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편소설 「기형도를 오독하다」 #4

“검은 잎이 떠오를 것 같아 / 곧 바다에”

by 임재훈 NOWer


검은 잎이 떠오를 것 같아

곧 바다에


두 줄짜리 메시지였다.

산에 있어야 할 사람이 왜 바다를 이야기하는지, 김은 선배의 문자들을 못 읽어냈다. 곧 열 시에 시작될 임직원 산행 취재가 걱정스러웠다.

회장님 포함 임직원 오십여 분이 함께 등산하시는 거라고, 현수막 촬영 시 ‘2014.04.16 씨엠씨그룹 창립 75주년 기념 임직원 창조등산’ 문구 큼지막하게 예쁘게 좀 담아달라고, 절대 지각하시면 안 된다고, 힘드셔도 정상까지 올라가주셔야 한다고, 하산 후 진행되는 오찬 행사 때까지 수고 좀 부탁드린다고, 씨엠씨 쪽 담당자는 이메일로 신신당부했다.

‘ 검은 잎들’이란, 취재 장소인 검단산의 첫 글자와 산중의 나뭇잎들을 갖다붙인 조어일지 모른다고, 김은 짐작했다. 선배는 시적 표현이랍시고 생뚱한 말짓기놀이를 자주 즐겼다. 아무렴 취재 앞두고 「입 속의 검은 잎」을, 그 어두운 시를 인용할 리는 없을 듯했다. 행사의 무게감을 잘 알 선배가 세월 좋게 시나 읊고 있으리라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 시에는 없던 ‘바다’라는 낱말이 김은 눈에 밟혔다.

그날은 사월 셋째 주 수요일 아침이었고, 그제까지 씨엠씨 측에 보냈어야 할 블로그 운영 주간보고서가 답보 상태였다. 사월 이주차 일평균 방문자 수 및 일주차 대비 증감폭, 주간 페이지뷰 동향, 두 집계를 종합 판단한 향후 운영 시사점, ······. 파워포인트의 슬라이드들은 더디게 채워졌다. 선배에게 전화를 걸어볼 여유가 김에게는 없었다.

외주 필자 투입 후 김의 업무량은 오히려 늘어나 있었다. 선배가 찍은 사진은 매번 구도와 노출이 어긋난 채여서, 보정 작업을 필히 거쳐야 했다. 원고도 문제였다. 수사가 과도하다고, 쓰신 분 주관이 너무 짙다고, 씨엠씨그룹 담당자는 늘 수정을 요청했다. 선배는 자기 글의 윤문을 완강히 거부했다. 업무 효율을 위해 김은 필자 통보 절차를 생략하고 자신이 바로 고쳐 담당자 승인을 받았다.

황 과장은 선배를 두둔했다. 씨엠씨 쪽 애들 글눈이 모자란 걸 어떡해. 필자 분한테는 씨엠씨 애들 피드백 굳이 전달하지 마. 황 과장의 배려가 김은 의아했다. 어차피 필자 관리와 원고 윤문은 다 부사수 몫이니, 사수는 아예 신경을 끄려는 심산인가 싶기도 했다. 과장님답지 않은 모습이라고, 몇 번을 말하려다 지나쳤다. 임신부에게 괜한 스트레스를 주고 싶지 않았다.

선배가 산에 갔어야 할 그날 아침, 사무실은 평소처럼 분주히 침묵했다. 직원들 모두 각자의 대행에 집중했다. 다만 여느 때 없이, 황 과장의 파티션이 울먹이고 있었다. 오빠, 뉴스 보고 있어? 애들 어떡해, 저 사람들 어떡해······. 남편과의 통화를 배려해, 김은 황 과장 자리로 걸려온 직통전화를 당겨 받았다. 씨엠씨그룹 쪽 담당자였다.

황 팀장님 안 계세요?

잠깐 자리 비우셨습니다. 저한테 말씀하시면 전달해드릴게요.

오늘 검단산 취재 안 오셔도 돼요. 필자 분한테 전달 좀 부탁드리고요. 윤해인 씨? 성함 맞죠? 전화를 몇 번이나 했는데 계속 통화중이에요 그분. 저도 지금 현장 지원 나온 직원들이랑 다같이 철수 중이에요. 회장님 지시로 이번 달 창립기념 행사들 일체 캔슬됐어요. 뉴스 보고 계시죠? 내일하고 내일모레 저희 사옥 탐방취재는 변동 없고요.

알겠다고, 황 팀장님께도 말씀드리겠다고, 김은 응대했다. 수화기를 내려놓자, 파티션들 속에서 떠오르는 뉴스 소리와 낮은 웅성거림이 또렷이 들려왔다. 임신 후 사무실 음소거 정책을 시행한―기획실 전 직원 주간 회의 때 태교를 위해 최대한 정숙한 분위기를 유지하도록 협조해달라고 말했다―실장도, 정수기 부근 파티션 쪽을 기웃거리며 웅성웅성 텀블러에 물을 뜨는 중이었다.

담배 피우러 나가려고 일어섰을 때, 김은 황 과장의 삼십이 인치 모니터로 그 배를 처음 목격했다. 헬기에서 조감 촬영 중인 듯한 영상이었고, 황 과장은 손가락으로 입술을 조몰락거리며 화면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흡연 구역에도 내려다보는 시선들이 자욱했다. 이층 영업전략실, 삼층 기술지원실, 오층 인사지원팀 흡연자들, 다른 건물에서 담배 피우러 온 사람들, 지나가다 멈춘 행인들 모두, 휴대전화를 모로 쥔 채 연기를 내리쉬며 가만했다. 그들의 액정 화면마다 그 배는 잠겨 있었고, 그래서 한 척이 아니라 여러 척의 배들이 동시에 가라앉는 것처럼 김에게는 느껴졌다.

선배가 보낸 두 줄짜리 문자 메시지를 김은 한 번 더 읽었다. 그러고는 사무실에서 들고 내려온 시집을 펼쳤다.


택시운전사는 어두운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이따금 고함을 친다, 그때마다 새들이 날아간다

(···)

침묵은 하인에게 어울린다고 그는 썼다

(···)

그리고 그 일이 터졌다, 얼마 후 그가 죽었다

(···)

그해 여름 많은 사람들이 무더기로 없어졌고

놀란 자의 침묵 앞에 불쑥불쑥 나타났다

망자의 혀가 거리에 흘러넘쳤다

택시운전사는 이따금 뒤를 돌아다본다

나는 저 운전사를 믿지 못한다, 공포에 질려

나는 더듬거린다, 그는 죽은 사람이다

(···)

내 입 속에 악착같이 매달린 검은 잎이 나는 두렵다


오십팔 쪽과 오십구 쪽 두 면에 걸친 「입 속의 검은 잎」을 김은 한참 내려다봤다. 검색어 입력만으로 수 년 전 게시물들을 현재 페이지에 불러오듯, 시는 선배의 대학 시절 말들을 그날 아침 안에 활성화시켰다.


택시를 탔어. 근데 너가 가야 할 방향이랑 정반대 길로 들어선 거야. 심지어 택시운전사가 죽은 사람이야. 좀비 알지? 너가 승객이면 어떻게 할래? 그래, 나도 너처럼 입을 못 열 거야. 무섭잖아. 입 열면 죽을 것 같잖아. 침묵은 하인에게 어울린다고 썼다가 그도 죽었다잖아.

이 시인도 너나 나랑 비슷했던 거 아닐까? 입 잘못 열었다 죽어서, 혀만 둥둥 거리에 떠다니게 되면 어쩌나, 이런 두려움이 있었던 거 아닐까? 이 시가 팔십구년에 발표됐으니까, 이 시인은 아마도 자신의 여전한 두려움으로써 그해 유월을 근조하고 있는 거 아닐까? 팔십칠년 말야.

망자의 혀들, 그 검은 혀들이 땅바닥에 낙엽처럼 깔려 있다고 상상해봐. 넌 어떨 것 같아? 너의 혀를 생각해보게 되지 않을까? 같은 해에 발표된 「가수는 입을 다무네」처럼, 이 시도 다물린 입을 명상하는 느낌 같지 않아?

이 시인은 너의 다물린 입을 억지로 열려고 하지는 않아. 그 대신, 너가 너의 다물린 입안을, 남의 다물린 입안을, 다물린 입들 속의 검은 잎들을 더듬게 하지. 자신의 혀, 산 자의 혀, 망자의 혀를 못 더듬는 사람들은 그래서 고함을 치는 거잖아. 고함 치는 데 혀는 필요 없으니까. 아무리 조곤조곤한 음성이라도, 그런 자들의 말은 다 고함인 거야. 그때마다 새들이 날아가는.


죽음의 이미지들로 점철된 시라고, 하지만 이 시가 그리는 죽음에는 혀가 달려 있다고, 살아서는 입 속의 검은 잎이었던 것이 죽어서야 혀로 떠오른 거라고, 그 혀들과 대화해야 한다고, 입 속의 검은 잎이 망자의 혀가 될까 두렵더라도 계속 말하기를 멈추지는 말자고, 이런 얘기들을 이 시인은 이 시에서 하고 있다고, 선배는 격앙된 얼굴로 긴 설명을 마쳤다.

열린 시집과 기억을 도로 닫고, 김은 휴대전화의 뉴스 앱을 열어 실시간 뉴스 중계를 실행시켰다. 바닷속에 잠겨 있어야 할 유선형 선체 밑바닥이 수면 위를 향한 채였다.

곧 바다에, 검은 잎이라니······. 김은 선배의 시적 발상이 오류이기를 바라며 손안의 배를 내려다보았다.

김이 주간보고 작성을 마치고 전화를 했을 때, 선배는 대학원에 가는 길이라고 했다. 내가 지금 누구를 좀 만나야 하거든? 이따 다시 연락해. 선배는 서둘러 끊었다. 씨엠씨그룹 담당자와 통화가 된 것이겠거니, 취재 취소 사실을 전달받았겠거니, 김은 안도했다.

몇 시간 후, 김이 황 과장과 점심밥을 먹고 난 오후 한 시쯤, 휴대전화 액정 안에는 바다만 가득했다. 완전 침몰, 이라는 속보 자막이 배 대신 떠올랐다.


사월 십칠일 목요일, 사무실은 내려다보는 시선들과 떠다니는 웅성임으로 부산스러웠다.

직원들은 휴대전화를 모로 세워둔 채 실시간 뉴스와 모니터를 아래위로 응시하며 일했다. 누운 배 위로 바다가 시트처럼 덮일 때, 노란 점퍼 무리가 체육관으로 입장할 때, 그중 하나가 라면을 먹을 때, 명이 아닌 구라는 단위로 승객들이 세어질 때, 파티션들의 웅성임은 사무실 전체에 너울졌다. 그러나 내려다보는 시선이 향한 곳에 업무는 없었고, 그래서 직원들은 주로 오전에 내려다보고 오후에는 정면의 모니터에 집중했다.

김은 내려다볼 새 없이 온종일 앞만 보았다. 황 과장한테서 씨엠씨그룹 담당자 응대까지 넘겨받은 상태였다. 내 전화 당겨 받았었잖아, 해보니까 별거 아니지? 그냥 예, 예, 대답하면 되는 거야. 이제 김 대리가 씨엠씨 애들 좀 맡아줘. 우성그룹 씨엠씨그룹 동시에 상대하려니 혼이 빠지네. 내가 요새 클라이언트 전화만 받으면 심장이 떨려. 몸에 안 좋을 것 같더라고. 미안.

미안함까지 일일이 응대하기에 김은 너무 바빴다. 그 무렵 황 과장과는 대리 진급 전만큼 수다를 떨지 못했고, 그 탓인지 조금 서먹해졌다. 하루 동안 황 과장보다 씨엠씨그룹 담당자와 더 많은 얘기를 하게 된 사태 속에서, 김은 틈틈이 흡연량을 늘려갔다.

시국이 시국인 만큼, 콘텐츠 톤앤매너를 최대한 평이하게, 뭐랄까, 너무 좀 하이톤은 아니게, 잔잔하게, 그런 느낌으로 재조정해주셔야 할 것 같거든요. 전문가시니까 제가 설명이 미흡해도 다 아실 것 같고, 다음달 콘텐츠 기획안을 지금 말씀드린 느낌으로, 전반적으로 톤다운을 해서 다시 만들어주시고, 오월치 수정안 주실 때 유월 기획안도 같이 주시면 베스트고요. 벌써 사월 삼주차니까 일주일 안으로 둘 다 보내주세요. 늦어도 이십오일 금요일까지는요.

아, 그리고요, 어제오늘 저희 사옥 탐방요, 제대로 진행된 거 맞죠? 제가 필자 분을 못 뵀거든요? 전화도 계속 안 받으시고. 한두 번도 아니고 진짜. 제가 이틀간 정신이 없어서 필자 분 참석 체크를 놓쳤는데, 김 대리님이 확인 좀 해주시고요. 원고 안 주셔도 되니까 사진들만 보내달라고 전해주세요. 사월은 아예 행사 홍보를 생략하는 걸로 결정됐어요. 그래도 내부 자료로 사진은 있어야 하니까, 잘 나온 것들 위주로 셀렉해주시고요. 다음 취재가 언제 잡힐지는 모르겠는데, 이제 김 대리님이 직접 맡아주셨으면 하거든요? 황 팀장님한테 진즉 말씀드렸는데 반영이 여태 안 되네요.

씨엠씨그룹의 필자 교체 건의를 왜 공유해주지 않았는지 굳이 묻지 않고, 김은 퇴근하는 황 과장에게 수고하셨다고 인사했다. 물으면 또 미안하다는 말부터 꺼낼 텐데, 미안해 하는 일은 태교에 좋지 않을 것 같았다.


검은 잎이 떠오를 것 같아

곧 바다에

지금 나올 수 있어?


수요일 아침의 문자에 추가된 금요일 밤의 한 줄을 이어 읽으며, 김은 이 세 줄이 하나로 이어진 메시지 같다고 생각했다. 곧 검은 잎이 바다에 떠오를 것 같으니 지금 나오라는.

나 지금 일하는 줄은 어떻게 알고?

너가 내 전화 안 받을 것 같아서 황 과장님한테 물어보고 온 거야. 너 나한테 서운한 거 있으면 절대 먼저 연락 안 하잖아. 어제 문자도 안 하고 전화도 없길래.

김은 담배 두 개비를 꺼내 자신과 선배 입에 하나씩 물렸다. 반대 순서로 불을 붙인 뒤, 어제오늘 취재 건들은 원고 없이 사진만 보내면 된다고 알려줬다. 선배의 코에서 긴 연기가 흘러나왔다.

더는 못하겠어. 그냥, 좀 힘드네. 남의 목소리만 대신 내주다 보니까 시 쓰는 감을 잊게 돼. 이러다 시인 말고 대변인으로 등단하겠어. 이거 위험해. 멈춰야 할 것 같아. 실은 이번주 취재 하나도 안 갔어. 사진도 당연히 없고. 미리 말하려고 했는데, 내가 워낙 급했었어. 대학원 사람들이 진도에 자원봉사 간다고 해서, 나도 끼기로 했거든. 휴학계 낸 사람들이랑 문인 선배들 몇몇이랑. 봉사 신청도 이미 다 했고. 내가, 우리가 안 가면 안 될 것 같아.

또다시 선배의 입에서 발설된 ‘우리’를, 김은 결국 못 지나치고 고함을 쳤다. 미숙함, 시적 감성, 시집, 시, 대행, 책임, 인생 같은 키워드들이 언성의 톤앤매너를 벼렸다. 한쪽의 일방적 주관을 늘어뜨린 숨 가쁜 만연체였다. 김과 선배 사이에도, 기업 블로그에도 쓰인 적 없는 낯선 문체였다.

남의 목소리 대신 써주는 일이 힘든 게 아니라, 자기 목소리를 여태 못 찾은 미숙함이 비통한 거 아니냐, 그런 미숙함을 시적 감성이랑 혼동하는 거 아니냐, 솔직히 선배가 읽는 시집들도 다 남의 시 아니냐, 자기 시를 못 쓰니까 그 대신 남의 시를 읽는 거 아니냐, 그게 내가 하는 대행이랑 뭐가 다르냐, 그걸 인정 못하니까 자꾸 내 생활까지 싸잡아서 자기 일상이랑 동류로 묶으려는 거 아니냐, 나한텐 지금 내 목전의 일들이 소중하고 또 그걸 지켜야 할 책임이 있으니까 금요일 밤에 이 시간까지 이러고 있는 건데, 선배한텐 대체 소중한 일이 뭐냐, 선배 눈앞에는 뭐가 있냐, 선배 인생에 내가 중요한 사람인 건 맞냐.

물고 있던 담배를 뱉고 가방 안의 새 장초를 꺼내 피웠을 뿐, 선배는 고함 앞에서 가만했다. 이윽고 김의 얼굴에 바람이 불었다. 연무가 짙은 시허연 미풍이었다. 분하다는 듯 바람은 풍속을 높여 두어 번쯤 더 돌진했다.


사백칠십육 명이래. 그 배 안에.

씨엠씨 직원 수도 그쯤 된다며. 잘 해, 대행.


영혼 같은 바람이다―

선배에게서 불어오는 바람을 김은 머릿속의 헤설픈 직유로 맞받았다. 아무리 내저어도 그 무엇도 타격하거나 접촉할 수 없는 망혼 같다고, 새들이 날아가듯 자신의 고함에 선배도 사라져 간다고.

바람은 곧 꺼졌고, 선배의 뒷굽에 밟혀 바스라졌다. 한참이 지난 뒤에야 김은 정신을 차렸다. 어디서도 바람은 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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