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왕국>
이 글에는 영화 줄거리가 상당 부분 포함되어 있습니다.
개인의 재능은 재능이기 전에 하나의 특질입니다. 그 사람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들 중 하나라는 뜻이지요. 동물을 예로 들자면, 기다란 코와 체외로 노출된 상아는 코끼리라는 객체를 이루는 외형적 요소라 할 수 있습니다. 낙타의 혹, 뱀의 혀, 카멜레온의 피부, 오리의 물갈퀴, 전갈의 독침, 달팽이의 촉수 등등도 마찬가지겠지요. 이런 구성 요소들은 본래 지닌 것, 천부적인 것입니다. 갖추어짐 자체는 자연적이지만, 쓰임은 주체적으로, 즉 후천적으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동물의 경우라면 그 선택이 본능적입니다. 코끼리는 긴 코로 물을 흡입해 제 등에 뿌리고, 상아로는 천적들과 맞서며 새끼들을 보호합니다. 낙타는 혹에 지방을 축적하여 섭식 없이 약 한 달을 버티고, 뱀은 혀를 날름거려 먹이를 식별하며, 카멜레온은 변색 가능한 피부를 이용해 위급 상황 시 몸을 숨기고, 오리는 물갈퀴를 저어 유유히 헤엄치고, 전갈은 독침을 찔러 제 몸의 몇 배나 되는 천적들을 물리치며, 달팽이는 촉수를 움직여 앞길의 장애물을 예측합니다. 동물들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천부적 특질을 대부분 생존에 사용하지요. 제 몸을 훌륭히 활용하는 이러한 생존 본능이야말로 동물들의 '재능'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사회적 동물'이라는 사람은 어떤가요. 사회적이기에, 동물임에도 본능적으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살아본다고 하면 살아볼 수도 있을 테지만, 아무래도 곤란함이 따르겠지요. 타인과의 관계, 품위, 매너, 평판, 손익 등속을 고려해야 하니 말입니다. 사회성이란, 대개 그런 것들의 조합으로 완성되는 것이지요. 사회성에 신경을 쓰는 사이에 본능은 상대적으로 퇴색되기 마련입니다. 본능과 결합해야만 제 기능을 하는 타고난 특질이, 이성에 의해 억눌리게 되지요. 스스로 자신의 특질을 아주 잘 감추게 될 것이고(튀면 안 돼), 아예 그 특질의 가치를 폄하하게 될 수도 있고(이거 해서 생활은 되겠냐), 주변 사람들로부터 그 특질에 대한 비판을 수차례 듣다가 결국 그 비판을 수용하게 될지도 모릅니다(그래, 하던 일이나 잘 하자). 과격한 비유가 되겠는데, 낙타로부터 "네 코는 왜 그 따위로 기냐?"라는 말을 들은 코끼리가 평생 자기 코를 사용하지 않고 퇴화시켜버린 경우랄까요.
엘사의 빙마법(氷魔法)은 엘사라는 존재를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입니다. 재능이니 축복이니 저주니 따지기 전에, 그것은 일단 엘사의 고유한 특질입니다. 그녀는 사물을 얼리고 눈과 얼음을 만들어내는 마력을 타고났습니다. 그 마력이 엘사의 특질이자 개성입니다. 그것을 제어하지 못했을 때, 즉 빙마법을 온전히 '내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했을 때, 어린 엘사는 여동생을 다치게 합니다. 유년기의 이 경험이 트라우마가 되어, 그녀는 타인과의 관계 맺기를 완강히 거부하는 자폐적 어른으로 성장합니다. 그러다 결국 자신의 소속 공간인 아렌델 왕국을 박차고 출가하는데, 이때 엘사가 부르는 노래가 바로 '렛 잇 고(Let It Go)'입니다.
It's time to see what I can do
To test the limits and break through
No right, no wrong, no rules for me,
I'm free!
Let it go, let it go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알아볼 시간이야
내 한계를 시험해보고 그것을 극복해봐야겠어
옳고 그름도 없고, 규칙 따위도 없어
나는 자유야
다 풀어놓자, 내 능력을 다 풀어놓자 (*이 구절은 제가 의역해본 것입니다)
다 풀어놓겠다는 것, '렛 잇 고' 하겠다는 선언은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겠다는 다짐일 것입니다. 주체적인 태도이긴 하지만, 성숙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나'밖에 없으니까요. 자신의 빙마법으로 남들이야 추위에 떨든 말든 엘사는 일단 '렛 잇 고' 하여 혼자만의 겨울왕국을 만듭니다. 좋게 말해 왕국이지, 실은 이게 동굴입니다. 또 그녀는 자신의 동굴에 타인들이 들어오는 걸 막기 위해 거대한 설인을 만들어놓습니다. 위압적인 모습이지만, 결국 눈덩이에 불과하지요. 거대한 허상의 이미지입니다. 재미있는 점은 동굴에 들어오려는 타인들이 악당인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여동생 안나가 그렇지요. 아렌델 왕국의 많은 이들이 엘사를 마녀라 비난했음에도, 안나는 언니를 감쌉니다. 오히려 엘사의 비정상적 행동을 자기 탓으로 돌립니다. 그런 안나에게 엘사는 "너는 나와 함께 있으면 위험하다"라고 밀쳐내며 동굴에서의 고독한 삶을 고수합니다. 하지만 정말 위험했던가 하면, 그런 것만도 아니었습니다. 엘사에게는 만물을 얼려버리는 마법 말고도, 온기를 가져오는 상극의 마법도 내재돼 있었던 겁니다! 스스로 그 특질을 발견해내지 못했을 뿐이지요. 그래서 '나의 빙마법은 모두를 해치는 것이다, 나는 위험한 존재다'라고 스스로를 규정한 채, 거대한 괴물 모양의 차가운 방어기제를 동굴 앞에 세워두었던 것입니다. 일찍 알아냈더라면 겨울왕국도 설인도 없었을 텐데. 하기야, '자기 자신'을 알아간다는 게 어디 말처럼 쉽고 빠르던가요.
열등감에 사로잡혀버리면 일방통행처럼 우울로 치닫기 쉬운데, 이 글을 쓰고 있는 저의 경우엔 그런 우울이 '콘셉트'였던 적이 많았습니다.(라고 지금은 생각합니다.) 엘사가 겨울왕국 앞에 매복시켜둔 괴물처럼 말이지요. 스스로 먼저 우울해짐으로써(‘우울’의 콘셉트를 갖춤으로써) 타인들과의 접촉을 차단하는 전략이랄까요. 엘사의 빙마법처럼, 대중에게 외면당하는 제 자신의 하찮은 재능을 탓하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좀 그러면 어떤가요. 인류사를 통틀어 단 한 번도 우울하지 않았던 인간은 존재하지 않았을 겁니다.(라고 자위해봅니다.)
이 애니메이션이 해피엔딩일 수 있었던 이유는, 엘사가 빙마법이 아니라 융마법(融魔法)을 선보였기 때문입니다. 엘사가 끝내 여름을 불러내지 못했다면 스토리는 참담한 비극이었을 테지요. ‘빙’으로부터 ‘융’을 발견해내는 이야기, 요컨대 <겨울왕국>의 테마가 아닐는지요. 자신의 재능이 하찮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그러나 그 또한 자신의 특질임을 인정하기. 그 보잘것없는 특질과 하나로 연결된 전혀 새로운 특질을 발견해내기.
엘사는 여름을 소환한 뒤, 아렌델 왕국에 스케이트를 탈 수 있는 빙판을 만들었습니다. 게다가 눈사람 올라프가 녹지 않도록 개인용 설운까지 선물했지요. 여름 안의 겨울입니다. 자신의 새로운 특질인 융마법으로 대중과 소통을 시작했으나, 또 다른 특질인 '빙마법'을 버리진 않은 것입니다. 엘사는 이 둘을 공존시켰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마법 수위를 조절할 줄도 알지요. 자기 감정을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여름의 감정, 겨울의 감정 모두를 받아들였기에 가능한 일이겠지요. 개인의 특질은 이런 과정을 거쳐 타인들에게 인정받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아마 아렌델 왕국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엘사를 두려워할지도 모르지요. 여름을 돌려놓았다 해도, 그녀에겐 여전히 모든 걸 얼려버리는 마법도 내재하니까요. 그녀의 특질을 인정하기는 하지만, 이해하기엔 (마법사가 아닌 일반인들로서는) 무리일 것입니다. 자신들과 다르기 때문에. 그런데 '이해'가 아닌 '인정'이라서, 아렌델 왕국은 해피 엔딩일 수 있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것들 중에는, 이해할 수 없는 그 상태로 놓아두어야만 본연의 고유함이 유지되는 무언가도 있는 법입니다. 달에 사람 발자국이 찍힐 때, 더 이상 달은 ‘달님’이기 힘들어지겠지요. 달을 달로서도 이해하는데, 달님으로서도 인정할 수 있는 마음 자리, 거기에 토끼도 있고 방아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만약 스스로 '재능'이라 믿는 어떤 재주가 있다면, 그리고 가능한 한 많은 이들로부터 그 재주를 인정받고 싶다면, 우선 그것이 재능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코끼리의 코나 낙타의 혹과 같은 '특질'로 받아들여보는 건 어떨까 합니다. 하나의 '생김새'로서, 천연(天然)의 것으로서 말이지요. 그런 뒤에는 말 그대로 '생긴 대로' 살아보는 것입니다. '렛 잇 고'의 단계입니다. 다만, 자신의 특질이 재능으로 인정받든 못 받든, 엘사처럼 혼자만의 차가운 동굴 안에 고립되지는 말기. 동굴 앞에 괴물을 세워두지도 말기. 또한, 안나가 엘사에게 그랬듯, 타인(가족 관계 포함)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도 '이해'가 아닌 '인정'으로 다가가보기. 자기 자신에 대한, 그리고 타인에 대한 "진실한 사랑의 행동(an act of trure love)"은 이렇듯 '인정'에서 시작된 적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글_나우어(NOWer)
_회사에 다니며 영화 리뷰를 씁니다.
_저작
<잘나가는 스토리의 디테일: 성공한 영화들의 스토리텔링 키워드 분석> (피시스북 출판사)
<나답게 사는 건 가능합니까> (달 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