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스 드 발, <동물의 생각에 관한 생각>을 읽고
"(침팬지의 얼굴 인식 능력을 처음 연구하기 시작할 때) 그 당시 과학은 인간이 독특한 존재라고 선언했는데, 얼굴 확인 능력이 어떤 영장류보다 훨씬 뛰어났기 때문이다. 다른 영장류들을 대상으로 테스트를 할 때 그 종의 얼굴이 아니라 사람의 얼굴을 대상으로 테스트를 했다는 사실에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이 분야의 한 선구자에게 왜 사람의 얼굴에서 벗어날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사람은 서로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에 우리 종의 구성원들을 구별하지 못하는 영장류는 자기 종의 구성원들 역시 구별하지 못할 게 틀림없다고 대답했다."
인간은 생각보다 훨씬 자기중심(혹은 자기종중심)적인듯하다. 프란스 드 발의 <동물의 생각에 관한 생각>을 읽다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몇몇 '인간' 심리학자들이 인간이 인지를 지닌 유일한 종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여러 가지 기준을 발명해왔다고 한다. 이 기준들에는 도구 사용, 모방 학습, 문화 전파 등이 있다. 그러나 저자에 의하면 이 모든 기준들은 일부 다른 종들도 통과할 수 있다. 일부 영장류들은 견과류를 깨 먹기 위해 돌을 이용한다. 인간에게 배워서 그리 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심지어 집단마다 도구 사용의 양상이 다른 유인원 종도 있었다. 이 말은 집단 내에서 모방 학습이 이루어졌다는 뜻이다. 이전에 일부 심리학자들은 인간만이 모방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왔는데, 많은 야외 관찰과 통제 실험에서 모방을 할 수 있는 종들이 발견되었다. 여기엔 개, 까마귀, 앵무새, 돌고래도 포함된다.
위의 얼굴 인식 과제도 '인간 신화'의 한 예다. 많은 사람들이 동물이 얼굴을 인식할 수 있는가 없는가가 그 종의 인지 수준을 결정한다고 믿는 듯하다. 그래서 영장류를 대상으로 테스트를 해보았고 역시 인간만이 얼굴을 인식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 연구 초기의 지배적인 결론이었다. 그러나 저자가 지적하듯, 그리고 대단히 우습게도 그 테스트들은 인간의 얼굴을 구별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는 것이었다. 사실은 대부분의 종들이 자기 종의 얼굴을 매우 명확하게 인식하고 구별할 수 있다고 한다. 침팬지는 엉덩이만 보고도 각 침팬지 동료들의 얼굴과 연결할 수 있다. 마치 사람이 군중 속에서 옷차림과 머리 스타일만 보고도 친구를 알아볼 수 있듯이 말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유명한 경구마저도 관찰과 실험 연구로 산산조각 날 위기에 처해있다. 인간 외에도 사회적 동물은 무척 많다. 침팬지 사회에서 한 수컷이 알파 수컷이 되기 위해 들이는 사회적 노력은 평범한 인간보다 훨씬 정교하고 고도화되어 있다. 심지어 알파 수컷에서 물러난 나이 많은 침팬지 수컷이 자신의 영향을 유지하기 위해 새로운 알파 수컷을 지지하고 막후에서 조종하는 사례도 있다. 협력하는 동물도 역시 많다. 코끼리는 물론이고 어류의 생태에서도 협력을 통해 생존을 도모하는 사례가 많다. "어떤 종의 인지는 일반적으로 그 종의 생존에 필요한 만큼 뛰어나다."
그렇다고 해서 침팬지가 단숨에 인간과 같은 문명을 이룩할 가능성이 있는 건 아니다. 이 책을 읽으며 영화 <혹성탈출>을 떠올렸다. 동물의 인지가 그렇게 뛰어나다면 언제라도 인간과 같은 문명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게 아닐까. 물론 영화에서처럼 침팬지가 인간처럼 정교한 언어를 사용하거나 기록을 통해 유산을 대대로 물려주는 일은 그저 상상에 그칠 일이다. 사실 그런 상상마저도 인간 중심적이다. 침팬지의 인지가 통념과는 달리 뛰어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침팬지가 반드시 인간처럼 사고할 것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발달된 인지의 결과물이 인간의 것과 가을 필요는 없다. 침팬지는 침팬지다운 인지를 지니고 있을 뿐이다. 인간은 오로지 인간의 인지와 비슷하게 보이는 것만 관찰하고 연구할 수 있다. 생쥐 한 마리가, 혹은 바퀴벌레 한 마리가 그 자신의 생존에 얼마나 뛰어난 인지를 가지고 있는지는 아직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움벨트', 즉 각 생물이 각자 나름대로 환경을 감지하는 방식은 그 생물만이 안다. 인간은 다른 종의 움벨트를 추측할 뿐이다.
하긴 우리는 타인의 '움벨트'조차 알지 못한다. 나의 인지 혹은 감정이 타인의 그것과 똑같을 거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단지 그럴 거라고 가정하고 추측하며 행동할 뿐. 나 자신의 움벨트만을 너무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이를 폭력적으로 강요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동물의 인지를 연구하는 일은 인간중심적인 사고를 버리고 겸허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이러한 태도야말로 타인의 움벨트를 대할 때 갖춰야만 할 덕목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