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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k Jul 22. 2019

디즈니 영화를 보며 원작에 집착하는 일

얼마 전에 디즈니 애니메이션 <인어공주>의 실사판 영화 캐스팅에 관한 논란이 있었다. 인어공주 역할에 흑인 배우를 캐스팅한 것에 대해 엄청난 반발이 있었던 것이다. 나는 미국 현지의 반응은 잘 모른다. 다만 한국 내에서 쉽게 접할 수 있었던 반응은 'PC가 갈 데까지 갔다'였다.


그 '갈 데'가 어딘지 나는 잘 모르겠지만, 뉴스 댓글란만 보더라도 그들이 뿜어내는 분노의 '정도'는 쉬이 짐작이 간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건 분노의 '이유'다. 특히 다른 나라 사람들도 아니고 한국인들이 왜 인어공주가 흑인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걸까?


많은이가 '원작'을 말한다. 인어공주 원작의 주인공이 백인인데 어떻게 흑인이 캐스팅이 될 수 있냐, <홍길동전>의 홍길동역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맡을 수 있냐는 식이다. 게다가 많은 인어공주 '팬'은 이렇게 말한다. 자신의 어릴 적 소중한 추억을 파괴하지 말라고. 그들의 '어릴 적 소중한 추억'은 신성불가침인지, 혹시 아니라면 언제쯤이면 파괴해도 괜찮아지는건지 문득 궁금해진다.


역시 디즈니 실사영화 중 하나인 <알라딘>을 최근에 보았다. 원래 알던 이야기와 다른 부분이 있어서 '원작 스토리는 어땠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원작? 무슨 원작? <천일야화>의 램프 정령 이야기? 사실 <천일야화>의 아랍어판에도 실리지 않았지만 앙투안 갈랑의 프랑스어 번역본에 추가된 그 알라딘 이야기? 아니면 1992년의 애니메이션 <알라딘>? 나는 원작 찾기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디즈니가 제작한 다수의 영화에서 원작은 큰 의미가 없다고 본다. 불과 십 수년 전의 실화도 얼마든지 각색이 가능한 이 영화산업에서, 확정된 단 하나의 원작이 있지도 않은 구전 이야기들의 본래가 무엇인지 따지는 것은 말 그대로 개그를 다큐로 받는 일이다. 자스민이 술탄이 되는 결말을 신성불가침한 원작을 훼손한 것처럼 굴 일이 아니라 새로운 이야기를 수용하고 비평할 일이다.


다시, 실사영화 <인어공주>의 원작은 무엇인가? 1989년의 애니메이션 <인어공주>? 안데르센의 동화 <인어공주>? 전설의 반인반어? 원작무오설에 따라 흑인이 인어공주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주장을 할 때 과연 무오한 원작은 어느 것인가? 이미 원작을 뒤틀어버린 1989년의 애니메이션이 기준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가?


물론 논란이 된 실사영화 리메이크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안데르센의 동화가 아니라 디즈니 자신의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에 실사영화 제작의 출발점이 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이야기와 한치의 어긋남 없이 실사화해야 할 필요는 전혀 없는 것일 뿐더러 그래서도 안된다. 그러려면 무엇하러 영화를 또 만드려는걸까?


사실 내가 걱정하는 일은 따로 있다. 나는 많은 '원작' 팬들의 반대로 흑인 인어공주가 다시 백인으로 돌아갈까봐 걱정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디즈니라는 기업이 수많은 인어공주 설화들을 자신이 제시하는 하나의 이야기 + 약간의 변주로 표준화하는 일을 우려한다. 그것이 지구상의 무수한 이야기에 또 하나의 이야기를 덧붙이는 일이라면 두 손 들고 환영할 일이지만, 실상은 디즈니 영화가 제시하는 이야기가 곧 표준 이야기로 공인받는 느낌이다. 이미 우리는 수십 편의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보며 구전설화의 디즈니-표준안을 가진 바 있다.


소중한 어린 날의 추억이라서 결코 뺏길 수 없지만, 디즈니는 (백인 인어공주를) 뺏으려 한다. 그리고 다시 (흑인 인어공주를) 주려 한다. 그러나 새롭게 탄생하여 전 세계 소수자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흑인 인어공주조차도 수많은 이야기 중 하나에 '불과'해야만 한다. 요즘 디즈니의 지구침공을 보며 드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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