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편소설 「기형도를 오독하다」 #2

“배 안에서는 누구나 다 운명이죠. 배 밖에서는 누구나 다 운명하죠.”

by 임재훈 NOWer


김의 기업 블로그 운영 대행 첫 클라이언트였던 씨엠씨그룹(Concrete Massive Creation Group) 담당자는 연관 검색어에 민감했다.

저희 사업 분야가 좀 많잖아요, 보험도 있고, 의약품도 있고, 외식, 화학, 신소재, 막 이렇게 있잖아요, 이중에서 화학 쪽 홍보가 많이 취약한 거 아시잖아요, 화학이라는 키워드를 포털에 입력했을 때 저희 회사명이 곧바로 연관 검색어로 뜨게끔, 블로그 콘텐츠 만드실 때 글도 글이지만 검색 최적화 쪽을 제일 신경써주세요.

김은 씨엠씨의 각 사업 영역별로 블로그 카테고리들을 편성한 뒤, 화학에 속하는 콘텐츠들 본문 안에 ‘씨엠씨’와 ‘CMC’라는 키워드를 부려놓았다. 그런 뒤 ‘이거슨 바로 흔한 세계적 기업의 위엄! 글로벌 화학 산업 1위 기업 씨엠씨그룹(이하 CMC)은 과연 어떤 노력과 열정으로 전 세계에 CMC의 이름을 알릴 수 있게 된 것일까요? CMC의 화학 사업 계열사인 CMC케미칼 R&D 센터에서 그 답을 찾았습니다.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한다!’ 같은 문장들을 써댔다. 얼마 후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씨엠씨 또는 CMC를 입력하면 씨엠씨그룹과 CMC케미칼이 연관 검색어로 활성화됐고, 역시 전문가다우시다고 담당자는 좋아했다.

전문가의 정의가 무엇인지, 자신이 전문가로 불려도 되는 것인지, 김은 자기 검열 차원에서 휴대전화의 사전 앱을 열어보기도 했다.


전문가, 專門家.

어떤 분야를 연구하거나 그 일에 종사하여 그 분야에 상당한 지식과 경험을 가진 사람.


사전적 정의를 들여다보며, 김은 대행사 직원으로서 나름의 지론을 세웠다. 실제로는 초보자인데 클라이언트로부터 전문가로 불린다면, 전문가로서의 모습을 대행해야 한다는 자세였다. 대행이란 클라이언트의 일을 대리할 뿐 아니라 나 자신을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상으로 갈음해야 하는 직무라고, 이래야만 진짜 대행 전문가라고, 입사 초 김은 인지했다.


지원서와 함께 첨부된 기의 포트폴리오에서도 전문가의 자질이 보였다. 경영 악화로 올초 폐업했다고 이력서 경력 란에 밝혀둔, 직원 수 열 명 규모의 대행사에서 쓴 원고였다. 게재처는 어느 친환경 화장품 브랜드의 공식 블로그였다. 식목일에 발행된 콘텐츠로, 도시림을 소개하는 내용이었다. 동일 어미 반복을 피하려는 노력이 문장마다 보였다. 나무를 심다, 식목하다, 가로수를 기르다, 회색 거리에 초록을 세우다, 도시의 바쁨 속에 숲의 가만함을 세워두다 등등. 나무를 심다, 라는 지시 대상은 어차피 고정된 것인데, 굳이 표현을 꼬고 어미를 교체하는 기의 분주함이 김은 친근했다. 무용한 짓거리를 성실히 보전하며 문장을 써나가는 요령 없는 성실함도 마음에 들었다. 클라이언트가 바뀌어도 대체로 동일한 대행 업무를, 이 친구는 어미 바꾸듯 다양히 수행해내겠다고, 대행 전문가가 되겠다고, 김은 호평했다.

김이 기를 고른 그 주에 곧장 면접 일정이 잡혔다. 황 과장 나간 지 벌써 두 달인데 과장급 채용이 영 션찮다고, 연봉들을 너무 세게 부른다고, 과장 몫까지 하는 사원급 뽑는 게 낫겠다고, 인건비 차원에서도 효율적이라고, 지원 일정도 어긴 친구를 콕 집었을 때는 그만 한 이유가 있을 것 아니냐고, 김 대리도 벌써 육 년차니 부사수 하나 키워야 하지 않겠냐고, 커다란 삼각숄을 두르고 앉은 실장은 통보했다. 그러면서 뜬금없는 말을 보탰다.

나 꼭 포춘텔러 같지 않아요?

두 손바닥으로 배를 문지르며 실장이 웃었다. 첫아이 가졌을 때보다 배가 더 예쁘게 둥글다고, 쌍둥이라 그런지 엄청 큰 크리스탈이 뱃속에 들어 있는 느낌이라고, 그래서 태명을 제시카랑 수정이로 지었다고, 남편이 걸그룹으로 키우자 했다고, 계속 웃었다.


배 안에서는 누구나 다 운명이죠. 배 밖에서는 누구나 다 운명하죠.

그런데 누구는 배 안에서 운명하죠. 저는 유산이랑 침몰이 늘 헷갈려요.


이렇게 말하는 대신, 김은 그냥 웃었다. 웃는 실장에 대한 예의로, 시도 아니고 펀(pun)도 못 되는 말짓거리가 우스워서, 배 안의 아이들한테 미안하기도 해서, 김은 배를 내려다보며 그냥 웃었다.

기의 면접은 사옥 일층의 직원 전용 카페 겸 접견실에서 진행되었다. 실장과 김이 말을 걸 때마다 기는 미간을 구부리고 들었다. 흡사 먼 대상을 바라보는 것 같은 얼굴이었다. 경청할 때의 버릇인 듯한 이 찌푸린 표정 탓에, 김은 기가 증명사진처럼 멀게 느껴졌다.

기의 목소리는 긴말하려면 목기침을 자주 해야 하는 탁성이었고, 입말은 간결한 문장이 못 되었다. 한 문장 안에 같은 단어를 너무 반복하는 탓이었다. 제가 입사 지원한 동기는 (…) 이런 동기로 입사를 지원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같은 식이었다. 포트폴리오의 성실한 어미 바꿈과는 정반대였다.

동본 유명인들의 이름을 들먹이며 제 존재감을 부각하던 치기 어린 활자들 또한 실물에서 전혀 읽히지 않았다. 서나 앉으나 구부정한 기의 몸태에서 김이 읽은 바는 숫기가 모자라 보인다는 점뿐이었다. 대화가 이어질수록 기의 예비 사원으로서의 해상도는 뭉개지는 것 같다고, 얘는 안 되겠다고, 김은 일전의 호평을 취소했다.

계약직 남자 바리스타가 아메리카노 세 잔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갔다. 회사 로고가 인쇄된 테이크아웃 잔 하나를 김이 앞쪽으로 밀었다. 기는 감사하다고 했다. 긴장한 거 아니죠? 목소리가 원래 그렇게 촉촉해요? 여자들이 좋아하는 음성이네. 실장의 농에 기의 앉은키가 조금 떠올랐다.

기의 이 년 경력은 평이했다. 친환경 화장품 브랜드와의 삼 년 계약 중 두 해째에 결원이 발생했고, 잔여기간을 위해 기가 충원된 것이었다. 계약 이행이 완수될 무렵, 기의 대행사는 차기 프로젝트를 수주하지 못해 고전하고 있었다. 화장품 브랜드의 블로그 운영을 비롯해, 어느 중견기업의 사외보 기획 및 편집, 몇몇 스타트업들을 위한 회사소개서 제작 등 일체의 대행 계약 건들이 비슷한 시기에 종료됐다. 전 직원 열 명이 육개월간 신규 프로젝트 입찰 피티에 매달렸고, 그 모든 과정은 결과적으로 폐업 수순이 되고 만 셈이었다. 군소 대행 업계에서는 흔한 사연이어서, 면접자의 장황한 설명이 김은 지루했다.

일 년 반 동안의 블로그 운영 대행을 통한 다채로운 콘텐츠 기획력, 제안서 작성 및 경쟁 피티 참여 경험, 밤샘 근무도 끄떡없는 체력이 자신의 강점이라고, 행주 기 씨들이 원체 활동력이 강해 기보배나 기성용 같은 훌륭한 운동선수들이 많다고, 제가 지원한 이 강소기업을 대기업으로 성장시키겠다고, 기는 자기소개서 내용을 부풀려 공언했다. 실장은 이 사족을 붙잡고 늘어졌다. 아직 결혼 계획은 없죠, 최근에 큰 수술 받은 적 없죠, 복용 중인 약도 없죠, 진짜 체력 좋은 거 확실하죠, 대행사 다녀보셨으니까 야근이랑 주말 출근은 익숙하시겠네요, ······. 기는 다 네, 라고 대답했고, 그러는 동안 양미간과 앉은키는 서서히 가라앉았다.

실장은 더 질문하지 않았다. 김은 이만 면접을 끝낼 양으로 실무와 무관한 허튼 질문을 던졌다. 자소서에 시인 이름도 언급했던데 책 많이 읽으시나 봐요. 최근에 읽은 가장 인상 깊은 책이 뭐예요. 기는 금세 떠올라서 답했다. 기형도의 『입 속의 검은 잎』입니다.

김은 기를 데리고 사옥 밖 흡연 구역으로 갔다. 배웅까지 하러 나와주시고, 감사합니다. 기는 제 라이터로 김의 담배에 먼저 공손히 불을 피우며 인사했다.


건물이 꼭 김처럼 생겼습니다.


기가 오층짜리 사옥에 대한 인상을 표했다. 그게 무슨 소리냐고, 김은 떠봤다. 한자 김요. 쇠 금, 쇠 김요. 박공지붕도 그렇고, 창문 없이 노출 콘크리트에 선분들만 그어진 외벽도 그렇고, 꼭 김처럼 생겼습니다. 아까 면접 때 말씀드린 그 시집에도 김이 나옵니다.

김이 접견실로 다시 돌아왔을 때, 실장은 기가 마음에 든다고 했다. 좀 헤설픈 구석은 있는데 해찰 안 하고 시키는 일 잘할 것 같아요. 자기주장 센 애들보다 훨씬 낫지. 김 대리가 내일 오후쯤 합격 연락 줘요. 다음주 월요일부터 출근하되, 정식 근무 시작은 수요일. 화요일이 이십오일 월급날이라, 수요일부터 근무시키는 게 급여 정산이 깔끔할 거라서. 황 과장도 좋아했을 타입 아녜요? 김 대리랑 약간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얼굴이랑 표정이. 실장은 김의 어깨를 두드리고 사층 기획실로 올라갔다.

김은 회사 밖으로 나가 담배 한 대를 더 피웠다. 평소에는 정면이나 아래로 뱉는 연기를 이번에는 위로 띄워보았다. 연기는 거푸 사옥 이삼층께에서 헤뜨러져서 김의 시선을 못 따라왔고, 건물 꼭대기에 이르도록 김의 시선은 기의 말을 따르지 못했다. 아무리 살펴봐도 金은 보이지 않았다. 김에게 회사는 金 같지가 않았다. 그보다는, 자신 같았다. 노출 콘크리트 외벽에는 창문뿐 아니라 간판도 없었는데, 기의 말을 따른다면 사명(社名) 없이 金으로만 존재하는 형국이었다. 대리 진급 이후에는 늘 성명이 아닌 김 대리 혹은 김 대리님으로 불리는 터라, 김은 새삼 자신과 이 회사가 닮았다고 느꼈다.




연재 소설 <기형도를 오독하다> #3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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