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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k Feb 04. 2017

[동티모르 이야기] 동티모르 학교 이야기

이곳 로스팔로스 no.3 초등학교에 온지 7개월이 넘어간다. 별로 한 것도 없는데, 시간은 꾸역꾸역 흐른다.


동티모르는 매년 1월이 새 학년 시작이다. 한 학년도는 총 세 학기로 이루어져있다. 각 학기말에는 시험을 보고 총 세 번의 시험을 종합해서 유급 여부가 결정된다. 올해도 보니 한 반에 두세 명은 유급된 아이들이 있다. 


12월 마지막 등교일에 성적표를 나눠준다. 원래는 학생 한 명당 Caderneta라는 얇은 공책 비슷한 걸 주고 거기에 지금까지의 성적을 기록한다. 일종의 생활기록부다. 그리고 거기에는 그 해 교육과정을 패스했는지 아니면 유급해서 남아야 하는지 쓰여있다. 이날 흡사 90년대, 인터넷이 없던 시절 대학합격자 명단 발표와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아이들이 선생님 앞에 모여들어 자신의 Caderneta를 받아들고는 유급이 아닌걸 확인하자 환호한다. 대부분 진급이 되는데도 아이들은 무척 긴장했나 보다. 성적표를 받아든 아이들의 표정이 그 어느 때보다 환했다. 

2017학년도 신입생 등록 안내문


Caderneta를 나누어주는 선생님. 어떤 선생님들은 학부모에게 직접 전해주고, 어떤 선생님들은 그냥 학생들에게 주기도 한다.


그래서 한 명도 빠짐없이 진급한 줄 알았는데, 새 학기 개학하고 와서 5학년 반에 들어가보니 작년 5학년 애들이 몇 명 남아있다. 그들이 그냥 그렇게 자연스럽게 섞여 있는 걸 보니 조금 신기했다.


참 이날은 6학년 졸업하는 날이기도 했다. 그런데 졸업식은 따로 하지 않았다. 졸업이 아니라 그저 6학년에서 7학년으로 넘어가는 진급 정도로 여기는 모양이다. 초등과 중등으로 나뉘어있는 한국과는 달리 이곳은 Ensino Basico(초등학교와 중학교)와 Secundaria(고등학교)로 나뉘어있다. 그리고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별개의 기관이 아니라 하나의 중학교에 초등학교 서너 개가 분교처럼 속해 있는 형태다. 우리 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은 모두 옆 동네에 있는 상급 중학교 7학년으로 진급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특별한 세레모니 없이 그냥 선생님들과 개별적인 인사만 하고 헤어졌다.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지나고 어느덧 새 학년, 새 학기가 시작됐다. 당초에는 1월 4일이 올 새 학기 개학일이었다. 작년 교육부 달력에 그리 써있었다. 그렇지만 아무도 그때 나오지 않을 거라는 교장의 예언이 있었다. 아니나다를까 1월 3일이 되자 교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1월 16일이 개학이란다.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 그냥 교육부에서 그러라고 했다며, 내일 나오지 말라고 했다.


그래놓고선 다음날인가 다다음날에 또 전화해서는 지금 교육청으로 오란다. 연수참가비를 받으러 오라는 거다. 지난 12월 방학 후 1주일 동안 현지 선생님들 연수를 함께 들었다. 그때 무슨 돈을 줄 거라면서 싸인을 받고는 여권 사본까지 가져갔다. 이곳에서는 선생님들이 연수에 참여하면 돈을 준다고 한다. 연수래봤자 그저 한 명씩 돌아가면서 수업 시연하는 것뿐이다. 전문가가 와서 피드백을 해주고 이런 건 없다. 아무튼 이런 이유로 교육청에 가니 라우뗌 지역 전 선생님들이 온 듯했다.

연수참가비를 받기 위해 기다리는 선생님들. 월급 대비 적지 않은 돈을 준다.
2017학년도 학사 달력. 공휴일, 개학, 방학일 등 각종 일정이 기재되어 있다. 빨간날은 만국공통 휴일이다. 



개학을 하고 나서도 수업은 한참 동안 시작하지 못했다. 나뿐 아니라 모든 선생님이 수업에 들어가지 않았다. 3분의 1 정도는 아예 오지도 않고.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개학 첫날 새로운 반 편성 결과를 알려주고 담임이 누군지 알려주는 게 우리의 상식인데, 개학식날에서야 반 편성을 어떻게 할지 이야기하기 시작하더니 셋째날인가 넷째날이 돼서야 아이들에게 알려주었다. 그때까지 아이들은 학교에 와서도 교실에 발 한 번 들여놓지 못하고(반이 없으니!) 그저 운동장에서 자기들끼리 놀며 시간을 보냈다는 말이다.



나는 그러고도 한 3,4일을 더 수업에 들어가지 못했다. 나는 일단 담임교사가 아니고 음악만 맡고 있어서 별도의 시간표가 필요한데, 학교에서 시간표를 짜주질 않는 거다. 내가 언제쯤 시간표가 나오냐고 물어보면 Orsida라는 말만 되돌아온다. ‘나중에’라는 동티모르 말이다. 열 번쯤의 orsida를 듣고 나서야 교장이 찾아와서 종이 하나를 내민다. 현지 선생님별 수업 시수와 과목 현황이었다. 날더러 내가 들어가는 학년인 5,6학년 전 과목 시간표를 짜줄 수 있냐고 부탁한다. 나라고 뭐 시간표 짜는 일에 특별한 스킬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부탁하는데 거절할 이유도 없어 그러겠노라 하고는 골머리를 썩히며 결국은 완성했다.


가만 보니 내가 오고 나서부터 꼭 나 때문은 아니더라도 많은 것이 바뀐 듯하다. 시험 체제도 그렇고 시간표도 그렇고 교육과정도 많이 바뀌었고 또 바뀔 예정이란다. 그래서 다들 낯설어 한다. 내가 뭘 물어봐도 모른다는 말밖에 안 한다. 듣기로는 5,6학년 교육과정이 새로 편성돼서 내려올 거라고 했는데, 개학 한 달이 다되어가는데도 구경도 못했다. 그리고 그냥 그뿐이다.  있단 한국 같으면 엄청나게 예외적인 상황일 텐데 덤덤하게 그냥 그랬어, 라는 식으로 말하는 교장을 보니 참 신기할 뿐이다.


새 교육과정이 문제가 될 수도 있는 게, 사실 나는 음악을 가르치고는 있지만 동티모르 교육과정에 음악 과목 자체는 없다. 단지 예술(Artes e Cultura) 과목에 음악, 미술, 실과 등의 과목이 포함되어 있을 뿐이라 나는 엄밀히 말하면 예술 과목을 담당하고 있는 거다. 그런데 문제는 예술 과목의 여러 영역(음악, 미술 등)이 학년별로 고루 분배되어 있지 않고 특정 학년에 편중될 수도 있어서 만약 5,6학년 예술 과목 교육과정에 음악이 편성되어 있지 않으면 나는 5,6학년에게 음악을 가르치면 안 되는 거다. 교육청 장학사의 말로는 교육과정에 나와있는 수업 계획을 반드시 따라야 한단다. 그러면사실 교육과정이 확실히 내려오기 전까진 나를 어느 학년에도 배치하지 않고 기다리는 게 맞는 걸텐데 교장은 아마 5,6학년에 음악 영역이 있을 거라는 말만 되풀이하면서 5,6학년을 맡으라고 한 거다. 그러나 교장이 아무리 그렇게 말해도 여기서는 뚜껑을 열어봐야 안다. 심지어 뚜껑을 열었는데 알고 보니 냄비가 아닌 경우도 있다. 어쨌든 새 교육과정이 어떻게 오느냐에 따라 팔자에 없는 미술, 실과나 농사, 전통문화 등등을 가르쳐야 할 수도 있는 거다.

 

그래서, 그냥 그러려니 하며 사는 법을 익힌다. 개학일이 알 수 없는 이유로 바뀌고 외국인 선생님이 스스로 학교 시간표를 짜고 교육과정 공백이라는 상황이 생겨도 그러려니 하며 사는 거다.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르니 말이다.


학교 근처 성당에서 주최하는 풋살 경기 대회. 인근 지역 학교나 마을 단위로 참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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