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유 주의

[평일의 의식의 흐름. 겨울] #7

by 임재훈 N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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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인(CAFFE-IN)’이라는 육면 돌출 간판 곁 앙상스럽게 선 나무. 가을에는 가지마다 은행잎을 찌우고 노랗게 투실투실했었다. 눈옷이라도 입어야 좀 덜 말라 보일 텐데, 삐죽한 알살이 하도 가녀려서 한설을 충분히 견뎌 내지 못한다. 사시사철 무성한 상록수였다면 엽지(葉枝) 속속들이 착 감겼을 하얀 결정들이, 저 마른 졸가리 위에서는 희끗거리기만 할 뿐 설백의 옷감으로 펼쳐지지는 못한다. 고행하듯 일부러 헐벗는 모습이라 바라보기가 영 안쓰럽다. 덩치 좋던 친구가 한 철 사이 몰라보게 퀭해진 것 같다. 야, 너 살을 왜 이렇게 뺀 거야? 나뭇잎들 다 어쨌어? 네 몸에서 나오던 노란 빛은 다 어디로 간 거야? 화사했던 녀석이 왜 이러고 있어?

동네 은행나무를 사람처럼 대하다 보니 이런 설된 심상이 잘도 흘러나온다. 추말(秋末) 낙엽수가 제 살 깎듯 잎을 털어 내는 까닭은 생존 때문이다. 잎이 달려 있으면 물을 많이 흡수하고, 광합성하느라 기운도 소진한다. 당연히 잎을 버려야 수분 손실과 에너지 소모를 막을 수 있다. 동절기 한랭 건조 기후를 대비하는 것이다. 겉보기에는 앙상궂고 스산해도 실은 그 상태가 나무 입장에서는 최적의 생존 조건이다. 은행나무 같은 낙엽목이 한겨울에 잎을 틔우고 있다면 그게 진짜로 걱정할 일이다.

글 쓰는 생활인의 직업병적인 반성. ‘비유’를 쓸 때 정말 각고면려해야겠다. 가령 ‘겨울나무처럼 마른 그의 몸은 금방이라도 풀썩 주저앉을 것 같았다’(직유), ‘가지만 남은 자작나무 몇 그루가 우듬지에서부터 마을 길바닥까지 무겁고 불길한 숨을 한참이나 내리쉬는 기분이 들었다’(대유)라는 문장들은 엄밀하게 따지고 들면 수사적 오류다. 잎을 버리고 가지만 남겨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는 겨울철 나무에, ‘풀썩 주저앉음’ 내지 ‘무겁고 불길한 숨’ 같은 하강의 이미지를 갖다붙이는 건 아무래도 어색하다. ‘어쨌거나 내 눈엔 가냘프고 스산하고 을씨년스럽게 보이는 걸?’ 투의 인간 중심주의적 세계관도 엿보인다. 나무한테, 그리고 자연의 섭리에 큰 실례가 아니려나.






사진수필 『평일의 의식의 흐름』(2025)

- 글과 사진. 임재훈

- 저자 소개. 포트폴리오 / 인스타그램


※ 『평일의 의식의 흐름』 브런치북은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편으로 분재됩니다. 각 계절당 25편의 글과 그보다 많은 사진들을 실을 계획입니다. 혹시 모를 무단 전재 및 배포 행위를 예방하고자 브런치북에는 원본 사진이 아닌 해상도(용량)를 줄이고 텍스타일 효과를 입힌 사본을 게재합니다. 추후 출간 작업이 진행되면 출판사와 원본 사진들을 공유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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