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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재훈 NOWer Feb 02. 2024

마이너리티-되기 ①

스타일이란 “일종의 외국어”


코로나 19 이후 시작된 사회적 거리 두기와 비대면 일상이 차츰 그쳐 가던 시기, 웨비나(webinar) 행사를 기획한 적이 있다. 디자인 스튜디오 일곱 팀이 설명하는 저마다의 작업 방식과 지론을 VOD 콘텐츠로 제작해 배포했다. 일종의 인터넷 강의였던 셈이다. 각 연사의 영상 촬영 전에는 예비 시청자들로부터 미리 질문을 받았다. 강의 후 이어지는 문답 코너를 위한 준비였다. 무관중 야구 경기처럼 참석자 없는 세미나였으니, 사전에 취합한 질문 꾸러미로라도 질의응답을 구현해 보려는 의도였다. 질문을 보낸 이들 대부분은 디자인학과 재학생 또는 독학으로 디자인을 공부하는 청년층, 기업 및 스튜디오 소속 인하우스 디자이너, 프리랜서 등이었다. 매회 빠지지 않고 들어온 질문이 다름 아닌 ‘스타일’에 대한 것이었다. 나만의 스타일을 구축하는 노하우, 클라이언트와 협업 시 디자이너 개인의 스타일은 결코 고집되어서는 안 되는 것인지, 자기 스타일을 작업 안에 관철시키면서도 클라이언트나 사용자들의 지지를 받는 방법 등이었다. 연사가 바뀔 때마다 당연히 해당 디자이너에 대한 질문들이 주를 이었는데, 그런 와중에도 스타일 질문은 늘 대동소이한 유형으로 고정적인 분량을 이루었다. 그만큼 스타일 문제가 디자이너 및 지망생들의 큰 관심사라는 방증이었다.


스타일은 모든 크리에이터들의 지상 과제 아닌가 싶다. 얼른 떠오른 예시가 유튜브다. 게임, 먹방, 미스터리, 브이로그, 캠핑, 투자 같은 특정 카테고리마다 대표 크리에이터라 이를 만한 ‘대형 유튜버’들이 존재한다. 모두 ‘나만의 스타일’을 구축하는 데 성공한 이들이라 할 만하다. 동일한 미스터리 카테고리여도 ‘돌비공포라디오’, ‘왓섭! 공포라디오’, ‘기묘한 밤’ 세 채널의 스타일은 유별하다. 초자연적 현상을 시청자(구독자)가 직접 제보하여 들려 주는 스타일, 전문 성우에 준하는 유튜버가 오디오북 형식으로 낭독하는 스타일, 유사 과학 내지는 뉴에이지 계열의 불가사의한 사례를 발굴하고 이에 대한 전문가들의 견해까지 취재해 구성하는 스타일.


문학적 글쓰기에서도 스타일은 주요한 숙제다. 저 유명한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쓴 프루스트는 일찍이 ‘외국어로 쓴 듯 읽히는 작품’을 양서의 조건으로 표명한 바 있는데, 이를 철학자 들뢰즈는 ‘스타일’이라 정의했다.


“좋은 책들은 일종의 외국어로 씌어진다⋯⋯.” 이것이 스타일의 정의입니다. 여기에서도 역시 생성이 문제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항상 메이저리티의 미래를 생각합니다(“내가 위대한 사람이 된다면, 내가 권력을 갖게 된다면⋯⋯”). 하지만 문제는 ‘마이너리티-되기’입니다. 즉 문제는 어린이·미치광이·여자·동물·말더듬이·이방인인 척하거나, 흉내내거나, 그들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것들로 생성되는 것입니다. 새로운 힘, 새로운 무기를 발명하기 위해서 말이죠.”


질 들뢰즈, 클레르 파르네 지음, 허희정·전승화 옮김, 『디알로그』, 동문선, 2005, 14쪽


“일종의 외국어”라는 프루스트의 표현은 마치 외국어처럼 낯설다는 의미일 것이다. 사전을 펼쳐 놓고 낱말과 숙어를 찾아 가며 한 줄 한 줄 읽어 나가는 외서처럼, 분명 모국어로 적힌 글임에도 독자들로 하여금 번역과 독해의 수고로움을 유발하는 작품. 이것을 들뢰즈는 문학의 스타일로 보았다. 흥미로운 대목은 스타일을 담보하기 위한 작가의 태도로 들뢰즈가 ‘마이너리티-되기’를 제시했다는 점이다. 단지 마이너리티의 배역을 연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작가 스스로, 그리고 작품 자체가 마이너리티로 “생성되는” 차원을 주문한 것이다. 메이저리티/마이너리티 대비는 들뢰즈의 철학 이론에 기대서만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개념이리라. 현대 철학자들도 난해하기로 손꼽는 들뢰즈 철학을 지금 이 본문이 소화하기는 불가능하다. 조심스럽지만 보통어의 차원으로 해독(또는 오독)해 보건대 상투성과 참신성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까. 일상성으로 고정되고 명사화된 상투성을 배제하고, 작가와 작품이 몸소 비일상의 소수자로 화현하고 육화하여 스스로 낯섦 자체가 되어야 한다는 훈시가 아닐는지. 그러나 낯섦은 일시적인 감각이다. 시간이 지나면 낯익은 것으로 닳아진다. 그러니 작가는 한곳에 정주하지 못하고 부단히 새 ‘마이너리티’를 찾아 배회할 수밖에 없다. 한 모습으로 멈춰 있기를 허락 받지 못해 거듭 새 몸을 구하러 다닌다. 어떤 의미에서 작가는 자기 작품의 영원한 세입자다. 문학뿐 아니라 여러 예술 분야의 공통 기제인 ‘낯설게 하기’란 곰곰 숙고할수록 무시무시한 말이다.


스타일이란 이렇듯 동사적 개념이다. 고유한 스타일, 일관된 스타일 같은 표현들은 비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크리에이터의 갈등이 야기된다. 고유하고 일관되며, 게다가 세련미까지 갖출 경우 눈에 잘 띄기 때문이다. 스타일리시한 디자이너, 특색 있는 작가, 개성 넘치는 크리에이터로 한 번 지목되고 나면(한마디로 인플루언서로 뜨면) ‘마이너리티-되기’의 동인은 약해지기 마련이다. 더는 새 몸을 찾아 돌아다닐 필요도 없고, 있는 듯 없는 듯 고독히 존재하는 소수자적 창작 행위도 청산할 수 있다. 오랜 클리셰인 ‘사랑이냐 성공이냐’에 필적할 갈등이 크리에이터의 내면에 소용돌이친다. 당사자가 알아서 할 일이고 타인이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다. 단, 그를 바라보는 ‘워너비’ 집단이나 그를 메이저리티로 승격해 준 이들에게는 고하고 싶다. 진지한 크리에이터란 기본적으로 ‘마이너리티-되기’를 업으로 삼은 사람들인지라 그 거처도 ‘메이저리티-된’ 이들 바깥에 마련된 경우가 많다. 그 거주지 안에, 들뢰즈가 말한 바와 같은 “생성”이 쉬지도 않고 구동되고 있다. 그 생성의 소음과 진동에도 꾸준히 귀 기울여 주기를. 만약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들을 향한 음소거 버튼이 눌려 있었다면 지금이라도 해제해 주기를.


― 「마이너리티-되기 ②」로 이어집니다.

― 메인 이미지: 마르셀 프루스트의 육필 노트(출처: Austin Kleon Tumblr)






글쓴이. 임재훈

윤디자인그룹이 운영하는 온라인 디자인 매체 『타이포그래피 서울』의 에디터로 근무했다. 타입·타이포그래피 전문 계간지 『더 티(the T)』 9·10·11호의 편집진 일원으로 일했다. 경기도시공사, 한국언론진흥재단, 효성그룹 등 국내 기업 및 기관의 홍보 콘텐츠 제작에 참여했다. 저서로 『실무자를 위한 기업 홍보 콘텐츠 작법』과 『잘나가는 스토리의 디테일』, 공저로 『나답게 사는 건 가능합니까』와 『소셜 피플』(총 8부작)이 있다. 2023년 단편소설 「공동(空洞)」으로 스토리코스모스 신인 소설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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