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편소설 「기형도를 오독하다」 #5

“조치원, 혹시 가봤어요?”

by 임재훈 NOWer


경력직 신입사원 기의 첫 출근 날, 김은 저녁밥을 사주었다.

입사일에 야근 시킨 게 미안해서는 아니었다. 자신의 첫날에 황 과장이 그랬듯, 새 부사수를 똑같이 응대한 것이었다. 황 과장처럼 김도 법인카드 대신 개인카드로 밥을 샀다. 그릇당 구천 원짜리 뼈해장국 집이었다. 법인카드의 야근식대 결제 한도는 칠천 원이었고, 황 과장도 김에게 구천 원어치 태국 쌀국수를 개인카드로 사주었다. 이천 원 보탰다고 지출 결의서 쓰느니 내가 사주고 말지. 법카 아니고 개카로 산 거예요. 잊으면 안 돼. 밥 사주러 가는 길에 김은 오 년 전 첫 퇴근을 떠올렸다.

기본 반찬으로 배추김치와 메추리알이 나왔다. 기는 김 앞에 내프킨을 깔아 수저를 올렸다. 비낀 젓갈 하나를 나머지와 평행 맞추고는, 두 손으로 물병을 쥐어 잡고 김의 컵에 조신히 따랐다.

뭘 이렇게까지 해요. 우리 회사는 이런 거 안 따져요.

팀장님이시니까···.

클라이언트 만날 때나 팀장이지, 우리끼리 있을 때는 그냥 대리라고 불러요. 거래처 사람들한테 없어 보이지 않으려고 사원은 대리로, 과장은 팀장으로 높여 부르는 거라. 아, 나도 시월에 입사했어요. 이천십일년.

그러십니까 팀장님. 아, 대리님.

군대로 치면 내가 고조할아버지 군번쯤 되려나?

부사수 역할 열심히 하겠습니다 대리님.

나도 좋은 사수 될게요. 시월 군번끼리 잘 지내봅시다.

뼈해장국이 놓이고서야 기의 곧추선 등은 조금 풀렸다. 국물 한 숟갈을 떠 먹은 기는 잔뜩 찌푸렸다. 뜨거워서 식혔다 먹으려는지, 숟갈을 내려놓고 메추리알 껍질을 까기 시작했다.

뼈에 붙은 살을 젓가락으로 뜯으며, 김은 교어할 화제를 고르고 있었다. 잡뼈들을 다 바르고 긴 통뼈를 손으로 붙잡을 때 기가 아, 하고 짧게 신음했다.


손 다쳤어요?

껍데기 끝에 살짝 찔렸나 봅니다. 별것 아닙니다.


김은 메추리알 접시를 자기 쪽으로 가져왔다. 죄송합니다, 대리님. 제가 까야 하는데···. 김은 대꾸하지 않았다. 느릿느릿, 머릿속에 뭔가가 불러들여지는 중이었다. 키워드 입력 후 한참 지나야 검색 결과가 뜨는 저사양 노트북처럼, 기억의 불러오기 속도는 메떴다. 어떤 키워드를 검색어로 인식해 이 불러오기 기능이 실행된 것인지도 확인 불가였다. 결과값이 나온 뒤에야 검색 키워드의 역추적이 가능할 것이었다.

마지막 메추리알 껍데기를 다 깔 무렵, 김의 머릿속 불러오기는 완료되었다. 기억의 결과값은 그 시집이었다. 검색 키워드는 아마도 ‘껍질’과, 이것에 찔린 기의 ‘손끝’인 것 같았다. 김은 면접날 사옥 밖에서처럼 기를 떠보기로 했다.

조치원, 혹시 가봤어요?

휴게소는 몇 번 가봤습니다. 고속도로 휴게소요.

고향이 어디예요?

서울입니다.

쭉 살았어요?

아뇨, 몇 달 전에 낙향했어요.

낙향? 예전 직장 나온 뒤에 지방 가 있었던 거예요?

친구 하나가 대전 쪽에 가게를 냈었어요. 개업 준비 도와주러 갔었거든요. 두세 달쯤 일도 같이하고 그러다가 올라왔습니다. 저는 계속 있고 싶었는데 부모님 때문에요. 회사 망해서 귀양살이 간 것도 아니고 뭐 하는 짓이냐고, 서울 생활 작파한 거냐고. 하도 성화셔서 어쩔 수 없이 낙향했습니다.

오늘 감사했습니다 대리님. 열심히 하겠습니다. 말씀은 편하게 해주세요. 버스에 오르기 전 기는 인사했다. 나도 잘 부탁한다. 행동 좀 편하게 해. 너무 예의 차리고 그러면 같이 일하기 힘들어. 허리 좀 펴고 다녀라 그리고. 정거장에서 김은 기에게 충고했다. 황 과장이 그랬듯, 새 직원의 첫 퇴근을 배웅해준 것이었고, 그러느라 간신히 마지막 지하철을 탔다.


이번엔, 진짜, 낙향입니다

달걀 껍질을 벗기다가 손끝을 다친 듯

사내는 잠시 말이 없다.

조치원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쳤죠. 서울 생활이란

내 삶에 있어서 하찮은 문장 위에 찍힌

방점과도 같은 것이었어요.


김이 기형도를 소지하고 외출한 것은 이 년 만이었다.

지하철 안에서 시집을 열 때, 김은 식당에서 불러들여졌던 기억들을 겨우 수습하는 심정이었다. 십팔 쪽부터 이십 쪽까지 이어진 긴 시가 그 취합 결과였다. 「鳥致院」의 몇 구절을 읽으며, 김은 서울로 낙향했다는 부사수의 얼굴이 왠지 이 시의 삽화여도 잘 어울리겠다는 상상을 했다.

면접 때 이 시집을 최근에 읽은 가장 인상 깊은 책으로 꼽았으니, 어쩌면 기는 이 시를 기억해서 부러 “낙향”이니 “서울 생활” 같은 시어들을 제 얘기에 끼워넣었던 게 아닐까···. 메추리알 껍질을 벗기다 손끝을 다친 제 행위로 인해 그와 비슷한 이미지를 품은 이 시가 머릿속에 맺혔던 게 아닐까···. 조치원에 가봤냐는 질문을 들었을 때 상대가 「鳥致院」을 안다는 걸 저 또한 직감하지 않았을까···.

김은 계속 역지사지해보다가, 자신과 부사수의 기억 회로, 아니 검색 알고리즘이 유사할지도 모른다고 추측했다.






연재 소설 <기형도를 오독하다> #6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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