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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베, 생성의 컬러

[문장을 부르다: 생활인의 인생 인용문 45편] 4장. 배움과 전환

by 임재훈 NOWer



[문장을 부르다: 생활인의 인생 인용문 45편]


4장. 배움과 전환

— 새로 얻은 생각, 다시 뜨는 눈






43 디자인학.jpg 이미지 출처: 알라딘


트뤼베, 생성의 컬러


“트뤼베는 괴테의 색채론에서 대단히 중요한 개념으로, ‘흐림’, ‘탁함’, ‘그늘’ 혹은 ‘음영(陰影)’이라고도 옮길 수 있습니다. (⋯) ‘흐림’은 빛과 어둠의 중개자이자 매개자입니다. 색채의 근본 현상을 빛과 어둠, 밝음과 어둠의 분극 운동으로 파악한 괴테는 이 양자를 중개하고, 갖가지 색채를 만들어내는 것을 ‘흐림’이라고 불렀습니다. 바꿔 말하면 ‘흐림’은 색채의 근본적인 생성의 원칙이자 매체이고, 매질(媒質)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카이 슈타로 지음, 신희경 옮김, 『디자인학』, 두성북스, 2016, 208~209쪽)


보통의 생활인인 내가 그간 살면서 감각해 오기로 회색은 부정적 빛깔이었다. 국어사전에 등재된 각종 ‘회색 낱말’ 또한 대체로 부정명사들이다. 회색론(어떤 문제에 대한 애매모호한 논리), 회색분자(소속, 정치적 노선, 사상적 경향 따위가 뚜렷하지 아니한 사람), 회색선전(확실한 출처나 근거는 밝히지 아니하고 아리송하게 하는 선전), 회색시장(공정 가격보다 다소 비싸게 매매하는 위법적인 시장), 회색인(정치적 입장이 분명하지 아니한 기회주의적인 인물), ⋯⋯. 구름 낀 날씨가 그러하듯 회색에 대한 인지는 보통 ‘흐리다’인데, 이 형용사를 사전은 ‘잡것이 섞여 깨끗하지 못하다’라 풀이한다.


말하고 읽고 쓸 줄 아는 언어가 한국어뿐인 독자임에도 『디자인학』에 소개된 독일어 ‘트뤼베(Trübe)’가 그리 낯설지 않게 다가왔다. 인터넷 독한사전(獨韓辭典)에서 해당 낱말을 검색하니 탁함, 흐림, 불투명을 의미하는 명사라고 나온다. 첫 글자를 소문자로 쓰면(trübe) 흐린, 혼탁한, 우중충한, 안개 낀 등을 뜻하는 형용사가 된다. 흐리게 하다, 광택을 없애다, 우울하게 하다, 라는 타동사 ‘트뤼븐(trüben)’도 존재한다. 우리말의 회색 낱말들처럼 온통 잿빛이다. 사전적 정의는 여러 가지인데, 회색에 회색을 얹고 또 섞는 모양새라 사실상 하나의 어의로 보아도 무방할 듯싶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나 바이마르에서 영면한 독일 사람 괴테도 모국어 트뤼베를, 회색이라는 색채를, 흐림이라는 개념을 부정적 이미지로 감각하며 성장했으리라 짐작해 본다. 그러나 그는 촘촘히 직조된 고정 관념의 벽을 타공하여 ‘시적 허용’이라는 언어의 창문을 시공하는 이, 즉 시인이 되었다. 이윽고 트뤼베의 회색빛을 골똘히 관찰하기에 이른다. 환부를 들여다보는 집도의와 같이 매섭고도 온정 어린 눈빛으로.


‘트뤼베-흐림’은 시인 괴테에 의해 빛(밝음)과 어둠 “양자를 중개하고, 갖가지 색채를 만들어내는 것”, “생성의 원천이자 매체”, “근본적인 (⋯) 매질”로 재정의되었다. 『디자인학』의 저자 무카이 슈타로는 괴테의 트뤼베-흐림을 이렇게 해설한다. “이 ‘흐림’의 양태에는 기체, 액체, 고체가 있고, 단계도 투명에서부터 불투명한 흰색에 이르기까지 무한”하다. “구체적으로는 아지랑이, 증기, 연기, 먼지, 안개, 구름, 눈 비 등으로 채워진 대기의 층을 비롯해 생명체에서 물질에 이르는 환경 세계의 온갖 투명한—아주 살짝 비쳐 보이는 불투명성 등에 이르기까지의—매질”을 모두 ‘흐림’이라 이를 수 있다. 그런데 이 흐림은 “각 토지 특유의 기후·풍토에 따라 달라”지며 “그야말로 ‘흐림’이라는 대기의 다양한 현상성에 의해 우리 눈앞에 세계가 출연”하는 것이다.(209쪽)


자연의 명암은 온오프 스위치로 ‘켜지고 꺼지지’ 않는다. ‘명’과 ‘암’만 있지 않다. 그 둘을 잇는 시간이 필요하다. 밝음은 서서히 어두워지고, 어둠은 느리게 밝아 온다. 노출, 휘도, 하이라이트, 그림자, 대비, 채도, 색조, 선예도 등이 눈금을 따라 한 칸씩 미세 조정되는 스마트폰 사진 보정 기능처럼, 명과 암 사이의 ‘회색 시간’은 세계의 색채를 아주 천천히 바꿔 놓는다. 그러는 동안 지표 온도가 변화하고 그에 따라 동식물들의 생태 또한 달라진다. 해가 지고서야 겨우 귀소하여 자기 시간을 갖는 사회적 동물, 깜깜밤중이어야 시세포가 활짝 열리는 들짐승, 새벽 공기 속 알맞은 온도와 습도를 까다롭게 골라 표연히 피어나는 야간 개화종 등등. 밝음과 어둠 사이를 채우는 이 모든 생성의 순간—사람은 심신의 안정을 되찾고, 동물은 사냥을 시작하며, 식물은 각양각색의 꽃을 피우는—이 바로 회색 시간이다. 괴테의 트뤼베-흐림을 나는 이렇게 이해하고 있다.


그렇다면 자문해 본다. 내 일상은 얼마나 ‘회색’인가. 일이 잘 풀려서 한없이 밝거나, 하는 일마다 고꾸라져 안색이 어둡거나. 전등 스위치를 쉼 없이 딸깍딸깍 누르듯 오로지 명암만 쳐다보며 살고 있지는 않은가. 밝았다 어두웠다 반짝거리기만 했을 뿐, 진득히 회색의 시간을 살아 내 본 적이 있었던가. 다시 나만의 트뤼베를, 그 생성의 컬러를 찾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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