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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재훈 NOWer Feb 02. 2024

마침시작: 책격 명상

『디자인-글쓰기』 연재 종료


맺는 말의 글제를 ‘마침시작’이라 지었다. ‘마침’과 ‘시작’을 붙인 조어다. 맺고 마치자 닫히는 것이 아니라 다시 새로 열리는 시작점이 되기를 바랐다. 「The Beginning is the End is the Beginning」이라는 스매싱 펌킨스의 노래 제목처럼.


디자인 비전공자이자 문예창작학과 전공자로서 디자인 업계에서 일할 때, 태도 정립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말이 있다. 어느 나이 지긋한 북 디자이너로부터 하사 받은 귀한 말, 책격(冊格). 사람의 인격처럼 책에도 책격이 깃든다는 의미다. 그 깃듦의 작업이 바로 북 디자인이라 했다. 책에 격을 부여하는 일. 북 디자인은 단순히 책이라는 몸에 근사한 맞춤복을 입히는 일이 아니다. 책 안의 글이 품은 목소리, 주장, 정서, 결 등을 종합적으로 감각하여 그에 걸맞은 격조를 시각적으로 생성해 내는 일이다.


늘 격을 생각한다. 눈앞의 업무, 마감할 글, 리뷰할 디자인, 인터뷰할 디자이너, 감상할 전시, 대화할 상대, 그리고 일상에서 마주하는 갖가지 시시콜콜한 다반사. 이 모든 대상에 격을 부여하듯 나날을 설계해 나갈 수 있을까. 그 가능성을 숙고해 본다. 책이라는 사물에 격을 부여한다고 인식하는 북 디자이너의 작업 태도가, 생각지도 않게 삶의 여러 영역에 적용되는 것이 신비로웠다. 낯선 업계에서 허둥지둥 쩔쩔매다 비로소 디자인과 디자이너를 ‘인간적으로’ 좋아하게 된 계기였다.


『디자인-글쓰기』도 독자들에게 그러한 격을 부여 받을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이 얇은 책이 디자인을 하고 글을 쓰는 크리에이터들의 든든하고 만만한 벗이 되기를 희망한다. 책 제목의 ‘디자인’과 ‘글쓰기’가 붙임표로 이어졌듯, 현실에서도 디자이너의 세계와 글 쓰는 작가의 세계가 어우렁더우렁 함께 돌아갔으면 좋겠다. 어린아이 입속의 알사탕 두 개처럼.


글 쓰는 일을 하지만 여전히 디자인과 디자이너들을 선망한다. 문창과가 아니라 시각디자인학과를 들어갔다면 어땠을까 하는 실없는 상상을 아직도 자주 한다. 업계와 시장이 허락하는 한 오래도록 ‘디자인-글쓰기’를 이어 나가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디자인-글쓰기』는 저자 개인의 디자인 애호를 밝힌 소명서이기도 하다.


작디 작은 온라인 디자인 매체 『타이포그래피 서울』을 위해 있는 힘껏 각자의 이야기를 펼쳐 준 인터뷰이들, 필자들, 자문위원들 모두에게 감사하다. 에디터로 일하는 동안 알게 모르게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장경아 작가님께도 감사하다. 그리고, 만약 무협 소설을 쓰게 된다면 생불(生佛)의 경지에 이른 무림 최고 은둔 고수 캐릭터로 오마주를 표하고 싶은, 북 디자이너 정병규 선생님께 특별히 감사하다.


― 책 소개(도서 콘셉트, 분량, 차례, 작업 일정 등): 바로 가기

― 메인 이미지: 전주 삼례책마을 석조물, 직접 촬영





글쓴이. 임재훈

윤디자인그룹이 운영하는 온라인 디자인 매체 『타이포그래피 서울』의 에디터로 근무했다. 타입·타이포그래피 전문 계간지 『더 티(the T)』 9·10·11호의 편집진 일원으로 일했다. 경기도시공사, 한국언론진흥재단, 효성그룹 등 국내 기업 및 기관의 홍보 콘텐츠 제작에 참여했다. 저서로 『실무자를 위한 기업 홍보 콘텐츠 작법』과 『잘나가는 스토리의 디테일』, 공저로 『나답게 사는 건 가능합니까』와 『소셜 피플』(총 8부작)이 있다. 2023년 단편소설 「공동(空洞)」으로 스토리코스모스 신인 소설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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