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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바이지은 Jan 31. 2023

일흔 살 부모님께 세배를 했다

이번 설날은 우리 세 식구에게 새로운 도전이었다. 친정과 시댁 근처에서 살다가 먼 거리로 이사와 귀성하는 첫 번째 명절이기 때문이다. 나름 머리를 쓴다고 연휴기간보다 하루빨리 내려가 하루빨리 올라오는 스케줄로 이동했는데 완전 낭패였다. 역시 꾀는 나만 부리는 게 아니다. 평소라면 2시간이면 갈 거리를 갈 때는 4시간, 올 때는 5시간이나 걸렸다. 이걸 일 년에 두 번씩 해야 하다니, 도대체 누굴 위한 명절인가 싶었지만, 부모님께 세배를 하며 생각을 고쳐먹었다.

 



평소 부모 얼굴을 얼마나 자세히 들여다보는가. 그동안은 대체 부모의 얼굴 아닌 무얼 보며 이야기를 건넸던가. 분명 정확히 아는 얼굴이라 생각했는데 눈에 비친 모습이 너무 생경해 깜짝 놀랄 때가 부쩍 잦은 요즘이다. 이마에 푹 패인 주름이, 꺼져버린 눈과 볼이, 고루 퍼진 검버섯이, 힘없는 눈동자가, 중력에 굴복해 처져버린 얼굴 살이 어느 날 문득 선명하게 각인되면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세배를 받기 위해 자리에 앉은 두 분의 모습을 봤을 때도 그러했다. 


가정사 없는 가족은 없다지만, 우리 집도 사연이라 하면 대서사극으로 연재할 수 있을 만큼 사연 맛집이다. 아직도 내 마음을 괴롭히는 많은 응어리들이 있다. 유년시절 사랑받고 자랐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대답할 수 있다. 학창 시절 일기장엔 불만이 가득했다. 좋은 대학 가려고 공부한 게 아니라, 징글징글한 집구석을 떠날 수 있어 열심히 공부한 나였다. 아빠는 무관심했고, 엄마는 야속했으며, 나는 사나웠다. 나는 사나운 딸이었다.


학창 시절 작용 반작용 법칙을 배울 때, 그 개념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그래, 내가 이토록 사나운 건 다 부모탓이다. 부모가 매정하고 야속하게 한 작용 탓에 내 거친 반작용이 나오는 거다. 그러니까 내 사나움은 합당한 것이었다. 그렇게 살았다. 당당하게.

 



그런데 이 감정은 무엇인가. 세배를 하기 위해 두 손을 포개어 이마로 올리는데 눈앞에 보이는 늙은 부모는 왜 이렇게 쪼그라져 있는가. 목울대가 울렁이고 눈가가 뜨거워졌다. 어느새 저렇게 늙어버렸단 말인가. 내 나이 먹은 건 생각 못하고 또다시 부모가 야속해졌다. 늙은 부모에게 남은 게 무엇일까. 얼마 후엔 병이 들고, 또 얼마 후쯤 이별을 해야 하겠지. 앞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얼마쯤일까. 


우습게도 다시 작용 반작용 법칙이 생각났다. 난 분명 후회를 하겠구나. 부모가 노쇠한 작용 탓에 난 또 좀 더 잘해드릴걸 하는 회한의 반작용 나날들을 보내겠구나. 아득해졌다.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터질 것 같은 눈물을 꾹꾹 밀어넣으며 절을 했다. 두피가 훤히 보이는 엉성한 머리숱과 이미 늙은 얼굴로 흐뭇하게 웃고 있는 부모가 보였다. 아, 나는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세배를 할 수 있을까. "엄마 아빠,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어느 때보다 진심으로 말했다. 일흔 살 부모님께 세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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