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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k Aug 06. 2016

[동티모르 이야기] Maun, Mana, Kolega!

한국에서 살다 보면 종종 적당한 호칭을 찾지 못해 난감할 때가 있다. 내 앞에 있는 이 사람을 '너'라고 불러야 할지 그냥 이름을 불러야 할지 '~~씨'라고 불러야 할지 등등 어떤 호칭도 어색하다. 공식적인 관계에서는 그나마 낫다. 대한민국 성인 대부분이 선생님 혹은 사장님이기 때문이다. 모르겠으면 '선생님' 아니면 '사장님'으로 부르면 된다. 일종의 암묵적 룰이랄까. 그런데 도저히 선생님 혹은 사장님으로 부르기 어려울 때가 있다. 이를테면 소개팅이나 젊은 또래의 친목 모임 같은 데서 말이다. 이름을 부를 정도로 친해지기 전에는 보통 '저기요'나 '그쪽'이라는 말을 쓴다. 이런 경우에는 2인칭 대명사 '너' 혹은 '당신'이라는 말조차도 쓰지 않는다. 말을 놓기 전에는 말이다. 간혹 '~~씨'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 말은 존대하는 말이면서도 존대하는 느낌이 안 드는 묘한 정체성을 지니고 있어 많이 사용되지 않는다.


동티모르에서는 이런 고민할 필요가 없다. 마법의 단어 세 가지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마운maun, 마나mana 그리고 꼴레가kolega다. 이 세 단어면 대통령이나 장차관, 혹은 정말 나이 많은 노인을 만나지 않는 이상 모든 사람을 이 세 단어로 부르고 나 또한 모든 사람에게 부담 없이 불릴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길 가다가 어떤 남자를 보았다. 뒤에서 보니 이 남자의 가방이 열려 있다. 그래서 그에게 다가가 가방이 열렸다고 말해주고 싶다. 한국어로는 뭐라고 그를 부를 것인가. 99%의 한국인은 '저기요'라고 부를 것이다. 영어로는? 영어권 국가에서 살아본 경험도 없고 영어도 잘 못해 확신할 수 없지만 'hey' 정도로 부르면 되지 않을까? 동티모르에서는 '마운!'이라고 부르면 된다. 만약 여자에게 말을 건다면 '마나!'라고 부르면 된다. 


마운은 사전적으로 '형' 또는 '오빠'를 뜻한다. 친형제 혹은 친남매에서도 쓰고 그냥 우리말에서 쓰이듯 나보다 나이 많은 남성을 지칭할 때도 쓴다. 만약 상대방이 나보다 나이가 많은지 적은지 모르거나 나이가 적은 게 분명해 보이지만 아직 나이를 밝히기 전이라면 통상 서로 마운이라고 부른다. 여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초면이든 구면이든 마운 혹은 마나라고 부르면 예의에 어긋날 일이 없다. 물론 어린이들이나 교복을 입은 학생의 경우에는 마운이나 마나보다는 동생을 지칭하는 단어인 알린 alin이 좋다. 


나는 마운과 마나라는 단어가 좋다. 사전적 의미로 보면 어느 정도 상대방을 존중하는 의미가 있다. 친해지기 전, 나이를 알기 전이라도 상대방을 형, 오빠 혹은 누나, 언니로 존칭해주니 말이다. 그와 동시에 격식이 없다. 내가 저 인간을 사장이라고 불러야 할지 선생이라고 불러야 할지 고민할 필요가 없으니 절로 친밀감이 생긴다. 존중과 친밀함을 동시에 표현하는 단어라니 얼마나 좋은가. 사장이 아닌데 사장이라고 부를 필요도 없고 선생이 아닌데 선생이라고 부를 필요도 없으니.


이보다 더 격식이 없으면서도 어떤 경우에는 더 널리 쓰이는 단어가 하나 더 있다. 바로 꼴레가다. 사전적 의미로 '친구'인 이 단어는 포르투갈어에서 왔다. 영어의 colleague를 생각하면 될 것 같다. 그런데 아무에게나 불러도 된다. 친구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그냥 길 가다가 인사하면서 아무개에게 꼴레가라고 불러도 아무 상관이 없다. 상대방이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꼴레가다. 이 단어 역시 나는 좋다. 중년의 한국 남성이 옷가게에 들어가니 젊은 직원이 꼴레가라고 반긴 적이 있다. 물론 이 둘은 초면이다. 그 중년의 한국 남성은 뭐 저런 족속들이 다 있냐며, 개나 소나 다 친구라고 한다고 분개했지만 나는 좋았다. 내 사장도 아닌 사람을 사장이라고 부른다고 그 인간이 진짜 사장이 되는 건 아니지만 꼴레가라고 부르면 꼴레가가 될 수도 있지 않은가. 


길에서 처음 만난 동티모르 사람들이 내게 인사하며 꼴레가라고 불러주면 기분이 좋다. 일하는 학교에서 나보다 나이가 많은 선생님들이 나를 마운이라고 불러주면 기분이 좋다. 제대로 격식을 차리려면야 미스터 Mister도 있고 포르투갈식으로 세뇨르 Senhor도 있지만 마운이라고 불러주면 적당한 존중과 친밀감이 모두 느껴진다. 精으로 치면 동티모르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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