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에 대한 짧은 단상

스즈키 유이 장편소설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 리뷰

by 임재훈 NOWer


화제작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에 대한 짧은 단상





스포일러 주의.

소설 줄거리가 포함된 독후감입니다.





2025년 11월 출간된 장편소설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스즈키 유이 저, 이지수 역, 리프, 원제 『ゲーテはすべてを言った』)는 2026년 2월 11일 현재 교보문고와 알라딘 베스트셀러 순위 5위권에 랭크되어 있는 화제작입니다. 책 뒤표지 안팎에 좀 과하다 싶을 만큼 빼곡히 인쇄된(보기 좋은 디자인은 아닌 것 같습니다.) 출판사 홍보 문구—‘30일 만에 쓴 첫 장편소설로 일본 최고 문학상을 거머쥐다’—와 추천사들이 기대감을 높여 주었습니다. 인터넷 서점 도서 소개 페이지의 화려한 상찬—“2001년생 천재 작가의 경이로운 장편 데뷔작”(출판사 서평), “스물세 살의 젊은 작가 스즈키 유이의 첫 번째 장편소설이자 작가를 최초의 2000년대생 아쿠타가와상 수상자로 만들어준 작품”(알라딘 ‘편집장의 선택’)—도 이 책을 안 읽어 볼 수 없게 만드는 요인이었습니다.


감탄스러운 소설입니다. 스즈키 유이라는 신예 작가의 방대한 독서량과 그로써 다졌을 지성의 너른 토양에 감탄했습니다. 독후감을 쓰는 저 역시 작가로 활동 중인 터라 그야말로 한 수 배우면서 읽었습니다. “한마디로 ‘어느 독문학자의 괴테 명언 출처 찾기 여정’이라고도 요약할 수 있는”, “우연히 손에 들어온 티백 꼬리표 하나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242·243쪽, 옮긴이의 말 중)라는 어찌 보면 퍽 단조로운 서사 구조를 전혀 ‘심심하지 않게’ 부리는 작가의 필력, 그리고 수두룩한 명언-인용문들을 스토리텔링이라는 얼개 곳곳에 솜씨 좋게 배치할 수 있는 그 능력—독서력과 교양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그 조직력에 계속 탄복하는 것이 이 소설을 읽는 최대 재미였습니다.


책을 읽는 동안 저 또한 소설 속 주인공인 괴테 학자 ‘도이치’가 된 기분이었고, 마지막 장을 넘기고 나서도 한동안 그 ‘도이치-되기’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괴테의 명언을 왜 찾는 거지?

그걸 찾아서 뭘 할 거지? 그걸 찾는 게 이 소설—‘나’의 삶 안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 거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소설 속에서도, 그리고 소설을 다 읽은 제 머릿속에서도 못 찾았기 때문입니다. 소설 초반을 읽을 때는 스스로 ‘찾았다’고 착각했습니다. 이런 문장들 때문에요.


도이치의 온갖 생각, 힘, 행위의 소산일 말, 말, 말⋯⋯ 그러나 그는 지금 그 안에서 새로운 생각이나 힘, 행위의 태동을 느낄 수 없었다. 어쩌면 일단 언어화된 생각이나 힘이나 행위는 핀으로 꽂아 표본 상자에 가지런히 넣어둔 나비처럼 두 번 다시 날갯짓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 본문 38쪽


“이 어두운 시대에는 자네가 들려주는 말이 더더욱 중요해지네. 그렇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좋은 말을 계속 들려주게.”

— 본문 92~93쪽, 장인이자 스승 운테이 마나부가 사위이자 제자 도이치에게 건넨 크리스마스 카드 메시지 일부.


평생 괴테의 ‘말’을 연구한 중년의 학자가 이제야 비로소 괴테로부터 벗어나 “지금 그 안에서 새로운 생각이나 힘, 행위의 태동을 느낄 수” 있게 해줄 ‘나의 말-행동’(장인어른이 이른 “자네가 들려주는 말”)을 찾아가는 이야기가 펼쳐지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읽다 보니 아니더라고요. 소설이 끝날 때까지 주인공 도이치는 괴테의 말 찾기에만 천착하고, 심지어는 온 식구를 그 일에 참여시킵니다. 게다가 좀 힘이 빠지는 지점이, 똑 부러지는 결론이 안 난다는 것입니다. 도이치가 그토록 알고자 했던 괴테의 말의 출처 탐색은 끝내 미제로 남고 마는데, 소설의 결말은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습니까’ 식으로 얼버무린다는 느낌입니다. 독자로서 ‘엥?’ 하게 되는 대목이랄까요. 이 ‘엥?’ 때문에,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를 훌륭한 소설이라 인정하면서도 ‘이렇게까지 화제작이 될 정도인가?’ 하는 생각도 동시에 해 봅니다.


그래서 전 학자들이 너무 이상하게 느껴집니다. 시가 생활에서 나오지 않고 책에서 만들어진다고 생각하는 듯해서요.

— 본문 117쪽, 도이치의 꿈속 ‘남자’의 말


소설 속에 나온 위 문장이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에 대한 제 심정과 딱 맞아떨어집니다. 인용문을 활용해 써 보자면 ‘예술이 생활에서 나오지 않고 책에서 만들어진다고 생각하는’, 즉 예술을 책으로만 배운 사람이 예술에 대해 논하는 듯한 이야기 같달까요. 소설을 계속 읽어 나갈수록 그런 느낌을 지우기 힘들었습니다. 본문 안에 등장하는 인용문들, 그러니까 누군가의 명언들, 더 단적으로 표현하면 수두룩한 ‘남의 말’ 더미에 ‘작가의 말’이 묻혀 버린 인상도 받았습니다. 소설의 판을 먼저 짜고 그 안에 명언들을 요소요소 포진시켰다기보다는, 명언들을 골조로 세운 다음 그곳에 소설을 채워 넣은 게 아닐까(물론 이 과업도 대단한 성과이기는 합니다.) 하는 감상도 해 봅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작가의 ‘노련미’가 아쉬워집니다. 작가 스스로도 본인 소설에 대한 갈피를 못 잡고 있는 듯한, 주인공 도이치를 어찌 다루어야 하는지 결판을 못 내는 것 같은 대목이 눈에 띄었습니다.


어떤 면에서 괴테는 위에서 내려다보며 앉아 있는 것이 얼마나 허무한지도 이야기하는 셈이에요.

— 본문 189쪽, 도이치의 TV 강연 내용 중


애초에 『파우스트』는 지식인의 어리석음을 그린 희곡이니, 그걸 교수가 위엄 있게 해설하는 것만큼 우스운 일은 없다고도 할 수 있다.

— 본문 223쪽


앞서 인용했던 초반부 문장들과 결이 같습니다. “위에서 내려다보며 앉아 있는 것”과 “지식인의 어리석음”이라는 (이 소설의 이야기 흐름을 염두에 둔다면 결코 가벼이 넘길 수 없는) 언급은 자연스럽게 소설 초반에 예고된 ‘(남의 말이 아닌) 나의 말 찾기’와 조응합니다. 그런데 정작 이야기는 초지일관 ‘남의 말 찾기’로 흘러가 버립니다. 저는 이걸 이야기의 혼선이라고 감상했는데요. 스즈키 유이라는 신예 작가의 첫 소설이니 만큼, 차기작에서는 보다 다듬어지고 노련해진 ‘내 이야기 장악력’을 기대해 보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아쉬움만으로 책을 평가 절하하기엔, 이 작가가 보여준 (첫 소설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문장의 여유와 당당함 같은 것들이 저는 너무나 좋았거든요.


위에 인용한 189쪽의 인용문 “위에서 내려다보며 앉아 있는”은 117쪽 “시가 생활에서 나오지 않고 책에서 만들어진다고 생각하는”과 결국 같은 말 같습니다.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를 읽으며 이 두 인용문이 거듭 떠오르더군요. 분명 소설의 내용은 정온하기 그지없는데, 희한하게 왠지 거북한 느낌. 주인공 도이치를 비롯하여 이 소설에 나오는 ‘지식인’의 면면이 하나같이 한가하고 느긋하다는 데에서 오는 거북함. 이 소설이 2025년작임을 감안한다면, 그리고 작가가 2001년생 일본인임을 고려한다면, 게다가 그에게 최고 문학상을 수여한 일본 문학계를 상상한다면, 어쩌면 스물세 살의 스즈키 유이는 상당히 고아한 방식으로 자국의 중견 문학인-지식인들을 비판한 게 아닐까 하는 상상마저 하게 됩니다. ‘이분들은 국제 정세나 자국 현안에 대해서는 정말 아무 관심이 없는 걸까? 현실 세계야 어떻든 괴테의 말을 읽고 찾고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맛좋은 요리를 하고 학회에 나가 토론을 하면 그만이라고 여기는 걸까? “위에서 내려다보며 앉아 있는” 그 자리가 문학과 예술의 본좌라고 굳게 믿는 걸까? 어떻게 이 정도로 한가하고 느긋할 수 있지?’라는 생각을 소설 읽으면서 안 할 수가 없었습니다.


가령, 본문 155~156쪽. 도이치 가족이 지진 뉴스를 보는 장면. 제목과 본문에 괴테를 표방하는 소설 안에 ‘지진’이라는 소재가 등장했습니다. 당연히 독자 입장에서는 유년기에 리스본 대지진을 겪고 신앙에 대해 회의감을 품게 되었다는 괴테의 생애를 떠올리게 됩니다. 스즈키 유이 본인도 동일본대지진을 겪었다고 하던데요. 그럼에도 소설은 뉴스 속보를 접한 직후에 식구들의 요리와 식사 장면을 배치했습니다. 지진 얘기는 더 안 나옵니다. 말 그대로 지진 뉴스는 이 소설에서 ‘지나가는’ 소재였던 것이지요.


또한, 163~164쪽. 도이치가 독일 유학 시절 사귄 현지인 친구 ‘요한’과 오랜만에 안부를 주고받는 대목. “결혼했고, 아이가 생겼고, 이혼했고, 화집을 냈고, 재혼했고, 아이가 죽었고, 일을 그만뒀고”라는 참으로 기구한 사연을 알고 난 뒤의 도이치의 입장을 소설은 이렇게 간추립니다. “밝은 내용만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요한의 변함없는 명랑함이 문장에서 전해졌다.” 명랑함이라⋯. 오랜 친구가 자식을 잃었다고 메일을 보내왔는데, 그 친구의 문장에서 “변함없는 명랑함”을 느끼는 지식인이라⋯.


이 또한 앞서 언급한 ‘노련미’와 비슷한 맥락으로 저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아직 세계의 일과 인간의 일을 다루는 훈련이 필요한 신예 작가라는 것. 그러고 보니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는 괴테를 평생 연구한 학자를 주인공으로 삼은 소설임에도, 괴테의 문학가 외적인 면모—괴테가 카를 아우구스트 대공의 총애를 받아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10년간 정무를 맡아 보았다는, 그러다 갑자기 말도 없이 훌쩍 여행을 떠났음에도 아우구스트 대공이 급여를 지급해 주었다는 일화는 유명합니다.—는 전혀 다루지 않았네요. 괴테를 전면에 내세운 작품치고는, 그 안에 그려진 괴테의 이미지가 그리 입체적이지 못하다는 인상을 받게 됩니다.


끝으로 이 소설을 국내 독자들에게 소개한 출판사에 대한 아쉬움도 몇 자 적어 봅니다. 인터넷 서점의 도서 페이지나 책 앞뒤 표지 어디를 봐도 ‘저희가 이 책을 여러분께 소개해 드리는 이유는’을 못 찾겠습니다.(도이치가 괴테의 말 출처를 못 찾듯.) ‘추천사’는 책의 홍보에 요긴한 요소이기는 하나, 역시 중요한 것은 ‘나로서의 출판사의 목소리’가 아닐까요. 이 소설의 국내판 편집과 디자인, 마케팅을 담당한 출판인들이 직접 해석하고 요약한 ‘이 소설을 읽어야 할 이유’를 홍보 문구로 삼아 주었다면 참 좋았겠다 싶습니다. 남의 추천사보다는 역시, 출판사의 목소리가 더 믿음직스럽게 들리니까요. 타국의 낯선 신예 작가의 첫 소설을 우리나라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입장이니 만큼, ‘주선자’로서 좀더 목소리를 내 주셨어도 좋았겠다 싶습니다. 굳이 이런 사족을 보태는 이유는,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의 추천사들이 정작 소설 자체와는 상당히 동떨어져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글. 임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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