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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k Jun 13. 2019

"메카를 짓고 허물자"

니코스 카잔차키스, <스페인 기행>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스페인 기행>을 읽었다. 이 책을 읽은 건 순전히 일주일 동안 스페인 여행을 하기 때문이었다. 스페인을 여행하며 스페인을 다룬 책을 읽는 일처럼 완벽한 건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사실 이 책에 나오는 곳 중에 내가 여행한 지역과 겹치는 곳은 한 군데도 없었을뿐더러 이 책에서 다룬 지역들도 현재의 스페인이 아닌(당연히 작가가 이 시대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1930년 대의 스페인이다. 심지어 책의 후반부는 스페인 내전을 다루었다. 내가 발 붙이고 있던 곳과 연관시킬 내용은 거의 없었다.


카잔차키스는 스페인을 여행하며 멋진 경관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카잔차키스가 관심을 기울이는 건 스페인이라는 존재 그 자체다. 카잔차키스가 '스페인 정신' 또는 '스페인 사람의 영혼' 등등의 단어로도 표현하는 스페인이라는 존재에는 과거 '성신'이 머물렀다가 지금은 떠나고 말았다. 성신이 떠난 그 자리에서 아직까지도 스페인 사람들은 그 정신을 지니며 살아가고 있다. 나로서는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라서 굳이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다만, 그라나다에서 알람브라 궁전의 큰 문을 보고(나는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 쓴 글에서만큼은 카잔차키스의 말을 알 것 같았다.


알람브라 궁전의 커다란 문 위로, 이슬람교도들은 다섯 손가락을 활짝 편 손을 하나 걸어 놓았다. 그 손은 신도들에게 신에게 이르는 다섯 가지 길, 즉 믿음과 자비, 기도, 금식, 그리고 메카로의 순례를 상기시켰다. 이 다섯 가지 길 중에서 나는 마지막을 택했다. 나는 메카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지만, 온 세상을 돌아다니며 그것을 찾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당신이 찾고 있는 그 메카는 당신 마음속에 놓여 있다>라는 한 아랍 시인의 짧고 명쾌한 어구가 마치 번개처럼 내 마음을 꿰뚫고 들어왔다. 그날이 될 때까지, 나는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닐 것이고, 매순간 마침내 메카에 도착했다고 생각할 것이며, 그때마다 내 심장은 고동칠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어느 날 나는 내 여정의 끝에 도착할 것이고, 그러면 고요하고 행복한 내 마음 한가운데에서 미동도 없이 휴식을 취할 것이다. 아니, 내 마음의 위로조차 얻지 못하고, 메카에 이르지도 못한 채 무덤으로 갈 가능성이 훨씬 높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때까지는 이리저리 걸어 다니자. 마음을 죄며 슬퍼하자. 끊임없이 기만당하자. 계속해서 메카를 짓고 그것들을 허물자. (니코스 카잔차키스, <스페인 기행>,  p152)


나 역시 매순간 마침내 메카에 도착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기만당한다. 메카를 짓고, 또 허물자. 신 앞에 이르렀다가 돌아 나오자. 마치 내가 원해서 그러는 것처럼 허물고 돌아 나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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