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주, 생일파티. 저녁에 하는 일들
기다리던 수요일. 빨래, 간단히 청소, 거창하게 아침, 차분히 읽었던 시편, 잠언, 전도서..
다음 주 콘서트 연습하려 처음으로 빌린 비올라를 꺼내 들어 연습했는데 크고 악보 읽기가 생각보다 어려웠다. 그냥 새로운 시도라고 만족하기엔 재밌지 않은 수준.. 그래도 아직 시간이 있음에 다행이다. A의 연습곡도 악보가 하나 더 있다는 것을 오늘에서 알았고, 쿠프랑인것이 반가우면서 쉽지 않은 곡임을 깨달았다. 짧게 로까뗄리 연습, 씻고 M선물 사러 샤틀레. 노엘로 인해 모든 게 화려해진 시간들.
a이 일하는 학교에서 연습했다. 처음 읽는 곡이고, 쿠프랑은 리듬이며 뉘앙스가 쉽지 않은 곡이라 둘인데 긴장되었다. 그래도 연습한 게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다음날 저녁에 있던 연습에선 덜 놓치고 덜 당황했다.
알록달록한 장식구와 흰 부츠로 꾸며진 스페인 풍 음식점에서 M의 생일 파티가 있었다. 그의 친구들 열댓 명과 그의 형제들을 초대해 함께 저녁을 먹는 시간. 나는 지하철에서 선물을 포장하고 선물 개봉시간에 그녀가 그것을 열지 않길 원했다. 여러 키트가 들어있는 게 왠지 다른 친구들과 선물 방식이 달라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마음에 드는 린스, 에센셜 오일, 자기 전에 마시는 차, 노트와 연필..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준 건데 그게 창피한 건 또 웬 말.. 선물에 수준을 부여하는 나 자신이 웃기고, 진짜 내성적으로 변했음에도 놀랍다. 그녀의 오빠가 내 앞자리에 앉아있었는데, 그때만 해도 그가 누구인지 몰랐는데 그는 내게 ‘네가 우리 엄마를 아는구나?’ 해서 내가 너네 엄마를 어떻게 아냐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그의 가족 사이에서 나는 알려진(?) 존재였다. 그들이 프랑스인이기에 당연한 거겠지만, 가족의 생일을 같이 무리하지 않고 축하해줄 수 있는 형제들이 곁에 있다는 게 왠지 부러웠다.
목요일은 J가 이번 주에 학교에 오지 않을 거라 했으니, 굳이 일찍 가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된다고 스스로 이성적으로는 알겠는데, 이상히 보게 되는 눈치에 교장에게 연락을 했다. 그러나, 설명도 없고, 애걸복걸하는 것도 아닌 단호하고 명랑하게 ’ 10시쯤 갈게 ‘라고 했다. 덕분에 덜 피곤했고, 기차역에서 악기를 멘 사람들을 몇몇 찾아볼 수도 있었다. 옆 플랫폼에서 네덜란드로 떠나는 기차를 보면서, 이곳으로 가는 걸까 영국일까 벨기에일까. 연주를 떠나는 그들이 부럽기도 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내가 살아보지 않은 삶이라 부러운 걸지도 모르겠다고 싶기도 했다. 그래도. 해보고 싶은 마음.
도착해서 깨달은 것은 J클래스 아이들이 왔고, 학교에 모든 아이들이 있었다. 그래서 원래 플래닝대로 해도 되었지만, 내가 늦게 왔고, 그래서 일주일에 다분했던 M 반 클래스 애들 수업을 하지 않았다. 그런 나의 선택과 단호함(?)들이 다른 선생님들에게 어색할 서 있는데, 나 스스로도 어색하기도 한데, 내 권리와 내 선택에 소리를 좀 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모두가 떠난 빈 학교에서 43일 전 아이를 나은 S와 통화를 했다. 외롭고 힘든 시간. 산후우울증을 겪으면서도 더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는 그가 대단했다. 이번 겨울엔 한국을 안 오냐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녀도 그걸 알고 있었다는 듯이 묻는 것 같았다. 핸드폰에 띄어놓은 디데이 때문 일 것이다. 이 부분에서도 마음이 불편했는데, 이 부분에서는 굳이 단호하지 않아도 되고, 유순하게 굴어도 되겠다고 생각된다.
저녁에 채운 음악으로 오랜만에 나의 악기가 소리를 찾은듯하여 설레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