존의 사려니 숲길과 달리 임도가 조금 더 자연에 가깝게 느껴졌다

사람의 손길이 적어서 인가 이곳 숲길이 보여주는 숲과 나무의 모습이 좀 더 깊다는 느낌을 준다. 갑자기 스마트폰 지도를 꺼내 나의 위치를 확인해 본다. 이 길을 계속 가다 보면 전혀 다녀보지 못했던 지방도가 나올 것이다. 아직도 그곳까지 한참을 가야 한다. 벌써부터 다리가 아프고 허리도 아픈데 이를 어쩌란 말인가.


순간 하얀 나비를 연상케 하는 산딸나무 꽃들이 온통 뒤덮인 나무 몇 그루가 눈에 띈다. 온 나무가 나비로 가득 찬 느낌이다. 앞전에 봤던 것들보다 더 풍성해지고 화려한 느낌이다.

이윽고 숲길은 조용해지기 시작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시끄럽게 내 뒤에서 쫒아온다.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그들을 먼저 보낸다. 그들이 내는 시끄러운 소음 속에서 이 조용한 숲길을 걷고 싶은 욕망은 티끌만큼도 없다. 그들을 보내고 나니 다시 내 세상이 됐다. 간간히 걷는 속도가 조금씩 다른 사람들이 내 앞뒤를 스쳐가지만 어떻게든 그들과 동행이 되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를 쓴다. 하지만 어느 순간 한참 사진을 찍다 보면 그중 한두 명이 내 앞을 지나쳐 버리고 또 내가 걷다 보면 사진을 찍는데 여념이 없는 그들 중 한둘을 지나는 경우가 반복된다. 결론은 단순하다. 그들의 존재를 무시하면 된다. 가끔은 배경으로 인식하기로 했다.


하늘에서는 비가 내렸다 다시 그쳤다를 반복한다. 비가 이렇게 반가웠던 적이 별로 없었다. 중고등 시절 우산이 없어 집에 까지 비를 쫄딱 맞으면 걷던 순간들이 생각난다. 그때 비는 너무나 시원하고 상쾌한 대상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비는 곧 산성비와 동일시됐고 비를 맞으면 머리가 빠져 대머리가 된다나 어쩐다나 하는 이상한 소문이 비를 불결한 하늘의 저주쯤으로 연결시키는 신화에 얽매이는 시간이 되어 버렸다. 그 순간들을 잊고 지냈다.

사람의 손길이 적어서 인가 이곳 숲길이 보여주는 숲과 나무의 모습이 좀 더 깊다는 느낌을 준다

오늘은 못된 신화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그러고 보면 비가 내리며 옷에 떨어지는 느낌과 빗줄기의 시원함이 몸으로 훨씬 강하게 다가선다. 이 같은 습기를 머금고 비가 내리지 않은 채 공기 중에 구름과 안개로 가득 차 있다면 너무나 힘든 걸음걸이가 됐을 것이다. 어쩌면 지금 숲이 아닌 바깥은 내 우려가 현실이 되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숲길을 거니는 것은 어찌나 기분 좋은 일인지...

호젓한 숲길은 점점 더 나를 깊은 망각의 틀속으로 빨아드리듯 내가 어디에 있거나 어디를 향하는지 잊게 해준다. 늘상 비슷한 느낌의 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길은 어느새 조금씩 다른 모습과 다른 특징을 보여주다가는 다시 버전을 달리해 새로움을 선사한다.

비가 이렇게 반가웠던 적이 별로 없었다

이곳이 1년간 열리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이란 말인가. 매일 같은 일상의 모습에 이 숲길이 열려있다면 이 신비로움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질 것이다.


나와 함께는 아니어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걷는 2명이 생겼다. 한 명은 나보다 걸음걸이가 빠르다. 다른 한 명은 시작 시점에서 나를 추월했지만 중간부터 내가 앞서고 난 후에는 나를 뒤따라오는 느낌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약속이나 하듯 뒤에서 사람 발자국 소리나 모습이 보이면 총총걸음으로 제갈길을 재촉하거나 아예 딴청을 부리며 그 사람이 나를 지나 빨리 시야에서 사라지기를 바라고 있었다.

양치식물 군락지를 이런 모습으로 보게되니 이 또한 새롭다.

중간중간 커다란 하천을 건너고 특이한 양치식물이 한 군데 군락을 이룬 모습을 보거나 특이한 식생의 나무를 보면서 내 발걸음은 조금씩 젖산이 쌓이는 피곤함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이 숲길이 과연 끝나기나 하려나 싶지만 이 호젓함이  싫지 않다. 아니 싫다기보다는 내 피곤함이 없는 한 이후로도 오랫동안 계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점점 커졌다.


나는 이제 장소와 시간에 상관없이 걷고 또 걷는 사람일 뿐이다. 이 숲길의 산책로를 찾은 소기의 목적이 조금은 달성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 보면 피곤함 조차 나의 일부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매일 같은 일상의 모습에 이 숲길이 열려있다면 이 신비로움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질 것이다

나무 숲으로 들어가서 어두워진 거리를 걷는데 앞쪽에 차량이 보인다. 안내원이 보이고 다시 한번 삼거리다. 안개는 점점 더 깊어가고 내리는 비는 변덕을 더 심하게 부리는 듯 내리다 말다를 계속 반복한다.


한쪽으로 동일한 나무가 풀밭 사이로 일정한 간격을 두고 심어져 있다.


"여기는 뭔가요?"

"품종 좋은 나무들만을 키우는 곳입니다. 이름이 채종원이라고 붙여졌습니다."

친절한 안내원이 있다는 것은 언제든 고마운 일이다. 그러고 보니 난대 아열대림산림연구소 명의의 표지판에는 비자나무를 집단적으로 키우고 있다는 설명이 깃들여져 있었다. 음... 우량종자를 키우는 곳이로구나...

<삼나무 전시림>

앞쪽에서 그동안의 고요함을 깨우듯 사람들의 목소리가 시끌시끌하다. 아 이제 끝인가. 벌써 도착했나? 적어도 2.5km 정도는 남았다는 팻말을 채종원에서 봤는데 벌써 길이 끝났을 리가 없다.


안내원이 서있다. 십여 명의 사람들이 시끌벅적 이야기를 나누며 쉬고 있다. 이곳을 빨리 벗어나야 한다.


"여기는 삼나무 전시림입니다. 구경하고 가세요."

하루 종일 느끼는 일이지만 참 친절들 하다. 구경 안 한다고 입장료를 못 받거나 하는 일도 아닌데 삼나무 전시림을 보라고 굳이 권한다.


"아까 다른 전시림을 월든 삼거리에서 봤는데요"
"그 쪽 나무들과는 차원이 달라요. 힘들어서 그냥 가시게요?"


괜히 오기가 생긴다.

"뭐가 다른데요?"

"그쪽 삼나무들은 1960년대나 70년대 조림을 위해 세워진 나무들이고요. 이쪽 나무들은 1930년대 조림된 나무들입니다. 나무 둘레가 어른 한두 아름 정도가 돼요"

안내원의 설명에 오기가 생긴다. 사실 발바닥이 힘들기 시작했다. 시간상으로는 그다지 긴 시간은 아니겠지만 밥을 먹기 위해 약 5분간 잠깐 앉았던 경우를 제외하고는 아직껏 제대로 쉬어 본 적이 없다.


지쳐서 그냥 가려느냐는 말에 맘이 상했던지 둘러보기로 결심을 했다. 난 이 결심이 얼마나 중요한지 조금 후에 깨닫게 된다. 

하루 종일 느끼는 일이지만 참 친절들 하다. 구경 안 한다고 입장료를 못 받거나 하는 일도 아닌데 삼나무 전시림을 보라고 굳이 권한다

삼나무 전시림은 입구부터 나를 압도했다. 삼나무들은 적어도 8~90년은 된 나무들인 셈이다. 나무들의 둘레가 월든삼거리의 삼나무들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안내원이 말에 공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숲의 신비로움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싶다.  둘러보는데 비가 다시 내린다. 삼나무 숲에서 맞는 비는 전혀 싫지 않은데다 반갑기까지 하다. 그리고 비현실적이기도 하다.


나무줄기에 둘러싼 이끼들도 그렇거니와 쭉쭉 뻗은 나무들의 기운이 땅에 가득 차 있는 기운을 받고 하늘로 치솟고 있음을 충분히 이야기해준다. 멋지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삼나무 숲이 100년 가까이 되니 저런 신비로움과 풍성함을 만들어 주는구나. 숲이 주는 치유의 힘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20여 분간 삼나무 전시림을 둘러보고는 조금 전 시끄럽게 떠들던 일행이 앉았던 나무 의자에 앉아 처음으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발이 편하다. 허리가 아프다. 그동안 걷기를 등한시했다는 사실을 알겠다. 시간이 날 때마다 다시 걸어야 한다. 그래야 이 숲길 같은 힐링의 느낌을 온전히 내 것으로 할 수 있을 것이다.


'수고하세요'라는 말을 남긴 채 걸음을 힘차게 옮긴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길을 걸으면 된다. 오늘의 마지막 일정이자 목적지인 사려니 오름만 남았다. 2.4km만 가면 된다. 그 같은 결심을 앞에 두고 다시 갈림길을 맞았다. 가던 길을 아무런 생각 없이 그냥 걸으면 사려니숲길의 출구로 나올 것이다. 갈림길 이정표를 보고는 앞서 나간 3명의 일행이 사려니오름은 나중에 오자며 그냥 평탄한 숲길을 택한다.


난 주저할 것 없이 사려니 오름길을 택했다.  그 선택이 얼마나 훌륭했으며 얼마나 나에게 최선의 선택이었는지를 아마도 평생 두고두고 이야기할 것이다. 그 숲길의 훌륭함을 이야기 하기 이전에 사려니오름 정상까지 그 누구도 만나지 않고 오롯이 혼자 이 숲길을 즐길 수 있었다는데 대만족이다. 더구나 숲 속에 낀 안개는 미지의 신비 세계로 나를 이끌기에 충분했다. 자칫 공포영화의 괴기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할 수도 있었을 테지만 공교롭게도 숲이 주는 신선함과 긍정적인 기운이 너무 강해 순간이라도 불길한 느낌이나 무섭다는 느낌을 가질 약간의 여유도 없었다. 그저 이 신선한 힐링의 기분을 천천히 만끽하며 걸을 뿐이다.

숲이 주는 치유의 힘에 대해 생각이 났다

사려니오름 가는 길은 마치 환희를 향해 찾아 나서는 탐구자가 미지의 길을 기분 좋게 통과하는 기분과 흡사하다. 늘 똑같은 길이라고 생각하는 사이에 길의 모양과 안개의 짙은 정도는 그때그때마다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며 오름으로의 길을 안내하고 있었다. 


진심으로 마음속에서 갈구하고 있었다. 이 길이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 피곤함의 정도만 더 나빠지지 않는다면 영원히 계속되어도 걸어가고픈 긍정적인 마인드가 있는 길을 만났다. 살면서 숲이 주는 힐링의 힘이 어떤 것인가를 알기가 쉽지 않은 순간들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한편으로는 신기하기도 하다. 제주의 숲은 육지의 숲들과 달리 종종 기괴함을 내포하기도 한다. 일반적인 나무에 잎들만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넝쿨이 나무와 나무를 이어주며 빽빽하게 자리 잡고 있기에 숲이 주는 기괴함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때로는 어두운 기운을 보내는 숲의 느낌들도 느껴지는 곳이 이곳엔들 왜 없겠는가.

사려니오름 가는 길은 마치 환희를 향해 찾아 나서는 탐구자가 미지의 길을 기분 좋게 통과하는 기분과 흡사하다


끝나지 않을 듯한 신비한 안개 속의 길은 이윽고 팔색조 갈림길이라는 이정표 앞에서 중단해야 하는 아쉬움을 전해줬다. 


또다시 갈림길의 연속이다. 이윽고 오름 오르는 길이라는 이정표 앞에서 그동안 보여준 숲길의 묘한 분위기 대신에 나무테크로 놓인 오름을 오르는 길을 택해야 했다. 인생은 끊임없는 선택의 연속일 뿐이다.

나무 데크로 만들어 놓은 오름길은 이전의 숲길에 비하면 큰 감동을 줄 수는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오르는 나무계단이 편할리 없을 것이요 지루함을 함께 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무계단의 끝은 원시적인 오름의 정상을 알려주는 듯 새로운 능선길의 모습을 보여준다. 나무에 가려 낙엽이 깔려있거나 분명 능선길임에도 발바닥으로 느껴지는 것은 나무뿌리가 노출된 울퉁불퉁한 능선길을 보여주고 있었다.

숲 속에 갇혀있듯 앞을 모르고 걷던 능선길 저편으로 자신이 마치 생명의 나무라도 되는 듯 나무 데크에 둘러싸인 한그루의 나무가 서있다. 


다 왔다. 정상이다. 오름이 얼마나 높은 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른 오름에 비해 그다지 커다랗고 극적인 내용이 없는 오름일 것이다. 그럼에도 정상의 나무가 서있는 모습만으로도 나는 내 상상 속의 나무와 이를 연상시킬 수 있었다.


어린 시절 아들에게 들려주던 나의 판타지 이야기가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다시 판타지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만 독식하던 즐거운 도보여행은 여기서 끝내야 한다. 정상 도착 직전 3명의 일행이 내 앞을 막고 있었다. 그들을 발견하고서는 사람을 만났다는 반가움보다 야속함이 먼저 생각났다.


안 만났으면 좋았을 것을... 좀 더 일찍 산행길을 서둘러 줬으면 좋았을 것을...

설명대로라면 이쪽 전경으로 서귀포 앞바다가 보여야 하나 그 풍경과 나무로 이루어진 숲의 전경을 알길이 없다.
한 뿌리에서 7개의 나무가지가 생겨났다.

짧은 정상에서의 휴식을 뒤로 한채 사람들과 빠른 이별을 위해 휴식을 일찍 끝내고 하산길을 서둘렀다.


사려니오름의 하산길은 아주 단순하다. 일직선으로 나무계단을 만들어 아래까지 연결시켜 놓았다.

나무 계단의 수가 궁금한 사람들을 위해 설명도 놓치지 않았다. 777개의 나무계단이 있단다. 그 수가 맞는지 틀리는지 알 수가 없지만 여기까지 와서 지친 몸을 이끌고 그 수를 세어보는 사람들이 있을 듯 싶지 않다.


그나저나 궁금증이 생겼다. 이렇게 오름에 오르내리는 길을 잘 만들어 놓고 중간에 힘들 테니 돌아서 올라오는 길까지 만들어 놓고 이에 대해 출입금지를 시켜버리면 어쩌라는 것이지?


일 년에 한번 여기 오는 사람들을 위해 이 같은 데크를 만들어 놓았을 리는 없을 듯 싶다. 그럼에도 여기는 일 년에 한번 열린다. 더구나 반대편에서 걸어오는 사람들에게는 여기는 끝자락에 위치해 있어 웬만해서는 이 오름을 오를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암튼 그 같은 궁금증을 갖고 내려가자 방문객을 맞이하는 센터가 있다. 중간에 사람들을 체크하기 위해 나누어준 표를 걷는다. 그러고 보니 중간쯤에서 연락처와 이름을 적고 표를 받은 적이 있다. 나는 106번 이었다.


"혹시 뒤에 몇 분이나 더 계시나요?"

"제가 보기로는 3명이 한 팀인 분들만 만났습니다"

"4팀 정도 더 와야 하는데..."

이곳은 오름을 오르지 않은 사람들도 결국 만나게 되는 도착점인 이유로 방문자를 카운팅 할 수 있었다. 그래야 출입이 통제된 후에도 낙오자가 발생하지 않을 터였다.


5분여를 내려가니 나보다 먼저 도착한 사람들이 임시 천막에 앉아 버스를 기다린다. 나보다 먼저 간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내가 이곳저곳을 들르는 사이 이들은 먼저 셔틀버스를 타고 간 것 일터이다.

사려니오름의 하산길은 아주 단순하다. 일직선으로 나무계단을 만들어 아래까지 연결시켜 놓았다

셔틀버스를 기다리는 도중 궁금중이 돋아 물었다. 

"사려니오름은 평상시에 못 오나요?"

"산림청 홈페이지에서 신청하면 일정 인원에 대해 여기에서부터 다녀갈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럴 테지... 그래도 내년에 다시 오는 게 중간에 이곳만 와서 777개의 계단을 오르는 것보다는 나은 듯 싶었다.


4.3 평화공원으로 돌아오는 20여 분간의 버스 안에서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아주 달콤하면서도 기분 좋은 꿈을 꿨다. 피곤함이 곧 달콤함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운전기사가 도착점을 알려준다. 다시 6시간 반전의 그 장소에 왔다. 원위치다. 그럼에도 기분은 원위치가 아니다.


길지만 기분 좋은 걷기 시간들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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