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기철 보랏빛 저녁 하늘에 대한 소고

[평일의 의식의 흐름. 여름] #6

by 임재훈 N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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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빛은 지구로 들어오면서 산소, 먼지, 물방울 등 대기 중의 여러 입자들과 부딪힌다. 이 충돌에 의해 빛이 말 그대로 부서져서 사방으로 흩어지는데 이 현상을 과학적으론 ‘산란(scattering)’이라고 부른다. 태양빛의 가시광선, 즉 육안으로 보이는 빛 가운데 파란빛은 파장이 짧아 산란이 잘 된다. 술안주용 아몬드 스낵으로 치자면, 알이 유독 잘고 무르다고 해야 할까. 하여간 잘 부스러진다. 맑은 날 하늘이 파란색으로 보이는 이유는 그만큼 파란빛이 많이 잘 부서졌기 때문이다.

이윽고 밤이 다가오면, 그러니까 지구가 서서히 자전하면서 태양과 멀어질수록 태양빛이 내가 위치한 지역(대한민국의 경우 북위 33~38도, 동경 124~130도)까지 도달하는 경로가 길어진다. 대부분의 빛은 내 눈에 닿기도 전에 산란되어 흩어져 버리고 만다. 딴딴한 아몬드처럼 파장이 긴 빨간빛 정도가 겨우 해질녘 하늘을 부분적으로 물들인다. 붉은 노을. 몇 안 되는 파란빛도 제 존재를 바수어 가며 빛을 퍼뜨려 보지만 역부족이다. 파란 노을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우기철이라면 파란빛이 좀더 힘을 낼 수 있다. 대기 중의 숱한 물방울 입자들 덕에 파란빛의 산란이 평상시 해거름에 비해 활발해지는 것이다. 압도적인 빨간빛과 견주기는 어려우나 그래도 액적(液滴) 한 알 한 알과 부닥치며 자기 역량을 최대치로 발휘하는 파란빛. 그렇게 빨강에 파랑이 섞여 들어가면서 보라색을 띠게 된다.

이상은 ‘비 온 뒤 해질녘 하늘이 보랏빛으로 보이는 과학적 이유를 알려줘’라는 질문에 대한 구글 제미나이의 답변 내용을 내 식대로 풀이해 본 것이다. 상당한 의역 또는 오역이 포함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내 본연의 색채는 발하지 못하더라도, 일단은 해 볼 수 있는 데까지 밀어붙여 보랏빛 성과를 얻어 내고야 만 파란빛에게 심히 감정 이입을 한 탓이다. 빨간빛의 너른 풍모도 물론 한몫한 것이 사실이지만, 어쨌거나 초어스름 하늘의 조건 위에서 파란빛은 약자다. 제우스와 헤라클레스가 싸운다면 그나마 인간에 더 가까운 반신반인을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랄까.






사진수필 『평일의 의식의 흐름』(2025)

- 글과 사진. 임재훈

- 저자 소개. 포트폴리오 / 인스타그램


※ 『평일의 의식의 흐름』 브런치북은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편으로 분재됩니다. 각 계절당 25편의 글과 그보다 많은 사진들을 실을 계획입니다. 혹시 모를 무단 전재 및 배포 행위를 예방하고자 브런치북에는 원본 사진이 아닌 해상도(용량)를 줄이고 텍스타일 효과를 입힌 사본을 게재합니다. 추후 출간 작업이 진행되면 출판사와 원본 사진들을 공유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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