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한국일보 신춘문예, 정신
동화 <딱 좋은 날> (단편)
(1)분량과 단락장
원고지 4985자
<단락장>
한 작품은 7~8개의 단락장으로 이루어진다는 말씀에 따라 나누어 보았습니다.
일기 쓰기를 싫어하는 담이와 곰이. 벌칙을 말할 대 엄마 눈동자는 새벽별처럼 반짝거린다.
일기 쓰는 방법을 지도하는 엄마. 왜, 반성, 느낌, 솔직하게, 성심껏 쓰라고 함.
일기를 안 쓰기 위해 아무것도 안 하기로 함.
오줌 마려운 것도 참다가 가랑이를 타고 흘러내리는 걸 보고 청설모가 놀림. 일기거리를 만들지 않기 위해 싸우지도 않고 생각하지도 않으려고 참고 또 참는다.
오소리 아줌마가 곰이한테만 당근사탕을 줌. 사탕을 당장 먹으려는 곰이와 만류하며 꾀를 부리는 담이 사이의 갈등. 결국, 돌멩이로 사탕을 깨어 곰이가 한 조각 먹고 담이는 부스러진 사탕가루를 삼킴.
엄마가 냇물에 빠졌는데 흑곰이랑 멧돼지 아저씨가 구해줌.(짧은 장면)
집에 돌아온 엄마는 하루를 돌아보며 친구의 소중함과 가슴 벅찬 소감을 말함. 사탕보다 훨씬 기억에 남는 일이 생겼다고 곰이가 사탕을 몽땅 먹어버리는 바람에 담이와 뒤엉켜 싸움. 반성하는 일기를 쓰라고 하는 엄마.
투덕투덕 싸우다가 지쳐 벌러덩 드러누워서 아무 일도 안 일어나기엔 하루가 너무 길다고 말하는 담이. 일기를 열 줄은 절대 넘기지 않을 거라며 둘은 입이 찢어지게 하품을 한다. 일기 쓰기에 딱 좋은 사늘한 가을밤이다.
(2) 읽은 느낌과 그 이유
∎사건
어릴 적 일기 쓰기 싫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어쩌면 지금도 일기나 글쓰기는 그닥 가벼운 일은 아닌 듯하다. 정말 쓰고 싶을 때 쓰는 건 하지 말라고 말려도 하게 되는데 매일 숙제로 쓰는 일기는 그야말로 형벌이었다. 담이와 곰이도 그랬을 것이다. 거기다가 엄마는 어떻게 써야 하는지 기준까지 제시한다. 지침이고 도움말일 수도 있지만 강요하는 길은 걷기가 싫어진다.
왜, 반성, 느낌, 솔직하게, 성심껏. 무슨 불문율처럼 들었던 일기 쓰기 지침이 이 동화에도 나온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작가는 초등교사이거나 이 또래의 아이를 키우는 엄마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일방적으로 가르치기보다는 이런 동화로 부드럽게 접근하며 일기 쓰기를 지도하려는 엄마의 의도가 보였다. 그런 면에서 학부모나 학생들에게는 동화속에 감추어진 유익함, 재미 이면에 감추어진 실용적 혜택을 떡에 묻어있는 고물처럼 덤으로 먹게 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이름
‘곰이’와 ‘담이’라는 이름에서 이 아이들은 곰돌이일거라고 생각했다. ‘귀에 난 잿빛 털이 쭈뼛 섰습니다’라는 문장을 읽으며 토끼인가 싶었다. 그러나 다시 읽어보니 벌써 첫머리 두 번째 문장에서 ‘쌍둥이 토끼’라고 알려줌. 하지만 이 문장을 벗어난 이후로도 계속 곰이와 담이는 곰돌이로 읽혔다. 엄마조차도 그랬다.
엄마가 물에 빠졌다고 했는데 어떤 물에 빠졌을까 싶어서 다시 읽어보니 냇물이었다. 곰이 얕은 냇물에 빠져서 허우적댔단 말이야? 싶었는데 토끼라고 바꿔보니 이해가 됨. 흑곰과 멧돼지 아저씨는 그 덩치로 든든한 친구 이미지로 그려졌다. 토끼로 완전 이해하기 전까지는 곰, 흑곰, 멧돼지 이렇게 그려짐.
게다가 ‘담이’와 ‘곰이’는 누가 보아도 담이는 영리하고 곰이는 곰처럼 둔아게 읽히는 이름이다. 담이가 말하는 문장은 그 이름과 맞물려 경쾌하고 산뜻하게 읽히고 곰이의 단순한 문장은 아둔하게 읽힌다. 이름에서 이미 그 성격 절반은 드러난다.
그래서 소설이든 동화든 등장인물 이름짓기도 더없이 중요하다는 생각임.
∎구성
청설모나 오소리를 등장시켜 상황을 전환시키는 방법, 엄마가 물에 빠지는 사건으로 크나큰 일기거리를 만들어 곰이가 사탕을 먹어버리는 갈등 연출. 이런 구성은 작가의 철저한 구성력이 돋보였다. 그러니까 작품을 쓰기 전에는 반드시 시놉시스가 먼저 그려져야 한다는 결론.
(3) 가장 좋은 부분과 그 이유
∎ 좋았던 부분
<문장>
담이가 또 물었습니다. 담이는 질문하는 걸 좋아합니다. - 질문하는 아이를 예쁘고 긍정적으로 표현함.
담이의 통통한 볼이 발그레해졌습니다. - 칭찬받는 아이의 표정을 효과적으로 표현함. 생생하게 그려짐. 읽는 독자도 같이 칭찬으로 볼이 발그레지는 느낌.
벌칙을 말할 때 엄마 눈동자는 새벽별처럼 반짝거립니다. - 생생함. 엄마 표정을 유심히 살피는 아이들 관찰 시선을 그대로 옮긴 듯함.
높푸른 가을 하늘엔 새하얀 구름이 점점이 흩어져 있습니다. - 일기 쓰기 좋은 날을 조성하기 위한 문장. 아이들도 정말 이런 날이 일기 쓰기 좋은 날일지 의구심이 일었다. 딱 놀기 좋은 날이 아닐까?
오늘 아무 일도 안 일어나면 되는 거야. 아무것도 안 하고 아무 생각도 안 하고. - 아이들만 할 수 있는 기발한 생각이다.
햇빛은 따사롭고 실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와 코끝을 간질였습니다. - 최상의 날씨. 더없이 좋은 날. 하지만 뭔가 폭풍 전야같은 문장. 아니나다를까 바로 오줌 사태가 발생한다. 그래서 반전의 효과가 있는 문장이다.
“바보야, 싸우면 너 일기 써야 돼!” - 아, 담이는 고객의 약점과 필요성을 알고 무한경쟁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살아남을 아주 영특하고 영악한 아이다.
‘넓다넓어’ 호수 열두 바퀴 돈 기억, ‘높다높아’ 산꼭대기까지 토끼뜀한 일.. - 호수와 산 이름 작명이 신선하고 노래 연습 안하고 산수 문제 안 풀었다고 혼난 체벌이 새롭지 않은데 새롭게 읽히는 것은 아마도 호수와 산 이름 때문이 아닐까 싶다.
담이도 아줌마를 간절한 눈빛으로 쳐다봤지만 아줌마는 그저 미소만 짓고는 가던 길을 갔습니다. 담이가 자잘하게 부스러진 사탕가루를 입안에 쏟아 부었습니다. - 영악한 담이도 당근사탕을 간절히 먹고 싶어하는 아이였구나.
담이와 곰이는 엄마 품에 와락 달려들었습니다. 엄마는 둘을 꼭 안아 주었습니다. - 동화에서는 이런 절대 사랑을 체험하는 장면을 반드시 넣어야 한다. 그게 동화를 읽는 아이를 감동시키는 ‘눈’이 될 테니까.
“왜! 내 사탕인데!!” - 와작 사탕을 깨물어버리는 곰이를 향해 담이가 욕심쟁이라고 하자 곰이가 한 외마디 외침이다. 그렇다. 늘 담이 뜻대로 하던 곰이도 자기 의사대로, 자기 욕구대로 움직이는 주체적인 인물이다. 동화를 읽는 아이들도 곰이처럼 수동적인 인물에서 주동적인 행동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될 것이다.
일기 쓰기에 딱 좋은, 사늘한 가을밤입니다. - 수미쌍관식 구성. 글의 완성도를 높이는 문장. 완결된 느낌. 하지만, 정말 아이들도 사늘한 가을밤이면 일기 쓰기를 좋아할까 싶잖다.
∎가장 좋은 부분과 그 이유
→ 아이들은 동화를 읽으면서 다양한 상황을 경험한다. 그런 상황 속에서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조력자가 되기도 하고 엑스트라가 되어보기도 한다. 그 역할에 따라 다양한 감정과 갈등, 시선, 마음, 삶을 미리 경험하는 과정이고 체험이다. 숲속이나 무인도로 모험을 떠나고, 이상한 나라 앨리스처럼 상상세계로 빠져들기도 하고, 질병과 위험으로 고난을 극복하며 삶의 근육을 키우고 이웃의 따듯한 보살핌을 받고 베푸는 과정도 걸어본다. 어른들의 소설이 피흘리지 않는 시물레이션인 것처럼 동화도 그에 못지 않을 것이다.
문학이 주는 상상이라는 세계는 그렇다. 인생길에서 맞닥뜨릴 위험과 감동, 고난과 행복의 과정을 미리 예습해 보는 간접 경험이다. 그렇다면 동화는 어때야 할까? 동화에서는 어느 순간이든 사랑을 체험하는 장면이 필요하다. 일기를 쓰기 싫어하고 엄마의 새벽별처럼 반짝이은 눈빛이 부담스럼지만 갇등 중에도 서로를 귀하게 여기는 마음을 확인하는 동작은 필수다. 그런 문장은 어린 독자를 감동의 블랙홀로 끌고 간다. 그게 동화를 읽는 아이를 감동시키는 ‘눈’이 될 테니까.
[한국일보 2014 신춘문예 - 동화 부문] 당선작 : 딱 좋은 날 (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