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의 의식의 흐름. 겨울] #3
눈 쌓인 날에는 거리, 주택가, 아파트 단지마다 눈사람 한둘 씩은 꼭 등장한다. 다 사람이 만들어 놓은 거다. 언제부터 이런 풍토가 시작되었을까. 구글 제미나이와 챗지피티에게 ‘눈사람의 기원’을 물었다. 명쾌한 답을 못 들었다. 하기야, 눈밭에서 눈뭉치 돌돌 굴려 이등신 세우며 노는 일에 학제적 기록을 기대하는 발상부터가 지나친 ‘엄근진’이다. 아쉬운 대로 몇몇 나라들이 ‘눈사람’을 어떻게 쓰고 발음하는지만 찾아 보았다. 이게 의외로 재미있었다. 독일은 ‘데 슈니만(der schneemann). ‘슈니(schne, 눈)’에 ‘만(mann, 성인 남자)’을 붙인 합성어다. 우리나라의 ‘눈사람(눈+사람)’과 같은 구조다. 문법적 성별(Grammatical Gender)을 둔 독일어는 눈도 눈사람도 남자로 본다. 그래서 남성형 명사의 주격 정관사 ‘데(der)’를 사용한다. 그런가 하면 스페인어의 눈사람 ‘무니에꼬 데 니에베(muñeco de nieve)’는 혼성이다. ‘무니에꼬’는 남자 인형, ‘니에베’는 눈으로 여성형 명사다. 일본에서는 ‘유키다루마(ゆきだるま)’라 하는데, ‘유키’가 눈이고 ‘다루마’는 달마 대사를 형상화한 오뚝이 장난감의 명칭이라고 한다.
검색 결과 중 제일 감성적으로 다가온 낱말은 프랑스어였다. ‘본옴므 데 네쥐(bonhomme de neige)’. 이 단어도 스페인어처럼 혼성이다. 남성형 명사 ‘본옴므’는 좋은 사람, 여성형 명사 ‘네쥐’는 눈. 하늘에서 내려온 순백의 여성성이 착한 남자를, 즉 선량한 아들을 빚어 지상 곳곳에 세운다. 제의적이면서도 가족적인 심상이 그려진다. 장엄한데 따뜻하기까지 하다. 물론 어디까지나 내 어쭙잖은 언어 감수성에 불과하다. ‘네쥐’를 여성 창조주, ‘본옴므’를 남성 피조물로 감각했지만 실제로 프랑스어의 신 ‘디우(dieu)’는 남성형 명사로 분류된다.
그러고 보니 독일, 스페인, 일본, 프랑스의 언어적 세계관에서 눈사람은 다 남자다. 그래서인지 ‘초음파 검사로 성별이 확인된’, ‘이미 태어난’, ‘출생 신고를 마친’ 인격체 같다. 이와 비교하면 문법적 성별을 두지 않은 우리말 ‘눈사람’이나 중국어 ‘설인(雪人)’은 이제 막 잉태된 생명성 그 자체로 느껴진다. 그런데 또 ‘설인’이라 하면 히말라야의 전설 속 괴수 ‘예티’가 마치 연관 검색어처럼 머릿속에 생성된다. 그러니까 뭐 결론은⋯ 눈사람은 역시 ‘눈사람’이라 부르고 적는 게 제일 좋더라, 하는 어떤 한국 사람의 싱거운 감상.
사진수필 『평일의 의식의 흐름』(2025)
- 글과 사진. 임재훈
※ 『평일의 의식의 흐름』 브런치북은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편으로 분재됩니다. 각 계절당 25편의 글과 그보다 많은 사진들을 실을 계획입니다. 혹시 모를 무단 전재 및 배포 행위를 예방하고자 브런치북에는 원본 사진이 아닌 해상도(용량)를 줄이고 텍스타일 효과를 입힌 사본을 게재합니다. 추후 출간 작업이 진행되면 출판사와 원본 사진들을 공유할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