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원>
기차는 철로 위로 달립니다. 철로를 벗어나면 달릴 수 없습니다. 그것은 사고, 탈선이지요. 또한 기차의 달림에는 반드시 거쳐야 할 역들이 존재하며, 그 역들에 제때 도착해야 합니다. 운행 시간표에 따라 착실히 달리고 멈추고 다시 달리는 것이 기차의 움직임입니다.
평생 철도원으로 일한 오토마츠(다카쿠라 켄 분)는 기차처럼 살았습니다. 작은 시골 마을에 있는 호로마이역 역장으로서, 그곳을 오가는 기차들을 들이고 보내는 일을 해왔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기차를 직접 움직이는 기관사로, 중년에는 기관사들을 마중하고 배웅하는 역장으로, 평생을 철로와 기차와 함께 살았습니다.
철도원이었던 아버지는 끝없이 펼쳐진 레일 위를 매일같이 달리는 기차처럼 씩씩하게 살아야 한다고 말했었습니다. 그런 아버지의 삶을 이어받아 오토마츠도 철도원이 되었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힘찬 기적 소리를 울리며 전진하는 기차. 그 기차는 오토마츠의 꿈이자 현실이었습니다.
그러나 인생은 철로를 따라 정해진 시간에 딱 맞춰 가고 멈추고 다시 가는 것이 아니었지요. 탈선의 연속. 딸이 태어나던 날에는 여느때처럼 눈이 내렸습니다. 오토마츠는 딸에게 유키코(雪子)라는 이름을 지어주면 어떻겠느냐고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눈의 아이’. 웃는 모습이 고운 아내는 그러자고 했습니다. 결혼한 지 17년 만에 얻은 딸. 노산에 초산인 탓인지 아내는 지쳐 보였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행복하게 웃었습니다. 호로마이 역장으로 승진하고, 오랜 시간 기다렸던 아이도 얻었습니다. 인생의 기차는 칙칙폭폭 잘 달리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갓난아기인 유키코, 눈의 아이는 독감에 걸려 죽었습니다. 고열로 불덩이가 된 핏덩이를 안은 아내를, 남편은 혼자 시내 병원으로 보냈지요. 훗날 고백하기를, 남편은 딸이 죽는 순간에도 플랫폼에 서서 철도원으로서의 일을 완수했고, 역사 사무실 책상에서 일지도 썼다고 하는군요. 일지에는 “이상무(異常無)”라고 적었다고.
죽은 딸을 안은 아내는 시내 병원에 갈 때처럼 기차를 타고 돌아왔습니다. 아내는 결코 철로를 벗어나는 법이 없는 남편을 책망하며 “당신의 눈의 아이가 차가워져서 돌아왔다”고 말해버렸습니다. 오토마츠는 잠자코 듣고 있었습니다.
얼마 후 아내가 병에 걸렸습니다. 웃음이 고왔던 아내는 자주 울었고, 잠든 시간이 많아졌고, 병원을 오가느라 점점 지쳐갔습니다. 남편은 단 한 번도 병원에 같이 가준 적이 없었습니다. 철도원이기 때문이다, 라고 남편은 말하고는 했습니다. 아내가 임종하는 순간에도 철도원 남편은 철로에 있었지요. 교대를 기다리느라 막차를 타고 병원에 도착했습니다. 아내는 소복이 쌓인 눈처럼, 차갑지만 고운 자태로 누워 있었습니다. 제 시간에 당도하지 않는 열차를 기다리듯, 철도원은 소복이 누운 아내 앞에 가만히 서 있어야만 했습니다.
딸과 아내의 기차는 그렇게 오토마츠의 삶에서 탈선하여 사라져갔습니다. 얄궂게도 철도원 사나이의 기차만이 꿋꿋하게 남아 고독한 철로 위를 달려가고 있었지요. 오토마츠는 그런 스스로를 원망하면서도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 와서 이 철로를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벗어날 것이었다면 이미 오래전에 그랬어야만 했습니다. 아마 그랬다면 딸도 아내도 지금 내 곁에 있을 텐데….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이 철로를 계속 따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 철로 끝에, 저 머나먼 종착역에 아내와 딸이 자신을 맞아줄지도 모를 테지요. 마치 철도원인 내가 지금껏 수많은 사람들을 역에서 맞아주었듯이.
철도원은 눈 내리는 플랫폼에 쓰러져 마침내 자신의 종착역에 당도했습니다. 아니, 어쩌면, 오토마츠의 인생에서 최초이자 최후의 탈선일지도. 삶이 철로처럼 고정된 방향이 있는 것이 아님을, 기차 운행표처럼 출발하고 도착하고 다시 출발하는 시간이 정해진 것이 아님을, 철도원 사나이는 마침내 깨닫지 않았을는지.
호로마이역은 사라졌고, 40여 년을 달린 낡은 디젤 기관차는 운행을 중단했다고 합니다. 눈비를 맞으며, 때로는 햇살도 받으며 언제나 일정한 시간에 플랫폼에 서 있던 철도원은 이제 없습니다. 정년을 앞둔 오토마츠가 말했듯, “철로가 놓이기 전처럼 허허벌판이 되어, 이곳에 철로가 놓여 있었는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애초에 여기에, 이 삶에 철로는 없었습니다. 철로를 벗어났더라면, 기차 운행표를 어겼더라면, 철로 바깥의 다른 삶을 달려볼 수도 있지 않았을까. 인생의 탈선을 사고가 아닌 자연스러운 전진의 일부로 받아들였다면, 철도원 사나이의 삶은 어떻게 펼쳐졌을는지.
끝내 탈선하지 못한 철도원의 삶, 눈 덮인 철로에 고독히 졌다고 합니다.
철도원이 포개진 철로 위로 더는 기차가 다니지 않았다고 합니다.
글_나우어(NOWer)
_회사에 다니며 영화 리뷰를 씁니다.
_저작
<잘나가는 스토리의 디테일: 성공한 영화들의 스토리텔링 키워드 분석> (피시스북 출판사)
<나답게 사는 건 가능합니까> (달 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