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스지 장편소설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 리뷰
숏츠 시대 ‘텍스트 시청성’의 가능성
— 세스지 장편소설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 리뷰
작가 세스지(背筋, 우리말로 독음하면 ‘배근’ 즉 ‘등근육’)의 장편소설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전선영 옮김, 반타, 2025)를 무척 인상적으로 읽었습니다. 모큐멘터리 형식을 취한 공포 소설입니다. 제법 무서웠습니다. 저는 이 작품을 병원에서 읽었습니다. 가족의 갑작스러운 입원으로 일주일간 ‘보호자’ 패찰을 목에 걸고 병동에서 지냈는데, 그동안 틈틈이 페이지를 넘기다 퇴원 수속을 밟을 무렵 완독했습니다.
병원 생활을 해 보신 분들은 공감해 주실 듯합니다만, 그곳에선 정말이지 온갖 생각들이 다 들더군요. 뭔가 잘못되면 어쩌지, 회복이 늦어지는 건 아닐까, 비용 처리는 또 어떻게, ⋯⋯. 그런 걱정을 해 봤자 달라지는 것은 없단 걸 잘 알면서도 머릿속이 계속 복잡했습니다. 그래서 보호자 상주 교대를 위해 집에 잠깐 들렀을 때, 가족의 입원 전 사 두었던 소설책 몇 권 중 굳이 호러물을 챙겨 다음 교대 때 챙겨 갔습니다. 신경을 딴 데 돌리려는 목적이었습니다. 무서운 이야기라면 효과가 확실할 것 같아서요.
‘교과서 밖’ 계열의 텍스트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이하 긴키 지방)는 이른바 괴담 콘텐츠로서 기대 이상의 재미와 만족도를 선사할 뿐 아니라, 소설로서의 참신성 또한 수준급이었습니다. 이 짧은 독후감에서는 주로 후자를 부각하여 다루려고 합니다.
저 자신도 나름 소설을 쓰는 병아리 작가인 터라 소설책을 손에 쥐고 있는 동안에는 꽤 긴장합니다. 제 입장에선 일단은 다 선배들의 글이니까요. 재미가 있건 없건 한 수 배운다는 자세입니다. 『긴키 지방』을 읽어 나가면서 가장 자주 들었던 감상이 ‘이렇게 써도 되는 거였어?’였답니다. 자잘하게는 행갈이, 인물 묘사, 서사성(기승전결) 같은 소설의 문법적 요소들이 좀 생경했습니다. 뭐랄까요, 문장들이 전체적으로 ‘빡세지 않다(?)’는 인상이었습니다. 2000년대 초 소설가 박민규의 작품들을 접할 때도 비슷한 기분이었던 듯합니다. ‘난 이렇게 쓸 건데? 안 될 거 뭐 있나?’ 하고 피식, 웃음기를 머금은 듯한 텍스트. 흔한 표현으로 ‘교과서 밖’에서 갈고닦은 것이 분명해 보이는 필력과 필술(筆述).
박민규의 문장을 처음 접했던 순간만큼은 아니었으나, 세스지의 『긴키 지방』도 제게는 ‘교과서 밖’ 계열의 텍스트로 읽혔습니다. 한 페이지를, 그리고 한 챕터를 채우는 텍스트의 분량이나 배열이 상당히 자유분방했습니다. 독서 초반엔 이를 ‘헐겁다’고 느꼈을 정도였어요. 어쩌면 독자로서 저의 소설 읽기 스펙트럼이 그만큼 편협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도 쓰고 저렇게도 쓰는’ 경향과 작풍을 제대로 못 따라잡고 있었는지도요.
‘파운드 푸티지’ 영화, ‘파운드 텍스트’ 소설
제가 이 책을 정말 읽길 잘했다고 느낀 대목은—마지막 장을 덮고도 한참 뒤에야 감각한 것이지만—텍스트의 ‘시청성(視聽性)’을 구현했다는 점이었습니다. 시청성은 제가 멋대로 만들어 본 말입니다. ‘영상 콘텐츠를 시청하는 듯한 읽기 경험’을 의미하는 조어입니다. 『긴키 지방』은 모큐멘터리를 표방하는데, 제 견해로 더 적확한 표현은 ‘파운드 텍스트(found text)’가 아닐까 싶습니다. 말 그대로 누군가에게 ‘발견된 텍스트’ 말입니다. 영화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알아차리셨을 것 같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블레어 위치⟩, ⟨파라노멀 액티비티⟩, ⟨클로버필드⟩를 대표적 사례로 위시하는 장르 영화의 일종 ‘파운드 푸티지(found footage)’에서 따온 것입니다.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얽힌 괴담을 조사했던 출판업 종사자들(기자, 작가, 편집자)의 각종 취재 기록을 그러모은 결과물. 이것이 『긴키 지방』의 기본 골격입니다. 인물들의 갈등, 장소성에 대한 규명, 서사를 추동하는 중핵 사건 등 소설의 ‘교과서적’ 기본 요소들은 그리 명징하게 제시되지도 않거니와 그리 중요하지도 않습니다. 이런 거 선명하지 않은데도, 아니 어쩌면 선명하지 않은 덕에 『긴키 지방』의 소설적 재미가 배가됩니다. 프로타고니스트/안타고니스트도 없고, ‘그래서 대관절 긴키 지방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데?’에 대한 답도 없습니다. 읽는 동안 줄곧 ‘이게 다 뭔 일이야 대체⋯⋯ ㄷㄷ’ 하는 생각만 하게 됩니다. 독자로 하여금 텍스트를 독해하도록 가만 두지 않고, 계속 ‘겁을 먹도록’ 하는 데 온 힘을 기울인 소설이라고 평하고 싶습니다.
그러한 작중 의도와 부합하는 『긴키 지방』만의 기법이 바로 ‘시청성’입니다. 앞서 설명했듯 이 소설의 거의 모든 텍스트는 기본적으로 ‘(독자가 발견한) 취재 자료’, 즉 파운드 텍스트의 형질을 지니고 있습니다. 소설 속 화자의 서술을 읽어 나간다, 라기보다 ‘찾아낸 걸 본다’는 감각을 독자들의 뇌리에 전제하는 장치입니다. 수첩의 메모, 급한 대로 휘갈겨 쓴 종이 조각, 미발행 기사, 잡지사로 날아든 의문의 독자 투고 글들, 십수 년 전 과월호 잡지의 케케묵은 르포 기사, 일기인지 유언장인지 헷갈리는 등장인물의 호소, 흉가 체험 스트리머의 영상에 달린 실시간 댓글 기록, 인터넷 커뮤니티의 수상한 게시물들, ⋯⋯. 이러한 설정은 텍스트에 시각성과 물성을 부여합니다. 단지 소설의 문장을 읽는다, 가 아니라 ‘(질감과 색감을 지닌) 무언가에 적힌 텍스트 정보를 확인한다’라는 차원이 가능해지죠. 그냥 일차원적으로 지면의 글을 읽어 나가는 걸 넘어, ‘텍스트의 이미지’를 상상해 보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 점이 소설 읽기의 시청성을 조성해 주더라고요. 파운드 텍스트 소설의 기이한 힘.
『긴키 지방』은 유튜브 숏츠와 인스타그램 릴스로 대표되는 영상 콘텐츠 시대의 한복판에서, ‘텍스트 시청성’의 가능성을 제시한 대단히 유의미한 소설이다, 라는 게 독자로서 내린 저의 최종 결론입니다. 아, 단 몇 줄이라도 이 책의 만듦새에 대해서도 언급해야겠습니다. 작품 특유의 시청성을 돋우는 또 다른 요소가 바로 디자인입니다. 본문 서체(으스스한 분위기와 걸맞되 너무 튀지 않는 바탕체 계열) 선택도 탁월했고, 특히 내지 사이사이 종이 재질을 달리하여* ‘다양한 취재 자료’의 시각성을 극대화한 점은 해당 출판사의 또 다른 책들을 궁금하게 만듭니다. 말을 꺼낸 김에 보태자면, 동일한 출판사에서 나온 세스지의 전작 『입에 대한 앙케트』(오삭 옮김, 반타, 2025) 역시 디자인이 돋보이는 책입니다.(『긴키 지방』과 견준다면 작품 자체는 다소 아쉬웠습니다만.)
* 리뷰를 게시한 뒤 책을 한 번 더 펼쳐 보니 ‘종이 재질이 달라 보이도록’ 내지 디자인에 포인트를 준 것 같았습니다. 책 마지막 장과 뒤표지 사이에, 본문과 차별화한 지류(紙類)의 별책 삽지가 들어 있기도 합니다.
소설 쓰는 병아리 작가 입장에서 마치 굉장한 수업을 수료한 기분으로 강의 평가를 남기듯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의 리뷰를 써 보았습니다. 출판사 지원을 받은 바 전혀 없는, 저 자신의 자유 의지로 남긴 리뷰임을 밝혀 둡니다.
글 임재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