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초등교사가 쓰는 퇴사기입니다. 흔히 교사는 사직, 퇴직 또는 의원면직이라고 하지만, 그만둔 게 단지 교직만은 아니기에 여러 직장에서의 퇴사기를 이어나가려 합니다. 순서는 들쭉날쭉. 재미는 없어요.
사람을 상대하는 일.
내가 교사를 그만둔다고 할 때 가까운 사람들이 내게 가장 많이 했던 말에는 꼭 저 단어들이 들어 있었다.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야, 어차피 모든 일은 다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야, 다른 직업을 가져도 사람을 상대하는 일을 이렇게 힘들어하면 어차피 거기서도 못 버텨, 그러니까 그만두지 말고 버텨.
'어차피 거기서도 못 버텨'가 어떻게 '그러니까 그만두지 말고 버텨'가 될 수 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날 더러 못 버틴다고 냉정하게 말해놓고선 버티라니. 아니 사실 조금은 이해가 간다. 그러니까, 네가 지금 겪고 있는 일은 직업인으로서 누구나 겪는 괴로움이니 조금만 참고 견디면 잘 해낼 수 있을 거야.
이미 교사를 그만둔 지 3년이 넘어가는 지금, 이직의 결과가 어떠했는지 미리 말하면 스포일러이자 결말을 정해놓고 쓰는 소설과 다름없으니 그 당시 내 생각만 말하자면, '아니 그럴 리 없어.'가 되겠다.
교사가 사람을 상대하는 일인가? 맞다. 그렇다면 다른 곳은? 사실 잘 몰랐다. 지금도 잘 모르고. 그러나 교직만 아니면 되겠다 싶은 마음이었다. 사람을 상대하는 일인지의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사람을 상대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내 감정이 중요했다. 수년간 교육이라는 업에 종사하면서 이 어린이라는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 나는 무척 괴로웠다. 그 자리에 서있을 수도 없이 괴롭고 견디기 어려운 순간이 종종 찾아왔다. 순간은 점점 잦아졌고 불안이 일상이 되어서 아주 잠깐 불안감을 느끼지 않으면 오히려 그 때문에 불안한 지경까지 이르렀다.
퇴근할 때는 기분이 잠깐 좋았다가 집에 가는 버스를 타자마자 곧 내일 출근할 생각에 괴로웠다. 잠을 자기 위해 누웠다가 갑자기 베개에 얼굴을 묻고 숨 죽여 울기도 했다. 울음이 터져 나온다는 것이 말 그대로 어떻게 작동하는 것인지 그때 처음 알았다. 화산과도 같은 끓어오름이었다. 일주일 가까이 오줌이 안 나오기도 했다. 몇 개월에 한 번은 장염에 걸렸다. 물론 스트레스성이었다. 그야말로 나를 학대하려고 마음먹지 않으면 더 오래 머무를 수 없는 시간이었다.
그런 몸의 반응은 사실 부차적인 것이었다. 내 몸이 나를 괴롭히기 훨씬 전부터 내 감정이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당연히 견디기 힘들었고 피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취직을 위한 자기소개서에 교사를 그만둔 이유로 곧잘 쓰곤 하는 새로운 경험? 도전? 이런 건 사실 다 거짓말이다. 살기 위해 도망쳐야 했다. 그리하여 나의 인생 첫 퇴사는 곧 '달아남'이었다. 가끔 만나는 마지막 학교 동료들을 만나면 말하곤 한다. 나는 지금도 oo동쪽은 쳐다도 안 보고 거길 향해서는 밥도 안 먹어요, 하하하하 역시 선생님 웃겨요, 아니 정말인데. 정말이라고!
그런데 이게 도대체 사람 상대하는 일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것은 oo동의 바로 그 학교에서 우리 모두를 망가뜨린 이야기와 관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