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ok Oct 13. 2016

뒤죽박죽 이야기

<심슨 가족>, 레너드 코헨 그리고 내가 사랑한 영화들에 대한 이야기들

나는 매일 혼자 저녁을 먹는다. 열심히 요리를 하고 모기 물릴까봐 모기향을 정성스럽게 피우고 식탁에 앉으면 뭔가 허무하다. 그냥 밥만 먹기는 좀 심심하다. 그래서 밥을 먹으며 <심슨 가족> 에피소드 하나씩을 본다. 먼 타지에서 외롭고 심심할까봐 영화를 잔뜩 받아왔는데 정작 보는 건 <심슨 가족> 밖에 없다.


매 에피소드마다 느끼는 거지만 호머는 그냥 미친 놈이고 마지는 가족 사랑에 미쳤고 바트는 그냥 미친 놈 주니어고 리사는 공부와 합리성과 논리와 이성과 정치적으로 올바름과 채식주의 등등에 미쳤다. 나는 네 명 모두의 행동이 정말 밉고 이해 안 될 때가 있는데(특히 호머) 그런 순간에도 밥알을 목구멍에 밀어넣으며 그걸 보고 있다. 


어느 할로윈 특집 에피소드에서 (언제나처럼 호머 덕분에) 지구가 멸망하기에 이르는데, 리사만이 우주로 탈출하는 우주선에 초대 받는다. 안타깝게도 호마와 마지 중 단 한 명만을 데리고 갈 수 있다며 힘들겠지만 선택을 해야만 한다는 요원에게 리사는 일말의 망설임, 주저, 애매모호함 등등 기타 불확실한 모든 것을 배제하고 단호하게 말한다. "엄마요." 그렇게 우주선은 떠나게 되고 호머와 바트는 지구에 남아 우연히 다른 우주선에 탑승하게 되는데 그건 태양으로 향하는 우주선이었다. 그러나 그 우주선의 승객들이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부자는 우주선을 탈출하고 그렇게 우주에서 죽는다. 나는 이 에피소드가 정말 마음에 든다. 가끔 호머와 바트는 정말 악의 화신처럼 보이는데, 악의 화신인 그 둘을 응징하는 에피소드라서.


그렇지만 호머와 바트를 사랑하지 않으면 <심슨 가족> 시리즈를 볼 수 없다. 우리 모두 우리 마음 한 켠에 있는 악함, 광기, 실성함, 심지어는 자기 자신의 연약함마저도 은밀히 사랑하고 있지 않은가. <심슨 가족>이 그 오랜 세월 동안 사랑 받는 바탕에 이 공범 의식이 있다고 주장한다면 지나친 것일까.


정작 내가<심슨 가족>에서 제일 좋아하는 캐릭터는 따로 있다. 언제나 사랑을 가져다주는 미스터 번즈다. 그의 악랄함은 호머의 것과는 차원이 달라서 그저 귀엽기만 하다. 호머에게 월급을 주는 지구상의 유일한 사장도 그다. 실은 호머가 없어도 스프링필드에는 평화만이 가득하겠지만 번즈가 없다면 지역 경제는 종말을 맞이할지도 모른다. 나는 번즈의 같잖은 (너무나 돈이 많아서 같잖게 보이는) 부유함이 좋고 그를 사랑하는 비서 스미더스가 좋다. 번즈와 스미더스의 케미는 <심슨 가족>에서 손꼽히는 재미 중 하나다.


다른 얘기지만, 밥 딜런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듣고는 청개구리 같이 레너드 코헨의 음악을 찾아 들었다. 레너드 코헨도 시인이다. 심지어 실제로 문학상도 받았단다. 노벨문학상은 아니지만. 어쨌든 레너드 코헨의 이런 가사가 난 좋다.

"The holy or the broken Hallelujah"



그런데 오늘은 다른 노래를 듣다가 한 가사가 귀에 꽂혔다. 

Ah baby, let's get married, 
we've been alone too long. 
Let's be alone together. 
Let's see if we're that strong. 
Yeah let's do something crazy, 
something absolutely wrong 
while we're waiting 
for the miracle, for the miracle to come. 


'뭔가 미친 짓을 하자, 절대적으로 잘못된 짓을.'


<Waiting For Miracle>이라는 노래다. 무심하게 렛츠 두 섬띵 크레이지라고 읊조리는 레너드 코헨의 음색은 대단히 설득력 있다. 그의 말을 듣고 하는 짓이라면 무엇이든 용서 받을 수 있을 것 같은, 아니 용서 받지 않아도 상관 없다는 기분이 들 뻔한다.


미친 짓 하니 다시 호머가 떠오른다. 호머는 늘 미친, 그리고 절대적으로 잘못된 짓을 저지르고 다닌다. 그리고 그에게는 늘 기적이 따라다니는데, 그런 짓을 저지르고도 그의 가족들이 항상 그의 곁에 있는 기적이다. 우리는 누구나 호머처럼 무조건적으로 용서 받기를 바라기 때문에 호머를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가 대리만족을 준달까. 처참할 정도로 무책임한 호머지만 늘 가족의 사랑을 받는다. 그에게는 모든 나쁜 것과 모든 좋은 것이 한데 뒤섞여 있다. 이는 분명히 거부하기 힘든 매력이다.


이런 의미에서 머나먼 타지에 와서 외로울 때 보기에 딱 좋은 시리즈다. <심슨 가족> 말이다. <심슨 가족>의 세계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다. 물론 내가 갖고 있는 건 22시즌까지 밖에 없어서 몇 개월 있으면 곧 다 보고 말 테지만, 내가 굳이 보지 않아도 그들은 거기서 영원히 미친 짓을 하며 살고 있을 것 같다.


<심슨 가족>을 다 보고 나면 무얼 보아야 할까. 영화도 많이 챙겨 왔고 드라마도 많지만 막상 아무리 심심해도 보아지지가 않는다. 정작 보고 싶은 건 이전에 봤던 영화들이다. 가끔 하는 일 없이 앉아 있으면 <실버라이닝플레이북>이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사랑에 빠질 확률>, <보이후드>, <인사이드 르윈>, <우리도 사랑일까>, <블루 발렌타인>, <하하하> 같은 영화들의 정서가 생각난다. 한국에 있을 때는 그런 영화들을 보며 견디고 즐겼다. 이제는 나를 사로잡았던 그런 영화들이 아예 안 나올 것만 같은 근거없는 걱정을 하곤 한다. 저 영화들처럼 나를 위로해주었던 영화는 다시 없을 것만 같아 저 영화들을 보았던 순간을 그리곤 한다. 그렇지만 사람은 늘 과거를 향하기 마련이다. 나를 사로잡았다던 그 영화들을 보던 시절에도 나는 과거를 생각했겠지. 지금처럼. 

작가의 이전글 '섬세한 문학 읽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