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 책읽기
1. 주제 사라마구, <눈먼 자들의 도시>, 해냄
2. 강양구, <과학의 품격>, 사이언스북스
3. 세스 노터봄, <유목민 호텔>, 뮤진트리
3월에 읽은 책은 세 권이다. 1주일 한 권 속도를 깨뜨린 주범은 세스 노터봄인데, 세 권 중에 가장 얇지만 읽는 데는 시간이 제일 오래 걸렸다.
<눈먼 자들의 도시>는 요즘 상황과는 무관하게, 주제 사라마구의 책을 이어 읽으면서 자연스레 펼쳤다. 다른 책도 그렇지만 특히 소설에 관한 인상은 읽으면서, 또는 읽은 직후에 적어두지 않으면 금방 사라진다. 물론 시간이 지난 후에 새롭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을 테지만, 사실은 그것도 다시 읽어야 가능한 일이다.
이 소설을 읽고 난 후 나는 이런 메모를 남겼다. "두려움과 답답함을 읽어 나가는 소설."
두려움과 답답함이야말로 이 소설의 주제다. 결말 부분에서 어떤 알레고리 비슷한 걸 제시하긴 한다. 책 커버에도 인용되었듯, 주인공 중 하나는 마지막에 이렇게 말한다.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이라는 거죠." 의미심장한 말이다. 그러나 이조차도 눈이 멀어보지 않았기에 할 수 있었으리라. 내 몸이 도대체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도 알지 못하는 눈먼 자들에게 상징은 사치다. 이 소설의 카타르시스는 애매한 상징이나 알레고리를 깨닫는 데서 나오는 게 아니라 작품 제일 마지막 줄에서 나온다. 읽어보시길.
세스 노터봄의 <유목민 호텔>은 께이스 노오떠봄의 <이스파한에서의 하룻저녁>이라는 책과 공통분모를 이루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세스 노터봄이 곧 께이스 노오떠봄이고, <유목민 호텔 Nootebooms Hotel>은 1978년에 출간한 <이스파한의 하룻저녁 Een avond in Isfahan>의 몇몇 글을 추리고 새로운 에세이를 몇 편 추가하여 펴낸 책이다. 일종의 여행기인데, 결코 재밌지는 않은 여행기다. 이 재미없음에 대해서는 다른 글(https://brunch.co.kr/@jetiti/54)에 재미없게 써두었다.
다만 <유목민 호텔>과 <이스파한에서의 하룻저녁>을 비교하는 재미는 한 번 누려볼 만하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에세이인 '라이트 부인과 자바라 경: 감비아 강 보트여행'을 예를 들면, 구판에서는 같은 글이 '레이디 라이트 호와 야와라 경, 감비아 보트여행'이 제목이다. 사실 이 글에 라이트 부인은 나오지 않는다. 레이디 라이트라는 배가 나올 뿐이다. 그래서 판의 번역이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같은 글에서, "... 감비아 인구 40만 명이 거주하는데, 그 숫자는 수리남의 인구에 맞먹는다."라는 문장은 구판에서 이렇게 나온다. "주민수는 대략 4만 5천 명 이상에 이르고 있다. 만약 주민들이 급히 떠나야 할 처지에 놓인다면 아마도 대다수가 수리남을 택하게 될 것이다." 번역의 문제를 떠나서 내게는 아프리카에 있는 감비아 주민들 대다수가 위기 상황에서 남미의 수리남을 택할 이유가 도무지 떠오르지 않고(떠날 수 있는 경제적 여건이 되는지는 둘째 치고), 노터봄도 따로 언급하지 않는다. 그런데 구판을 처음 읽을 때는 전혀 거슬리지 않던 문장이 우연히 두 판본을 비교하려고 펼쳐봤을 때 눈에 들어왔다. 빌 브라이슨이라면 욕지기를 내뱉었을 테지만 나는 그저 '흥미롭군...'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3월의 책읽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