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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k Oct 20. 2017

[동티모르 이야기] 성가 미사 반주 세번째

미사 성가 반주 세번째.


어느덧 우리 학교 아이들 성가 반주하는 게 세번째다. 오전 열 시 반쯤 시작한다고 해서 열 시 좀 넘어서 동네 성당엘 갔다. 아이들이 한껏 차려입고 와서 미사가 시작되길 기다리고 있었다. 직전 미사가 아직 끝나지 않아서 잠시 기다려야 했다. 성당 밖 돌담 위에 앉아 있으니 여느 때처럼 몇몇 아이들이 주변에 몰려들었다. 호기심이 많은 아이들. 1년 반이 거의 되어 가는데도 내가 신기한가보다. 돌아가면서 내게 꼬치꼬치 캐묻는다.  


오늘의 화두는 이 외국인 선생님의 종교가 무엇인가이다. 종교를 물어보길래 종교가 없다고 이야기하니 조금 허망해 한다. 나도 자기들처럼 가톨릭이었으면 싶었나보다. 한 아이는 저어기 성당 사무실 가서 이름 쓰고 등록하라고(어디 개척교회 목사 사모님 코스프레를!) 하더니 내가 싫다고 하니까 또 실망한다.


종교도 없으면서 왜 자기들이랑 같이 성호 긋고 성부성자성령의 이름을 운운하냐는 아이도 있었다. 나는 학교에서 기도할 때 존중하는 의미로 자리를 지켜주기만 할 뿐 기도 동작을 따라한 적은 없다. 종교가 없기 때문에 그렇게 기도한 적이 없다니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나를 쳐다봤다. 그러고는 내뱉은 마지막 말이 압권.


"Entaun Mestri ba Islam deit! 그럼 선생님 이슬람 사원이라도 가세요!"


종교가 없는 건 말이 안 되니 그럼 알라라도 믿어야 하지 않겠냐는 의미인듯 했다. 이 아이에게 종교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는 것일지 모른다. 하긴 나도 그랬다. 어렸을 적 교회 열심히 다닐 때 누구보다도 종교적이었다. 불교도, 가톨릭교인들은 '종교적 적'이라는 의미 부여라도 가능했지만 아무 종교도 없는 사람들은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었다. 나도 그랬던 적이 있기에 그 아이에게 어떤 사람에겐 종교 없는 삶도 가능하다는 걸 도저히 설명할 수 없었다.


반주를 다 마치고 집에 돌아온 뒤 페북을 보는데 개신교 모 교단에서 요가 이단성 심사를 한다는 기사를 보았다. 요가에 몰입하다 보면 힌두교에 심취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이단 지정을 고려해봐야 한다는 취지였다. 동티모르 시골 어린이의 종교관만도 못한 생각을 하시는 분들이 아직도 왕성한 교단 활동을 하고 있다니. 가톨릭이 싫으면 차라리 무슬림이라도 되어 신앙을 가지라는 신심 어린 충고는 기특하기라도 하지. 이 아이의 충고를 받아들여 요가로 힌두교에라도 귀의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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