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편소설 「기형도를 오독하다」 #11

“단 한 편도 스스로 읽어낸 적 없는 이 시집에 처음으로 죄스러웠다.”

by 임재훈 NOWer


기를 보낸 뒤 김은 대공원 근처 편의점에 들렀다. 우산을 살까 고민하다가 결국 캔 사이다 하나만 집어들었다. 술집에서의 지출이 컸고 집에 갈 택시비도 고려해야 했다.

눈비가 졸아든 대신 바람이 세졌다. 물방울들이 안개뿜이처럼 파라솔 꽂힌 노상 테이블로 짓쳐들어왔다. 바닥에는 짓이겨진 라면 줄기 몇 가닥이 물기 위에 덧얼어 있었다. 검은 비둘기 두 마리가 김의 발밑을 쪼고 다녔다.

테이블 위에 캔 사이다를 올려놓고, 김은 크로스백 안에서 담배와 시집을 꺼냈다. 기가 몇 구절을 손으로 썼다는 그 시를 김도 알고 있었다. 십칠 쪽 한 면에 전문이 실린 「白夜」였다. 왜 알은체를 해주지 않았던가.


샘나서.


김은 솔직히 시인했다.

기와 친구는 포차를 열어 「白夜」의 시어 하나를 간판으로 달았다. 시를 참고해 술집 인테리어를 꾸몄다. 시를 시어들이 얌전히 잠긴 가두리 낚시터쯤으로 인식하는 자신과 달리, 기와 친구는 시를 저들만의 공간으로 열어놓았다. 시와 시어들을 가만히 내려다보며 편안해 하는 자신과는 판다르게, 그 둘은 지면 안에 다물려 있던 시어들을 현실의 공간에 풀어 손님들을 받고 술을 팔았다······ 김은 계속 부러워 했다.

기의 시 얘기가 김은 낯설기도 했었다. 아는 시임에도 기가 말하니 모르는 시처럼 들렸었다. 선배가 대여섯 번쯤 읽어준 그 시의 “仁川집”이라는 시어를, 김은 단 한 번도 술집으로 알아듣지 못했었다. “흑백의 字幕”이라는 시어 역시, 전혀 간판일 것이라 상상하지 못했었다. 이 시에 대한 선배의 해설은 그리 꼼꼼하지 못했었다고 책망하려다, 김은 부끄러워졌다. 지금의 시 읽기를 이 년 전 사람에게 대행 맡기는, 저 혼자는 낭독도 구연도 못 하는 무능한 클라이언트가 된 기분이었다. 지금은 비교적 선명한 이 년 전 사람이 십 년 전 사람으로 어렴풋해지면, 대신 읽어달라고 요청할 기억들도 의희해지고 말 것이어서, 그때가 되면 영영 이 시집은 닫혀버릴 것 같았다. 불현듯 이런 경각심이 들자, 김은 단 한 편도 스스로 읽어낸 적 없는 이 시집에 처음으로 죄스러웠다.


눈이 그친다.

인천집 흐린 유리창에 불이 꺼지고

낮은 지붕들 사이에 끼인

하늘은 딱딱한 널빤지처럼 떠 있다.


편의점 앞에서 김은, 「白夜」의 몇 구절을 소리 내 읽어봤다. 줄담배 탓인지 가래가 끓었다. 고함치듯 목기침해 탁성을 긁었지만 여전히 미성은 못 됐다. 다행히 비둘기들은 날아가지 않았다. 적어도 새들을 날려보내지는 않은 이 쉰 소리를, 김은 일단은 자기 목소리로 정하기로 했다.

한 번 더, 김은 같은 구절을 소리 내 읽다가 “하늘이 딱딱한 널빤지처럼 떠 있다.”는 행에서 시선과 독음을 멈췄다. 어쩐지 낯익은 상이었다. 왜 낯이 익은지를 간신히 기억해내고, 김은 이 시집의 첫 시 「안개」를 열었다.


어떤 날은 두꺼운 공중의 종잇장 위에

노랗고 딱딱한 태양이 걸릴 때까지

안개의 군단은 샛강에서 한 발자국도 이동하지 않는다.


「안개」의 “노랗고 딱딱한 태양”과, 십칠 쪽 「白夜」의 “하늘은 딱딱한 널빤지처럼”을 김은 번갈아 읽었다. “딱딱한”이라는 시어가, 이 두 시 사이에 난 통로의 양끝 입구 같았다. 김은 신기했다.

「안개」의 첫 행은 “아침 저녁으로 샛강에 자욱이 안개가 낀다.”였다. 본류에서 저만치 떨어진 외딴 사람이 떠오르지 않느냐고, 선배는 “샛강”을 짚으며 말했었다. 심지어 이 샛강에 아침이건 저녁이건 안개가 푹 끼어 있다니 얼마나 갑갑하고 앞도 안 보이고 미래가 불안하겠느냐고, 선배는 덧붙였었다. 안개가 혼자도 아니고 군단처럼 몰려온다니 포위된 패잔병 같지 않느냐고, 그러니 유행가 제목 같은 해뜰 날은커녕 해 자체가 저 얇은 공중에 노랗고 딱딱하게 걸린 잡동사니처럼 보이지 않겠느냐고도 했었다.

새 장초를 꺼냈다가 김은 도로 집어넣었다. 새벽 줄담배는 타목을 더 자극해 시 읽기를 방해할 것 같았다. 김은 시집을 쥐지 않은 다른 손으로 테이블 위 캔 사이다를 집어들었다. 얇은 얼음 막이 캔 바닥에 달라붙어 올라왔다. 김은 그걸 떼어내지 않은 채 마개를 열어 한 모금 마셨다.

「안개」의 “노랗고 딱딱한 태양”과 「白夜」의 “하늘은 딱딱한 널빤지처럼”을 짝해보다가, 김은 난감해졌다. 한 시는 태양을, 다른 시는 하늘을 딱딱하다고 하는데, 둘을 붙여놓으니 태양도 하늘도 딱딱해져버린 형국이었다. 왠지 지상을 겁박하는듯한 심상이었고, 격파라도 해야 할 성싶었다. 하지만 두 시 어디에도 파쇄나 파열의 이미지는 없었다. 무슨 수가 없을까 고민하다가, 김은 「안개」와 「白夜」 사이에 낀 “유리담장은 매일같이 깨어졌다”라는 시구를 발견했다. 시구가 속한 제목은 「專門家」였다. 김은 한자를 읽을 수 있었다. 전문가. 입사 초 클라이언트로부터 불렸던 호칭이자, 그 뒤로 성실히 자기 대행의 과제로서 자행해 온 직원상이었다. 선배가 설명해준 적도 기로 인해 불러들여진 적도 없는, 십오 쪽과 십육 쪽에 걸친 이 시 전문을 김은 천천히 소리 내 읽어보았다.


이사온 그는 이상한 사람이었다

그의 집 담장들은 모두 빛나는 유리들로 세워졌다


골목에서 놀고 있는 부주한 아이들이

잠깐의 실수 때문에

풍성한 햇빛을 복사해내는

그 유리담장을 박살내곤 했다


그러나 얘들아, 상관없다

유리는 또 갈아끼우면 되지

마음껏 이 골목에서 놀렴


유리를 깬 아이는 얼굴이 새빨개졌지만

이상한 표정을 짓던 다른 아이들은

아이들답게 곧 즐거워했다

견고한 송판으로 담을 쌓으면 어떨까

주장하는 아이는, 그 아름다운

골목에서 즉시 추방되었다


유리담장은 매일같이 깨어졌다

필요한 시일이 지난 후, 동네의 모든 아이들이

충실한 그의 부하가 되었다


어느 날 그가 유리담장을 떼어냈을 때, 그 골목은

가장 햇빛이 안 드는 곳임이

판명되었다, 일렬로 선 아이들은

묵묵히 벽돌을 날랐다


눈으로만 재독하며 여섯 연들을 오르내리니, 연마다 몇몇 시구와 시어 들이 눈에 띄었다. 김은 자신이 서툴게 읽고 본 바들을 가다듬어보기로 했다.

“담장들”이 “빛나는 유리들로 세워졌다”는 묘사는 “담장들”이 투명하다는 얘기겠고, 그렇다면 “담장들”의 이편과 저편은 실상 차단돼 있지만 표면적으로는 뚫린 것처럼 보인다는 뜻 아닐까. 김은 사무실 통유리 회의실의 상을 떠올려 “담장들”을 맞쐬어보았다.

뻔히 거기 있으면서 없는 척하는 이 “유리담장”은 “풍성한 햇빛을 복사해내는”데, “햇빛”은 A4 용지처럼 “복사”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므로, “유리담장”은 거짓 “햇빛”, 거짓 희망, 거짓 긍정을 무한정 뽑아내는 복합인쇄기 같은 개념 아닐까.

누군가에 의해 “유리담장”이 “박살”나기는 했지만, 담장 주인은 그래 봤자 상관없다는 투로 “유리는 또 갈아끼우면” 된다고 으스대고, 이 태도가 의미하는 바는 “아이들”로 상징되는 누군가들, 아마도 “담장” 주인이 노예로 부리는 무리의 힘으로써 “유리담장”은 끊임없이 재건돼 가짜 “햇빛”을 “또” “복사해”낼 수 있다는 확신 아닐까.

그런데 이 무리 중에서도 스스로 깬 자가 존재해, “유리담장” 말고 “견고한 송판으로 담을 쌓”아 “담장들”이 없는 줄 속는 이들을 깨우자 “주장”한 것이고, 결국 “담장” 주인에게 적발돼 “즉시 추방”된 것이 아닐까. 거짓 “햇빛”은 그 자체로 허상이라 “매일같이 깨어졌”고, 이걸 날마다 복원하느라 동네의 모든 “아이들”이 “담장” 주인의 “충실한” “부하”로서 “유리” “갈아끼우”기에 동원됐다는 얘기 아닐까.

“어느 날” “담장” 주인이 “유리담장”을, 즉 가짜 “햇빛” “복사”기를 “떼어”내고 떠났을 때, “그 골목”은 역시나 “가장 햇빛이 안 드는 곳임이 판명되었”고, 그럼에도 이미 노예화된 “아이들”은, 본래 그늘진 “그 골목”의 정체성조차 “복사”해야 한다고 인식해서, 저들을 부리는 주인 없이도 알아서 “묵묵히”, 이번에는 “벽돌을 날”라 “그 골목”을 암흑히 씌운 것 아닐까.

“담장” 주인이 “그 골목”을 떠난 이유는, “아이들”의 자발적 노예화에 “필요한 시일”을 다 채웠기 때문이 아닐까. “담장” 주인은 또 다른 “골목”에서 “유리담장”을 쌓을 것이고, 이런 식으로 모든 “골목”을 자신의 사업장으로 잠식하려는 심산 아닐까. 모든 “골목”의 “아이들”은 “담장” 주인을 대신하는 거짓 양지와 가짜 음지의 생산자로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묵묵히”, 세상의 진짜들을 “갈아끼우”고 칠하고 덮고 바르게 된다는 결론인 걸까.

또한 김에게 이 시는, 왠지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시선처럼 느껴졌다. 화자는 “담장” 주인이자 “이상한 사람”인 “이사온 그”와도 “아이들”과도 별 연고가 없어 보이는 먼 인물 같고, 그럼에도 “그 골목”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을 술술 서술하고 있었다. 게다가 “유리는 또 갈아끼우면 되지 / 마음껏 이 골목에서 놀렴”이라는 “담장” 주인의 발언을 인용하는가 하면, “견고한 송판으로 담을 쌓으면 어떨까 / 주장하는 아이”의 “즉시 추방” 사실까지 폭로했다. 기자의 취재 노트이거나, 어느 건물 옥상에서 조감 숏으로 잠입 촬영한 르포르타주 영상 같다고, 김은 이미지화했다. 작자인 시인이 기자였다는 과거 선배의 얘기를 참고한 발상이었다.

이어서 김은 “그 아름다운 / 골목”과 “그의 집 담장들”과 “아이들”을 내려다보는 화자의 시선을 상상했다. 그러자니 자신이 내려다본 장면들이 겹쳐지는 것 같았다. 이 년 전 사무실 모니터 안에서 가라앉던 그 배와 바다가, 오늘 우성그룹 십오층 회의실 창밖의 그 가수와 촛불들과 국기들이, 손안의 시집 위에 전부 떠오르는 듯했다.

김은 “아이들” 안에 자신도 속하는 것은 아닌가 싶어 불편해졌다. 이 불편함은, 선배의 ‘우리’라는 주어에 대해 늘 곤두세웠었던 감정이고, 어른이대공원에서 들은 기의 ‘우리’로도 촉발될 뻔한 화였다. 선배와 기의 ‘우리’는 이 시의 “아이들”과 반하는 개념일까, 그래서 내가 줄곧 ‘우리’에 취약했던 걸까, 김은 재차 자문했다.

“이상한” 전문가들이 “유리”를 “세”우고 “갈아끼우”는 동안, “묵묵히 벽돌을” 나르듯 날마다의 근속과 경력을 쌓아 올리고, 모니터와 휴대전화 액정 화면을 통해 “그 아름다운 골목”이 “가장 햇빛이 안 드는 곳임이 판명되”어가는 장면을 내려다본 나도 어쩌면, 부지불식 중에 “유리” “갈아끼우”기에 일조했었던 “아이들” 중 하나였던 걸까.

진도실내체육관 자원봉사를 얘기하던 선배는 “송판으로 담을 쌓으면 어떨까 주장하는 아이”였는데, 그런 선배를 내가 “골목에서 즉시 추방”해버린 것은 아닐까.

시어로는 등장하지 않는 전문가라는 제목은, 결국 “이상한 사람”을 가리키는 지시어인 셈이고, 직장 생활 내내 전문가를 지향해온 나는 “아이들”뿐 아니라 “이상한 사람”에도 해당되는 걸까.


시집을 닫았을 때, 캔 사이다 바닥의 얼음 막이 표지에 떨어졌다. 시인의 캐리커처 위에서 그것은 금세 녹았다. 김은 검은 코트 소매로 젖은 얼굴을 닦았다.






연재 소설 <기형도를 오독하다> #12(최종회)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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