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한 번 해본 테툰어 성가 번역
인구 대부분이 가톨릭인 동티모르에서는 성당 어린이 미사 성가대를 학교별로 돌아가면서 맡는다. 그래서 나도 한 번 가본 적이 있다. 사실 내가 굳이 따라갈 필요는 없는 일이지만 학교 선생님들이 성가 피아노 반주를 부탁해서 갔다. 그 이야기는 전에 올린 바 있다.
우리 학교가 미사 성가대를 할 차례가 다시 돌아왔다. 지난 2월 이후 4개월만이다. 이번에도 반주를 하게 되었다. 악보도 없이 그저 가사만 써서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아이들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 내가 알아서 맞추는 식으로 연습을 했다. 선생님들은 내가 듣고 어떻게든 따라 치는 게 신기하지도 않은 모양이다. 한국에서는 굉장히 신기해하는 기술인데도 말이다. 어쨌든 가사만 받아들고 코드를 따서 얼추 노래에 맞춰서 반주를 할 수 있게 됐다.
그러다가 성가 내용이 궁금하기도 하고 한국어로 번역을 해보면 어떨까 싶어서 꼼꼼이 읽어봤다. 그리고 제일 만만해 보이는 곡 하나를 골라 아래처럼 번역해봤다.
Ami Aman, iha lalehan,
하늘에 있는 우리 아버지.
Tulun ema atu hahí Ita Naran;
사람들이 당신의 이름을 높이도록 도와주십시오
Halo Ita Nia reinu to’o mai ami;
당신의 왕국이 우리에게 이르도록 하십시오.
Haraik tulun ba ema atu tuir Ita Nia hakarak
Iha rai nu’udar iha lalehan.
하늘에서와 같이 이 땅에서 사람들이 당신이 원하는 바를 따르도록 도와주십시오.
Ohin Ne’e, Haraik ai-han lor-loron nian mai ami;
오늘, 매일의 음식을 우리에게 내려주시고
Haraik perdua mai ami salan
Nu’udar ami perdua ba ema halo aat ami;
우리에게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우리가 용서하는 것처럼 우리의 죄에 용서를 내려주십시오.
Labele husik ami monu ba tentasaun,
Maibé hasai ami hosi buat aat.
우리가 유혹에 넘어지지 않도록 내버려두지 마시되 우리를 무엇인가 나쁜 것으로부터 꺼내주십시오.
가사 내용을 보니 주기도문을 바탕으로 한 노래다. 몇 년 전까지는 나도 교회에 다녔어서 아직 주기도문은 기억이 난다. 일부러 한국어 주기도문과 비교해보려고 단어 하나 하나를 일상어처럼 생각하고 직역했다. 이를테면 한국어로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는 부분에 테툰어로는 'hasai'라는 동사가 있다. 'hasai'는 '없애다, 꺼내다, 끝내다' 등의 의미가 있다. 그래서 '~으로부터 꺼내다'고 했다.
그런데 마지막 부분("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은 내가 받은 가사에 없었다. 한국어 문장을 바탕으로 테툰어로 번역해보면,
"Ita nia reinu, kbiit no gloia sei rohan laek."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내일 가서 확인해봐야겠다).
'테툰어 시간'이라는 제목을 단 김에 한국어와 비교해서 테툰어의 특징 중 하나를 살펴보면 좋겠다.
이 노래의 첫 단어 'ami'는 우리나라에는 딱히 없는 말이다. '우리'라고 번역할 수 있는데, 정확한 뜻은 듣는 사람을 제외한 '우리'다. 한국어에 이런 말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저희'라는 단어도 듣는 사람을 제외한 '우리'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ami'를 '저희'로 번역하면 안 된다. 이건 전혀 높임말이 아니니까.
한편 한국어에서는 높임말을 써야 하는 대상에게 듣는 사람도 포함하는 '우리'는 좀 예의없는 말이 된다. 높임말 사용법에 어긋나는지까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잘 쓰진 않는다. '저희'도 좀 어색하다. '저희'는 말하는 이를 낮춰부르는 말이라 듣는 사람도 함께 낮추는 느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는 복잡하게 '선생님과 저', '사장님과 저희들'이라고 표현해야 할 것 같다.
테툰어에서 듣는 사람도 포함한 '우리'를 지칭할 때는 'ita'를 쓴다. 그런데 좀 헷갈리는 게 '당신'이라는 말도 'ita'다. 그래서 상대방이 뭘 말할 때 '우리 둘 다'를 지칭하는 건지 '청자로서 나'를 지칭하는 건지 파악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문맥과 상황을 통해 파악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말만으로 내 의도를 전달할 자신이 없어서 말을 할 때 꼭 손을 쓴다. '당신'을 말하려고 할 때는 손으로 상대방을 가리키고 '너와 나, 우리'를 말하려고 할 때는 손을 들고 빙빙 돌리며 말한다. 옆에서 보면 되게 웃길 거다.
아무튼 이런 노래처럼 신이 청자가 되는 노래를 부를 때는 대부분 'ami'를 쓸 수밖에 없다. '우리의 죄를 용서하소서'에서 '우리'는 기도를 듣는 신을 제외한 우리여야 하니까. 반면에 신에 관해서 인간끼리 이야기할 때, 예를 들면 '신이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사' 같은 문장에서는 '우리'를 'ita'로 써야 한다. 신이 너를 제외하고 '우리만' 사랑할 리는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결론은 테툰어, 쉬운데 어렵다.
(그나저나 <독일어 시간>이라는 책을 읽어 보진 않았지만 도대체 왜 그런 제목을 갖고 있는 걸까? 서점 문학 코너에 들를 때마다 의아했지만 한번도 펼쳐 보지는 않았다. 정말 '독일어 시간'이 될까봐. 난 독일어를 전혀 모른다. 그럼, 당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