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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k Feb 12. 2017

[동티모르 이야기] 미사 성가 반주기

“Maun David, ita bele ajuda ita nia eskola?”     


늘 이 말로 시작한다. “다빗, 너 우리 학교 좀 도와줄 수 있어?”     


그럼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나는 분명 이 학교를 도우러 이곳 로스팔로스까지 왔고 이미 여러 가지 일을 하며 돕고 있는데 뭘 또 도와달라는 걸까? 지난번 ‘독립기념일 리코더 공연 무산 사태’ 이후 약간 예민해졌다. 또 뭘 부탁해서 뭘 무산시키려는 걸까.     


교장선생님이 말하길 일요일 성당 미사에서 우리 학교 학생들이 성가를 불러야 한단다. 미사 때 피아노 반주를 좀 해줄 수 있냐는 부탁이었다. 일단 나는 체르니 30도 못 뗀 야매고, 가톨릭교인도 아니며, 설사 가톨릭교인이라 해도 동티모르 성가는 모른다는 이유로 거절하려 했으나, 늘 koko라는 단어에 나의 방어선은 무너진다. Koko, ‘한번 시도해보다’라는 떼뚬어 단어다. 실제로 안 해도 좋으니 시도만이라도 해달라는 거다.      


그리하여 다음날 전자피아노를 들고 아이들이 연습하는 장소에 갔다. 아이들에게는 성가 가사만 써서 나눠주었다. 음표로 된 악보는 없다. 간혹 숫자(도는 1, 레는 2 등등)로 된 악보는 종종 보이는데, 그마저도 어차피 독보가 가능한 사람이 거의 없다. 노래 연습은 선생님들이 성가 하나씩 불러주면 그걸 따라 부르는 식이었다. 문제는 선생님들도 노래를 헷갈려 한다는 것이다. 가사만 써져 있으니 한참을 들여다봐야 그게 무슨 노래인지 떠오르는 모양이다. 8곡 정도를 불러야 하는데, 일단 첫 시작만 잘 해놓으면 다들 잘 부르지만 그 첫 시작이 영 안 된다. 처음에 선생님 서너 명이 머리를 맞대고도 무슨 노래인지 기억을 못 해내면 다른 교실에 있는 선생님을 불러다가 물어본다. 그러다 또 다음 곡에서 막히면 또 다른 선생님을 불러서 물어본다. 



어찌어찌해서 내가 노래를 녹음해가서 멜로디를 따서 연주해주면 거기에 따라 노래를 시작하기로 했다. 그렇게 연습하니 괜찮았다. 이틀 정도를 그렇게 연습하고 일요일 당일 미사를 보러 성당엘 갔다.     



오전 10시에 시작하기로 되어 있어서 조금 일찍 갔다. 피아노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좀 보러. 사실 내가 가장 걱정했던 거는 정작 성당에 피아노가 없는 상황이었는데, 다행히 그렇지는 않았다. 다만 전자키보드였고 아답터 연결 선이 없긴 했지만, 성당에서 금방 찾아줬다.     


우리가 드리는 미사 직전에 또 미사가 하나 있었는데, 중학생들이 드리는 미사라고 했다. 우리가 드리는 미사는 초등학생들이 드리는, 일종의 유초등부 미사고 이때 미사 성가를 한 학교씩 돌아가면서 맡는다는 설명을 들었다. 1년에 한두 번 정도 차례가 오는 모양이었다.      


성당에 가는 아이들은 늘 멋있고 예쁘게 꾸미고 온다. 실은 남학생들이 멋있는 것보다 여학생들이 예쁜 게 더 눈에 띈다. 남학생들은 잘 차려입어야 청바지나 면바지에 셔츠지만, 여학생들은 파티복처럼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온다. 실은 화려함보다는 자기 옷 중에 가장 좋은 옷이라는 것에 방점이 찍혀있다. 그래서 형형색색의 드레스를 보고 있노라니 이 아이들이 학교에서 맨날 마주치는 아이들 맞나 싶을 정도였다.     



한국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도 느꼈던 점인데, 여기서도 비슷한 걸 발견했다. 다름 아니라 초등학교 4~6학년 정도 나이대 아이들이 입는 옷 수준에 개인차가 무척 심하다는 것이다. 이건 돈이 많고 적어서 비싼 옷을 입고 말고 문제가 아니다. 아동복을 입느냐 성인옷을 입느냐의 차이다. 한국에서도 6학년이 되었는데도 어여쁜 키티 가방에 엄마가 꾸며주는 리본 머리띠, 레이스 드레스 등의 꽃단장을 하고 학생이 있는 반면에 중학교, 고등학교 언니들 못지 않게 스키니진 패션 센스를 발휘하는 4학년 학생도 있다.      


동티모르 아이들의 성당 패션에도 그런 게 확연히 드러나서 나 혼자 재밌었다. 분명 둘이 친구인데, 한 명은 멀리서 봐도 어른, 가까이서 봐도 어른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평상시에 입을 수 있으면서도 차려입은 듯한 깔끔하고 세련된 복장이다. 다른 한 명은 바비인형에게 입힐법한 핫핑크한 드레스를 입고 있다. 더러 가슴팍에는 헬로키티가 자리잡고 있기도 하며 더러 등에는 하늘하늘한 망사 망토가 휘날리기도 한다. 소재도 거의 플라스틱에 가까울 정도로 조악하다. 우리나라 학예회 때 공주님 역할에 어울리는 옷, 아니면 <벡터맨> 같은 드라마에서 우주 공주가 입고 나올만한 옷 같기도 하다.     


유난히 그런 옷을 입은 어린이들이 많은 건, 조심스럽게 추측하건대 인도네시아(동티모르의 공산품은 대부분 인도네시아에서 수입한다)의 미감이 원래 그런 것 같다. 인도네시아를 직접 가보질 않아서 모르겠지만, 가끔 텔레비전을 통해 인도네시아 방송을 보면 한국 기준으로는 너무 ‘뿅뿅’대는 듯한 미감이 눈에 띈다. 아동용 학용품이나 장난감도 유난히 더 화려하고 찬란찬란하다. 거기에 일주일에 한번은 좋은 옷이 필요하긴 한데 제대로 된 아동용 옷이 없기도 하고 거기에 들일 돈도 없고 하니 학예회 소품 같은 드레스라도 사서 입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봤다. 어쨌든 성당에 가려면 그에 맞는 옷을 입어야 하니까 일주일에 한번은 꼭 그 옷을 입는 거다. 그게 제일 예쁘고 좋은 옷이니까.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성당 안으로 들어섰다.     



동티모르에서 미사를 드리는 건 처음이었다. 한국에서는 서너 번 정도 가본 적이 있다. 분위기는 비슷한 듯했다. 다만 신체를 이용한 여러 가지 의식이나 표현이 좀 더 다양하다. 이를테면, 한국에서는 잘 못 봤는데, 예배당에 들어설 때와 나갈 때 무릎 하나를 땅에 대고 인사를 한다. 그리고 미사 중간 중간에 두 무릎을 꿇고 기도할 때 여러 번 있다. 한국에서는 두 무릎을 다 꿇지는 않았던 듯하다.      


유초등부 미사답게 신부님이 말씀을 재미있게 전하셨다. 거의 못 알아듣고 일부 문장만 알아들었다. 말씀 도중, 말로만 사랑한다고 말하지 말고 실제로 사랑하라면서 갑자기 내 앞으로 다가와 “사랑해” 라고 말하셨다. 그러면서 “Korea ga? 한국인 맞죠? 사랑해 loos ga? 사랑해 맞아요?”라고 물어보았다. 다들 웃으며 나를 쳐다봤다. 그러더니 다같이 “사랑해”를 따라 해보라며. 말로만 “사랑해”하지 말고 행동으로 “사랑해”하라고 하셨다.      

1시간 남짓해 미사가 다 끝나고 집에 가면서 아이들 수백 명이 우르르 몰려들어 신부님과 선생님들에게 악수를 청한다. 여기서 학생들이 어른에게 인사하는 방법이 따로 있다. 악수를 청해 어른의 손을 잡으면 그 손을 자신의 이마나 입에 댄다. 그러면서 “Boa viagem!”이라고 말한다. 안녕히 가시라는 뜻이다. 평일 학교 끝나고 집에 갈 때도 늘 이렇게 인사한다. 처음에는 뭔지 몰라서 손을 안 뺏기려고 힘을 꽉 줬다. 이제는 내가 손잡은 아이의 이마에 갖다 대준다. 평소에는 까불거리는 아이들도 이 인사를 할 때만큼은 공손하게 나의 손을 기다리는 걸 보면 신기하기도 하다.  물론 그중에서도 좀 머리가 컸다는 아이들은 인사고 뭐고 없이 그냥 집에 가긴 하지만. 


    

반주는 그럭저럭이었다. 미사 전례를 잘 모르니 버벅일 수밖에 없었다. 왜인지는 몰라도 빼먹은 노래도 있고, 내가 전주를 놓쳐서 아이들 노래 음정이 안 맞기도 했다. 다음에 또 하라고 하면 더 잘 할 수 있다. 그러나 다음 부탁은 아마 피아노 반주에만 그치지 않을 거라는 게 내 예상이다. 그건,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지. 아마 다음과 같은 부탁을 해오지 않을까. 예상 1. 선생님들 대신 성가 가르치기 2. 성당에서 피아노 가르치기 3. 매주 와서 반주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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