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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k Oct 22. 2017

[동티모르 이야기] 동티모르식 생일 파티

'가족과 마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밤새 놀지어다'

주말이면 집 근처에서 음악 소리가 엄청 크게 들려서 잠을 못 이룰 때가 많다. 현지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festa, 즉 일종의 파티라는데, 결혼식이나 생일 혹은 정부기관이나 단체의 행사일 거라고 했다. 파티 소리가 크게 들리면 짜증이 나면서도 늘 궁금했다. 어떤 식으로 파티를 하길래 이렇게 새벽까지 지치지도 않고 노는지. 음악도 신디사이저를 이용해서 라이브로 연주하는 것 같아서 구경하러 가보고 싶기도 했지만 파티에 초대를 받을 만한 현지 지인이 없어서 궁금해만 하던 차였다. 그러다 정말 우연하게 한 어린이의 생일 파티에 초대를 받았다.


사실 내가 직접 아는 사람에게 초대를 받은 건 아니었다. 딜리에서 만난 적이 있던 현지인 부부가 실은 로스팔로스가 고향이었는데, 자기 딸의 생일 파티를 로스팔로스에서 하기로 했단다. 로스팔로스에서 우리를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되었고 그 인연으로 우리를 초대한 것이다.


마침 시내 근처가 집이라고 해서 로스팔로스의 한국인들과 함께 찾아가봤다.  집 마당에 천막을 쳐놓아서 누가 봐도 그 집이 파티장인지 쉽게 알 수 있었다. 


집 마당에 들어서니 안내 역할을 맡은 사람들이 있었다. 아마 주인공의 친자매나 사촌쯤 되는 듯했다. 우릴 보더니 깜짝 놀라면서, 그리고 수줍어하며 우리르 주인공에게 안내해주었다. 마당 한 쪽 편에는 주인공을 위한 자리가 마련되어 있어서 주인공이 거기에 앉아서 손님들을 맞이하는 식이었다. 들어가서 보니 생일자가 한 명이 아니었다. 순전히 어린이 생일 파티인 줄 알고 갔는데 생일자 한 명은 17살이었고 나머지 두 명은 5~6살 정도의 꼬마였다. 셋은 사촌자매 사이인 듯했다. 마치 신부 대기실에 있는 신부처럼 앉아 있으면서 우리를 맞아준다. 축하한다고 인사해주고 사진을 같이 찍었다. 정작 17살 소녀는 우리가 누군지도 몰랐다. 나중에야 우릴 초대한 자신의 친척에게 설명을 들었겠지만.

 

다른 편엔 피아노 주자와 가수가 자리 잡고 있었다. 전문적으로 행사를 뛰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연주자가 신디사이저 한 대로 반주를 깔고 거기에 멜로디를 입히면 다른 한 명이 노래를 부른다. 손님들이 다 차길 기다리면서 분위기를 돋우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익숙한 선율이 들려왔다. 아리랑이었다. 연주하는 사람이 한국에서 일한 적이 있어서 아리랑을 알고 있었고 한국인인 우리를 위해 연주해 준 것이다. 절코 고급스럽지는 않은 신디 음색으로 듣는 아리랑은 1990년대 우리 할머니 환갑 잔치 때의 노래방 미디 반주를 연상케 했다.


손님들은 모두 차려 입고 왔다. 생일자 한 명이 죠벤(젊은이)이라 그런지 손님들도 젊은이들이 많았다. 올만한 사람들이 다 오자 사회자의 진행에 따라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케익을 자르고 샴페인을 터뜨렸다. 축하객들에게 저녁 식사가 제공되었고 밥을 다 먹고 나자 사회자가 춤을 출 시간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젊은이들 사이에서 환호가 터졌다.


이곳이 바로 청춘남녀의 만남의 장소였던 것이다. 한국과 비교하면 생일 파티가 좀 과하지 않나 싶었는데(100인분 이상의 음식 준비에 가수 초빙까지), 변변찮은 놀거리가 없는 이게 곧 이 사람들의 유흥이자 삶의 활력소일 거라 생각하니 이해가 갔다. 그렇게 댄스 타임이 새벽까지 이어진단다.


문득 한국에서 우연히 보았던 어느 치킨집에서의 초등학생 생일 파티가 생각났다. 점심 때 어느 치킨집에서 치킨을 먹고 있었다. 갑자기 어디선가 환호성이 들려왔다. 치킨집에 다락방처럼 별도의 공간이 있었던 모양인데 거기서 초등학생들이 생일 파티를 하고 있었다. 마침 생일자의 부모가 치킨을 들고 그 방에 들어서자 환호가 터진 거였다. 딱 그정도가 내가 생각하는 생일 파티의 스케일 아니었던가.


어제 동티모르 청소년 및 어린이를 위한 생일 파티의 스케일은 딱 1990년대의 어르신 환갑 잔치와 비교할만 했다. 어느 예식장을 빌려 친척 어르신들을 모두 앞자리에 모셔놓고 자녀들은 한 명씩 나와서 어르신들께 큰 절을 했다. 사회자도 있었고. 비디오 촬영 기사도 따로 불렀더랬다. 늘 본 행사가 끝나면 디스코 타임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동티모르식 생일 파티가 전혀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좋은 일이 있으면 모여서 먹고 마시고 춤출 뿐. 그리고 그게 우리네 어른들의 유흥이자 삶의 활력소였을 것이다.


그런 환갑 잔치 문화가 이제는 거의 없다. 단순히 이전보다 오래 살아서는 아닐 것이다. 가족의 범위가 현저히 좁아졌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우리에게 더이상 이런 유흥이 필요하지 않은 시대기 때문일 것이다. 동티모르의 가족 범위는 여전히 넓다. 사촌형제자매의 생일 파티를 성대하게 치러줄 정도다. 나는 사실 사촌동생 6명의 생일이 몇 월 쯤에 있는지도 모른다. 한편 놀거리가 거의 없는 이곳에서 새벽녘까지 이어지는 노래와 춤은 이들에게 꽤 특별한 활력소가 된다. 여기 청소년들은 저녁마다 할 일 없이 길가에서 서성거리며 노는 게 전부다. 이런 지루한 나날에 가끔 찾아오는 신디사이저 음색이 울려퍼지는 파티장은 얼마나 즐거운 시간일까!


동티모르에서도 언젠가는 이런 가족 문화가 사라질까? 그리고 마을 공동체의 이름으로 제공하는 유흥의 장이 그 효용을 다할 날이 올까? 혹시라도 10년 후 혹은 20년 후에 다시 이곳에 올 일이 있다면 동네 생일 파티부터 수소문해봐야겠다. 어쩌면 내가 미래의 티모르 젊은이들에게 촌스러운 가족 생일 파티라는 구시대 전통행사의 증언자가 되어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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