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세계 여백

[평일의 의식의 흐름. 겨울] #6

by 임재훈 N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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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예보 있는 날 하늘은 종일 시허옇다. 덩어리진 설운들이 상공을 가득 메우면 마치 화실의 오랜 도화지 같은 색을 띤다. 종이 냄새가 날 것만 같은 빛깔이다. 그런 하늘 밑의 세상을 카메라로 담는다. 그림 같다. 내가 사진을 잘 찍었다는 게 아니라, 프레임 안의 이미지 자체가 사생화처럼 보인다는 의미다. 하늘은 오래 묵은 전지(全紙)의 옹근 단면처럼 펼쳐져 있는데, 그 아래 구조물들은 사방 면면 덧칠된 눈발로 인해 삼차원 도형에서 이차원 정물로 변모한 모양새다. 풍경 사진 속 하늘이 채색화의 여백처럼 너르고 잠연하다.

그간 읽고 배우기로 동양화와 서양화의 여백 다룸새는 크게 다르다. 동양화의 여백은 단어 뜻 그대로 ‘빈 자리’다. 아무것도 그리지 않고, 즉 붓질을 그치고 비워 두는 공간이다. 그곳을 에너지의 응집점, 기(氣)의 공동(空洞)으로 바라본다. 노장 사상의 무위자연(無爲自然), 공(空)의 철학과 맞닿는 부분이다. 반면 서양화에서 나타나는 여백은 ‘비움의 이미지’로 채워진 공간인 경우가 적잖다. 특히 캔버스를 빈틈없이 메우는 유화를 예로 들면, 보는 사람이 비어 있다고 감각하는 곳에도 실은 물감이 칠해져 있는 식이다. 서양화의 여백 개념은 오늘날 시각 디자인 분야에서도 통용되는데, 실제로 그래픽 디자이너들은 ‘여백을 두다/빼다’ 같은 표현을 곧잘 사용한다. 여백을 비워 두는(손대지 않는) 자리가 아니라 설계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동양화식 여백은 정신계, 서양화식 여백은 물질계와 이어지는 통로 같다. 두 길을 한길 걷듯 가는 이가 있다면 그 사람은 필시 예술가일 것이다. 시인 김종삼, 음악가 셀로니어스 멍크 같은 인물들이 얼른 떠오른다.*

갤러리에서 대형 원화(原畫)를 감상하듯 눈세계 여백을 한참 올려다본다. 앞으로 어떻게 살까, 뭘 그려야 할까, 뭘 그릴지도 모르는데 비우고 채워야 할 것들은 또 어떻게 가려낼까, ⋯⋯. 제시간에 원고 작업 끝내고 모처럼 머리나 식힐 겸 외출했는데 쉼표는커녕, 여백은 언감생심, 옷소매에 물감 튀듯 머릿속이 번잡한 의문문들로 얼룩진다. 잠시라도 비어 있기가 이렇게나 어려운 거였나.

* 이 두 예술가들이 어째서 ‘여백’과 연결되는지 궁금하신 분들은 필자의 또 다른 브런치북 『디자인-글쓰기』(2024) 제5화 「채워진 비어 있음 ①」을 참고해 주시기 바란다.






사진수필 『평일의 의식의 흐름』(2025)

- 글과 사진. 임재훈

- 저자 소개. 포트폴리오 / 인스타그램


※ 『평일의 의식의 흐름』 브런치북은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편으로 분재됩니다. 각 계절당 25편의 글과 그보다 많은 사진들을 실을 계획입니다. 혹시 모를 무단 전재 및 배포 행위를 예방하고자 브런치북에는 원본 사진이 아닌 해상도(용량)를 줄이고 텍스타일 효과를 입힌 사본을 게재합니다. 추후 출간 작업이 진행되면 출판사와 원본 사진들을 공유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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