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빵소 낙엽들과 석유화학 공장 포대

[평일의 의식의 흐름. 가을] #6

by 임재훈 N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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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에 규모가 제법 큰 베이커리 카페가 있다. 제빵소를 별채로 두고 운영하는 곳이다. 바람 부는 날 본채 뒤편에 서 있으면 빵 공장의 흰 연기가 내 쪽으로 솔솔 다가오기도 한다. 가을에는 카페 건물과 제빵소 사이의 주차장을 겸한 공터에 낙엽 쓸어 담은 포대가 늘어선다. 자루 겉에 적힌 유화(油化)라는 낱말이 궁금해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해 보니 ‘석유화학’의 준말이라고 나온다. 탄소섬유를 ‘탄섬’, 화학섬유를 ‘화섬’이라 줄여 부르는 것과 비슷한 용례인 듯하다. 또 의문이 든다. 제빵소에 왜 석유화학 회사의 부대들이 이리도 많지? 계속 알아보니 유화 회사에서 생산한 이런저런 제품들이 제빵 공장의 포장재나 설비 부품, 윤활유 및 세정제 등으로 쓰인다고 한다. 제빵소라길래 단순히 밀가루를 빚고 굽는 곳으로만 알았던 나의 얄팍한 세상 물정 이해도가 참담하기 그지없다. 꼬맹이 시절 ‘엄마 아빠가 중국집 하는 쟤는 만날 짜장면 먹을 수 있어서 좋겠다!’ 부러워하던 수준에서 조금도 발전하지 못했다는 자괴감마저 든다. 실제로 그애의 부모님은 식당 재룟값을 아끼느라 정작 자식에겐 중화요리를 못 먹이셨다고 들었다.

전혀 다른 형질의 ‘빵’과 ‘석유화학’이 실은 산업적으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듯, 가을이라는 계절도 ‘유화 포대’와 생각지도 못한 짝을 이룬다. 분말형 유화 제품을 담았던 베자루가 떨어진 홍엽들을 거두는 주머니로 쓰이게 될 줄은 석유화학 공장 공장장도 빵 공장 공장장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 같다. 그리고, 이 베이커리 카페에서 주차 안내원으로 근무하는 분들 역시, 석유화학 회사의 포대 안에다 빵을 만들고 파는 야외 상점 주차장의 낙엽들을 쓸어 담게 될 줄은 몰랐으리라. 나도 마찬가지다. 40대의 어느 가을 오후에, 그것도 평일에, 본채인 카페와 별채인 빵 공장 그 어디에도 못 들어가고 딱 중간지대인 공허지지에 어중간히 서서는 ‘제빵소에 왜 석유화학 회사 포대가 있지?’라는 뜬금없는 호기심이나 품게 될 줄은, 나 스스로도 내다보지 못했다.

계절의 하루하루 날씨까지 정확히 예측할 순 없어도 이 계절이 지나면 다음 계절이 온다는 섭리만은 확고부동하듯, 가을 뒤에 겨울이, 그러고는 봄이 올 것임에 집중하며⋯ 이 가을에 제빵소의 낙엽들과 석유화학 공장의 포대들과 주차 안내원 분들과 나라는 웬 산책자가 포개졌듯, 앞으로 내 삶의 계절들과 엮일 ‘뜻밖의 연결’들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 본다.





사진수필 『평일의 의식의 흐름』(2025)

- 글과 사진. 임재훈

- 저자 소개. 포트폴리오 / 인스타그램


※ 『평일의 의식의 흐름』 브런치북은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편으로 분재됩니다. 각 계절당 25편의 글과 그보다 많은 사진들을 실을 계획입니다. 혹시 모를 무단 전재 및 배포 행위를 예방하고자 브런치북에는 원본 사진이 아닌 해상도(용량)를 줄이고 텍스타일 효과를 입힌 사본을 게재합니다. 추후 출간 작업이 진행되면 출판사와 원본 사진들을 공유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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