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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내버려두지 않는 것, 그냥 안아주는 것

<그곳에서만 빛난다>

by 임재훈 NOWer





이 글에는 영화 줄거리가 상당 부분 포함돼 있습니다







산악 공사 현장의 중간 관리자 정도였던 타츠오(아야노 고 분)는 발파 작업 사고로 동료를 잃습니다. 그 사건 이후 극심한 죄책감에 시달리다 일을 그만둬버리지요. 그리 서두르지 않아도 될 일이었는데, 내가 채근하지만 않았어도 그 녀석은 괜히 죽을 필요가 없었는데…. 절망한 타츠오는 바다가 인접한 어느 소도시에 홀로 머물며 술과 담배로 세월을 보내기로 합니다.

여느 때처럼 하릴없이 슬롯머신 게임장에서 한낮을 때우던 타츠오. 더벅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웬 껄렁이 하나가 담뱃불을 좀 빌려달라고 합니다. 안 그래도 한여름 무더위 때문에 더워 죽겠는데 뭐야 이건, 하는 심정으로 라이터를 그냥 줘버리고 본인은 아예 게임장 카운터에서 새 라이터를 산 뒤 나갑니다. 다시 혼자 좀 있으려는데, 껄렁이도 따라 나와 자꾸 말을 겁니다. 라이터를 준 데 대한 보답을 해야 한다나 어쩐다나. 대뜸 자기네 집으로 가서 밥을 대접하겠다고 그럽니다. 뭐, 딱히 거절할 이유는 없지요. 어차피 할 일도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공밥인데.

바지 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 넣고 터벅터벅 걷는 타츠오, 고물 자전거를 타고 쉴 새 없이 입을 나불대는 더벅머리. 보조바퀴라도 달아줘야 할 만큼 더벅머리의 페달 밟는 품새는 불안합니다. 큰 키에 긴 다리로 꽤 ‘간지 나게’ 걸어가는 타츠오와 대조적입니다. 그렇게 둘이 당도한 곳은 폐가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법한 낡은 판잣집. 그래도, 집 앞에는 모래사장과 바다가 눈부시게 펼쳐져 있습니다. 타츠오와 더벅머리만큼이나 묘하게 대조적인 풍경. 이 집에, 더벅머리의 가족이 있습니다. 호스티스로 일하며 살림을 챙기는 누나 치나츠(이케와키 치즈루 분), 잔소리 심한 어머니, 거동을 할 수 없는 병자 아버지. 아, 더벅머리의 이름은 타쿠지(스다 마사키 분)라고 하는군요. 녀석은 전과자로 현재 가석방 중인 상황이라고 합니다. 나만큼이나 참 힘든 가족이군, 해버리고는 그길로 작별할 만도 하다만, 타츠오는 왠지 이 집에 더 머물고 싶어집니다. 더벅머리, 아니, 타쿠지의 누나 치나츠에게 반했기 때문이지요. 그렇게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 daum movie


이 영화는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이 영화가 이야기하는 사랑의 방식은 거창하지 않습니다. 혼자 내버려두지 않는 것, 그냥 안아주는 것. 그것이 사랑이라고 들려주고 있습니다. 치나츠는 호스티스 생활을 하며, 낯선 남자들에게 몸을 내주며 모은 돈으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집니다. 동생 타쿠지가 갱생 차원에서 근무하는 사무실의 사장과도 모종의 거래를 맺고 있지요. 가석방 기간 동안 동생은 담당 교도관에게 보고서를 제출해야 하는데, 그 보고서는 타쿠지를 고용한 사장에 의해 작성됩니다. 평가가 좋다면 동생의 형량이 줄어들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사면될 수도. 유부남 사장은 이를 빌미로 치나츠의 몸을 거칠게 탐합니다. 누나로서는 거부할 도리가 없습니다. 동생의 일이니까. 가족이니까.

이렇게 오랫동안 생활해왔었고, 앞으로도 형편이 나아질 것 같지는 않기에, 그냥 이대로 살아가려던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타츠오라는 녀석이 나타난 것입니다. 자신에게 열렬히 사랑을 고백하는 타츠오를 치나츠는 애써 부정합니다. “이제 그런 일(호스티스)은 그만뒀으면 좋겠다”, “사장과의 관계를 정리해주기를 바란다”는 타츠오의 우직함이 치나츠는 가소롭습니다. 한 번 잔 것 가지고 유난 떨지 마라는 (어쩌다 보니 둘은 잠자리를 함께했습니다) 모진 말로 타츠오를 쫓아내기도 하지요. 그러나 이상하게도 자신이 혼자 남겨진 순간에, 타츠오는 어딘가에서 반드시 나타납니다. 백마도 없고 왕자도 아닌 주제에(실은 거지에 더 가까운 용모입니다만) 말이지요. 누군가가 나를 혼자 내버려두지 않고 있다, 라는 안도감. 그것이 사랑임을 깨닫는 데 시간이 필요했을 뿐, 치나츠도 실은 타츠오의 사랑이 몹시도 절실했던 여자였나봅니다.


ⓒ daum movie


타츠오는, 상대의 사정에 대해 굳이 묻지 않는 사내입니다. 타쿠지의 전과에 대해서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그냥 지금 이대로의 타쿠지를, 타츠오는 데리고 다니며 밥도 사 먹이고 담배도 피우고 맥주도 마시고, 뭐, 때로 마음에 안 들면 두들겨 패주기도 하지만, 단 한 번도 “너는 애가 왜 그러냐 대체”라는 투로 몰아세우지는 않습니다. 훈계하지 않는 사내. 그게 타츠오입니다.

영화 중반까지는 신파극처럼 흐르지만, 이후부터는 타츠오, 치나츠, 타쿠지 세 등장인물의 관계 형성이 눈부시도록 아름답습니다. 누나와 강제로 섹스를 하고, 심지어 폭력까지 가한 사장에게 타쿠지는 기어코 복수하고 말지요. 가석방 평가 보고서고 뭐고 다 필요없다는 듯, 나의 사랑하는 가족을 다치게 한 녀석 앞에서 타쿠지는 이성(이라 할 것이 애초에 없었던 것 같기는 한데)을 잃습니다. 떠버리인 줄만 알았던 타쿠지에게 이런 면이 다 있다니, 하며 놀라게 되는데, 이 또한 이 영화가 풀어놓은 ‘사랑’의 한 모습일 테지요. 가족의 것이든, 연인의 것이든, 사랑은 눈을 멀게 만들지 않던가요.

몇 차례 흉기로 사장을 찌른 뒤에야 타쿠지는 정신을 차립니다. 헐레벌떡 도망가 숨은 곳이 고작 타츠오의 집 앞입니다. 타쿠지와 타츠오는 산악 공사 현장에 같이 가기로 돼 있었지요. 타츠오가 치나츠와 결혼을 결심하고, 치나츠 역시 그 마음을 받아들이자, 타츠오는 마침내 과거의 아픈 기억을 극복하려고 딴에는 용기를 낸 것이었습니다. 치나츠와 타쿠지는 이제 타츠오에게 가족이 됐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타쿠지 놈의 폭주로 일이 틀어지게 생긴 것입니다. 얼마나 화가 치밀었으면, 타쿠지를 발견한 타츠오는 아무 말 없이, 사정없이 녀석을 때립니다. 잠자코 맞고만 있던 타쿠지는 이내 오열하지요. 산에 못 가게 됐다고, 그저 누나와 엄마와 아버지를 기쁘게 해주고 싶었는데, 이제 다 망쳤다고. 때리는 순간과 마찬가지로, 타쿠지의 울음을 듣는 타츠오는 여전히 말이 없습니다. 말 대신, 타쿠지를 힘껏 안을 뿐. 묵묵히 때리고는, 다시 안아주는 타츠오의 넓은 등판이 새벽 조명을 받으며 은은히 빛납니다. 끝내 타쿠지의 입에서 “타츠오, 아리가토..”라는 말이 터져 나오고, 녀석은 꺽꺽대며 울어버립니다. 다 큰 남자 녀석의 눈물 젖은 얼굴을, 등이 넓은 타쿠지는 또다시 말없이 제 품으로 가져가줍니다. 그 무엇으로부터도 이 녀석의 눈물이 마르지 않게 막아주겠다는 듯, 언제까지고라도 이 못난 얼굴을 흠 나지 않게 품겠다는 듯, 그렇게.


ⓒ daum movie


누군가를 내 사람으로 인식하면, 즉, 사랑에 빠지면, 그 사람을 내 가족으로 오래도록 곁에 두고 싶어지지요. 그런 마력적인 성장을 경험한 사람에게 더 이상 이성이 끼어들 틈은 없어집니다. 그러니, 말이 필요 없어지는 것이겠지요. 말은, 정말로 필요없는 것입니다. 그 사람을 혼자 내버려두지 않는 것, 그냥 안아주는 것. 그것만으로 충분하지요. 타츠오가 꿈꾸는 사랑의 세계란 그런 곳입니다. 사랑은, 그곳에서만 빛날 것입니다.





글_나우어(NOWer)

_회사에 다니며 영화 리뷰를 씁니다.

_저작

<잘나가는 스토리의 디테일: 성공한 영화들의 스토리텔링 키워드 분석> (피시스북 출판사)

<나답게 사는 건 가능합니까> (달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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