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치지 않는 어른

<검은 사제들>

by 임재훈 NOWer

이 글에는 영화 줄거리가 일부 노출돼 있습니다.





<검은 사제들>이 보여주는 악이 단순한 악령으로만 그치지 않는 까닭은, 캐릭터들이 지닌 입체적인 개성 덕분입니다. 술담배를 하는 김 신부(김윤석 분)와, 교리 시험 때 컨닝을 하는 최 부제(강동원 분)는 정갈하고 고요할 것만 같은 사제의 전형성으로부터 저만치 벗어나 있지요. 그 벗어남의 정당함을 부여해주는 것은 그들이 속한 가톨릭이라는 조직의 극명한 이중성입니다. 영화 속에 묘사된 가톨릭은 오랜 시간에 걸쳐 장중하고 아름다운 이미지를 구축했고, 그런 고운 얼굴에 흠결이 나지 않도록 애씁니다. 이런 와중에 가톨릭 신자였던 어느 여고생의 영혼에 악령이 지박하면서 갈등이 시작됩니다. 부마 의식(엑소시즘)을 행하자는 김 신부와, 가톨릭의 고아한 이미지를 고수하려는 진영이 대립한 것이지요. 세상의 어둠(악)에 맞서 빛을 행해야 할 사제들이 눈앞의 악의 실체를 두고 대중성 운운하는 모습을 김 신부는 차마 삼킬 수가 없습니다. 기어이 뱉고 게워내고 맙니다. 고결함을 중히 여기는 원로 사제들에게 김 신부는 골칫거리입니다. 김 신부가 토해내는 주장들은 반박의 여지가 없는 의로운 목소리이고, 그걸 알면서도 ‘이미지’ 때문에 수용하지 못하는 원로 사제들은 매번 이궁해집니다. 많은 강자들이 그렇듯, 그들도 난처함을 돌파하기 위해 ‘힘’을 발휘합니다. 의인을 소외시키는 저력이란 그들에게 아무 것도 아닙니다. 원로 사제들의 점잖은 공작에 힘입어, 김 신부는 고독한 의사(義士) 캐릭터로 승격하지요. 부마 의식 전 “담배 한 대 피우고 들어가자”라고 말하는 김 신부의 모습은 그 자신의 대사처럼 “용역 깡패”스럽기도 합니다. 다른 사제들 중 그 누구도 직면하려고 하지 않는 ‘악’과 매일같이 맞서야 하는 그로서는 신앙인으로서의 고요함보다는 깡패의 우악살스러움을 택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사제복을 입은 그의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짙은 담배 연기는, ‘사제’라는 자기 정체성을 파괴하면서라도 ‘악’ 앞에서 도망치치 않겠다는 결단의 형상이기도 합니다.


김 신부가 의인 1세대라면, 그를 좇아 부마 의식을 돕기로 한 최 부제는 2세대라 할 수 있습니다. 서른이 채 안 된 어린 신앙인은 김 신부만큼이나 ‘도망침’에 반감을 갖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개에게 물려 죽는 여동생을 두고 달아나버렸던 나약함은 그에게 원죄로 남았지요. 신의 종이 되어 제 죄를 씻고, 여동생을 천국으로 인도하리라. 그러기 위해 결단코 다시는 도망치지 않으리라. 하지만 막상 악 앞에 서니 비장했던 각오는 온데간데없습니다. 자신을 노려보는 섬뜩한 악의 눈빛과 추악한 목소리는 최 부제를 얼어붙게 하고, 결국 그는 또 한 번 도망치고 맙니다. 다만, 그는 도망치다 멈춥니다. 가장 고통스럽고 절망적인 순간에 자신을 멈춰 서게 한 것, 그것은 바로 ‘의로움’이었지요. 김 신부 혼자 맞서고 있던 악의 공간에 복귀한 최 부제는 그제야 순수하게 당당해집니다. 악을 몰아내는 기도의 음성과 성호가 그 어느 때보다 앙칼집니다.


02.jpe ⓒ daum movie


<검은 사제들>이 주는 묘한 함의가 있습니다. 도망치는 어른과 직면하는 어른의 구분, 휘황한 번화가 골목 깊숙이 악령 깃든 여고생이 잠들어 있다는 설정(거리의 사람들은 그 골목의 존재조차 모르고 지나쳐 갑니다) 등이 그렇습니다. 스크린 밖 현실에서도 이미 낯익은 광경 아니던가요. 고등학생들과 여러 어른들을 태운 배가 바다 한 가운데에서 뒤집혔습니다. 캡틴이라 불리는 어른은 팬티바람으로 도망쳐 목숨을 부지했습니다. 물에 잠긴 아이들을 꺼내려고 투신한 민간 잠수사들이 청문회에 불려 나와 울부짖었습니다. 뒤집힌 배를 인양하겠다는 계획은 부지하세월입니다. 우리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이 현현한 사회 구조적 ‘악’은, 지금 번화가가 아닌 깊숙한 골목 안에 지박하고 있습니다. 흥을 잃은 이슈는 어둠 속으로 침잠하게 마련이지요. 국가를 운영하는 이미지 고운 수장과 휘하 각료들은 여전히 도망치기에 바쁩니다. 그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도망치고, 그 도망침의 반복으로 그들은 더 멀리 전진합니다. 쫓아가 붙잡기에는 속도 차가 너무나 큽니다.


03.jpe ⓒ daum movie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을 못 이루고, 악과 직면하기 전 담배 한 대를 태워야 하는 김 신부의 질퍽한 의로움은 곧 어른스러움이기도 합니다. 모두가 반대하는 부마 의식을 죽을 각오로 행하는 김 신부의 모티브는 ‘의로움’ 말고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이 일을 해야 하니까, 이 일을 하는 게 옳으니까, 단지 이런 이유로 김 신부는 날마다 악과 직면하는 것이지요. 옳은 일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김 신부의 의로운 어른스러움은 어린 최 부제에게로 전승되고, 그렇게 이 사회의 ‘악’은 단 한 사람이나마 숙적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한 명의 의인은, 악과 대적하는 한 명의 적입니다. 일 대 다의 싸움이라면 더 좋겠지만, 일 대 일로라도 매일같이 악과 직면하고 대적하는 의로움이야말로 사회구조적 악을 조금씩 벗겨낼 힘이 아니냐고 이 영화는 묻고 있는 게 아닐는지요.


도망치치 않는 모든 어른들을 위해 기도하며-




글_나우어(NOWer)

_회사에 다니며 영화 리뷰를 씁니다.

_저작

<잘나가는 스토리의 디테일: 성공한 영화들의 스토리텔링 키워드 분석> (피시스북 출판사)

<나답게 사는 건 가능합니까> (달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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