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의 의식의 흐름. 겨울] #4
회사 그만두고 나서는 생활 영역이든 행동반경이든 다 거기서 거기인 터라 카메라로 포착한 이미지들도 고만고만하다. 지난주에 바라본 먼산을 또 촬영하고, 며칠 전 지나갔던 길을 각도만 살짝 틀어 찍는 식이다. 그렇게 1년, 2년, 3년 늘 똑같은 경로를 돌아다니며 셔터를 누른다. 비스무리한 이미지들이 중중첩첩 모이고 나니 제법 만족스럽다. 낱낱일 때는 단조로운 평면이지만 여러 장을 잇따라 구경하니 입체적이다. 한겨울 첩첩옥산(疊疊玉山)이 단출히 구름 모자 하나만 쓰고 있던 지난여름, 눈옷 껴입기 전의 알록달록했던 산천 가을옷을 다시 들여다보자니 몹시 새삼스럽다. 계절색의 선명한 대비 덕에 늘 걷고 보는 동네가 딴 세상 같다. 만날 가는 데만 가고, 어제 먹다 남긴 도시락 오늘 마저 먹고, 읽었던 책 또 꺼내 펼치고, 벌써 두 번은 본 영화를 기어이 세 번째 관람하고, 지난주에 마무리지으려던 원고를 다음주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털어 내기로 다짐하는 나의 도돌이표 같은 일상도, 한 계절 두 계절 겹겹이 쌓는다면 뭔가 그럴듯한 입체성을 띠게 되지 않으려나. 빳빳한 도화지로 다면체를 만들 듯 말이다. 나날의 반복되는 삶을 종이접기의 감각으로 살아 낸다면 어떨까. 해거름과 해넘이가 삶이라는 거대한 지면의 빗금이다. 매일 매해의 그 점선을 따라 나는 접고 접고 또 접는다. 종국엔 무슨 모양이 될까. 내가 원하는 형태가 있긴 하다만, 막상 또 고대로만 접힌다면 재미가 없을 것 같기도 하고. 아닌가, 그래도 내가 뭘 접고 있다는 의식은 또렷해야 하나. 하지만 삶이라는 게 내가 바라는 대로만 순순히 접혀 줄까. 또 생각, 또 걱정, 또, 또. ⋯⋯한겨울 겹겹산이 눈옷 밑자락 사람 사는 동네까지 내려보내는 차디찬 활승무(滑昇霧)나 듬뿍 들이마셔 본다. 옷 속으로 찬 손 하나 쑥 들어온 듯 정신을 바짝 차리게 된다. 미처 다 접지 못한 하루가 백지장처럼 하얗게 펼쳐져 있다. 부지런히 가야겠다.
사진수필 『평일의 의식의 흐름』(2025)
- 글과 사진. 임재훈
※ 『평일의 의식의 흐름』 브런치북은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편으로 분재됩니다. 각 계절당 25편의 글과 그보다 많은 사진들을 실을 계획입니다. 혹시 모를 무단 전재 및 배포 행위를 예방하고자 브런치북에는 원본 사진이 아닌 해상도(용량)를 줄이고 텍스타일 효과를 입힌 사본을 게재합니다. 추후 출간 작업이 진행되면 출판사와 원본 사진들을 공유할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