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상상하는 초록

[평일의 의식의 흐름. 가을] #1

by 임재훈 NOWer



파란색 휘장을 두른 건축 공사 현장. 그 앞에 노란 은행나무가 서 있다. 색 대비가 선명하다. 색상환표에서 파랑은 차가운 한색계, 노랑은 따뜻한 난색계로 분류된다. 색상환 원판 중앙선을 기준으로 정반대 영역에 놓여 있지만 정면으로 마주보는 관계는 아니다. 원형 시계판으로 비유하면 파랑이 7, 노랑이 2 정도에 해당한다. 일곱 시 십 분이거나 두 시 삼십오 분의 형상이다. 시곗바늘이 벌어진 각도는 어림잡아 160도쯤. 이와 달리 열두 시 삼십 분 또는 여섯 시 정각, 아홉 시 십오 분 혹은 세 시 사십오 분처럼 색상환표에서 180도 대극을 이루는 두 빛깔은 보색(complementary color) 관계다. 예컨대 파란색의 보색은 주황색, 노란색의 보색은 남색이다. 함께 있을 때 서로를 돋보이게 하는 색채들. 그러나 섞이는 순간 각자의 본색을 잃고 무채색(흰색⋅검은색⋅회색)이 되고 만다. 파랑과 노랑은 약 20도 각도 차이로 유여수화(有如水火)의 운명을 피한 셈이다. 둘이 혼합하여 발하는 새 빛은 다름 아닌 초록이다.

저 휘장이 걷히고 은행잎이 전부 떨어질 때즈음, 그러니까 파란색도 노란색도 말끔히 사라지는 계절이 오면 파릇한 초록과 함께 새 건물도 활짝 문을 열 것이다. 지난 계절의 파랑⋅노랑이 의미 없이 소멸한 게 아니듯, 새봄의 초록도 갑자기 발색한 게 아님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빛깔이든 건물이든, 사물이든 사람이든, 무언가와 누군가 들의 어울림과 맞물림, 배색과 배합의 결과라는 점을 간과하지 않으려고 한다. 내가 마음이 시릴수록 어딘가의 풍경으로 녹아들고자 총총 돌아다니고, 자기만의 확실한 색을 머금은 이들과 무리를 해서라도 만남을 갖는 이유다.






사진수필 『평일의 의식의 흐름』(2025)

- 글과 사진. 임재훈

- 저자 소개. 포트폴리오 / 인스타그램


※ 『평일의 의식의 흐름』 브런치북은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편으로 분재됩니다. 각 계절당 25편의 글과 그보다 많은 사진들을 실을 계획입니다. 혹시 모를 무단 전재 및 배포 행위를 예방하고자 브런치북에는 원본 사진이 아닌 해상도(용량)를 줄이고 텍스타일 효과를 입힌 사본을 게재합니다. 추후 출간 작업이 진행되면 출판사와 원본 사진들을 공유할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