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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섯손가락 Apr 24. 2024

존재의 증명(정지아)

취향이 곧 본질

취향이 곧 존재의 본질


당신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방황이 청소년들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여러 세대의 다양한 고민과 방황을 담아 창비에서 『방황하는 소설』을 묶었다. 삶은 곧 방황이며 방황은 삶의 일부라며 이 책 만남이 뜻깊은 여정이기를 바란다고 서문에 밝혔다. 모두 일곱 편이다. 정지아, 박상영, 정소현, 김금희, 김지연, 박민정, 최은영의 소설이다.


일곱 편 중 가장 앞에 실린 작품은 <존재의 증명>이다. 정지아는 ‘90년에 ’빨치산의 딸‘로 시작하여 <아버지의 해방일지>가 최근작이다. ’이웃집 혁명전사‘ 빨치산 아버지의 죽음 이후 장례를 치르는 삼일 동안 이야기다. 정지아의 첫문장은 언제나 강렬하다. ’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로 시작한다. 그의 문장이 진지함을 넘어 희화한 느낌이 있는 반면, ’존재의 증명‘은 철학적이다. 까뮈의 ’이방인‘ 첫문장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잘 모르겠다‘처럼 인류의 영원한 질문,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는 소설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으로 증명되는가?


그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전혀 알지 못했다. 에티오피아 하라를 다 마시기 전까지는. 2팝 초까지 중배전했는지 깊은 다크 초콜릿 향이 인상적인 하라였다. 하라는 랭보가 가장 사랑한 커피이기도 했다. 스무 살에 이미 시와 결별한 랭보는 연인 베를랜과도 결별한 후 세계를 떠돌았다. 그러다 자리를 잡은 곳이 에티오피아의 하라였다. 시를 버린 그는 하라에서 무기와 커피를 파는 무역상이 되었다. 시와 커피와 무기...... 이 세 가지는 공통점이 있었다. 없어도 인간이 사는 데 별 지장이 없다는. 저항과 반항의 상징이었던 시인 랭보는 삶 자체를 부정하고 싶었던 것일까?(13쪽)


주인공 ’그‘는 기억을 잃었다. 이름도 집도, 직업도, 나이도, 전화번호까지도 기억하지 못한다. 지금 카페에 앉아서 커피 하라를 마시고 있는 자신을 보고 있을 뿐이다. 왜 여기에 왔는지, 언제부터 있었는지도 모른다. 식은 커피가 싫어서 완샷을 두 번 시키고, 비오는 날에는 피베리를 마시는 사람, 커피를 잘 알고 좋아하는 사람임을 인지한다.


하라를 한 모금 머금으면 은은한 신맛이 제 존재감을 드러내고 그 맛을 채 음미하기도 전에 다크 초콜릿 향이 치고 올라오고 삼키면 달달한 허니 향이 오래도록 입 안에 맴돈다고 말한다. 피베리를 좋아하는 이유는 ‘첫 키스한 여자를 집에 들여보내고 돌아선 기분처럼 서운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라고 했을 정도로 그의 커피 취향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다.


그러나 기억을 소환할 만큼 강력한 각성제는 못 된다. 3단 지갑에도 아이폰7에도, 트위터에도 자신의 정보는 없다. 네 개 트위터에는 음식, 의자, 조명, 여행에 관한 남의 사진과 글만 가득 차 있다. 친구도, 연락처도, 가족도 안 보인다.


카페 나와 길을 나섰다. 거리는 익숙했다. 청년이 알려준 파출소로 가서 지문 조회까지 하지만 그는 존재하지 않는다. 경찰의 교과서식 영어 질문에 “아 돈 리콜 왓 랜드 아 켐 프롬.”이라는 대답으로 보아 영국 보스턴이나 동부 뉴욕 부근 거주자로 추측될 뿐이다.


과학기술의 힘을 빌려 감시 카메라를 둘러본다. 그의 동선을 추적한 결과 인근 아파트 211동 701호가 집이다. 집 소유자는 53년생 송경자. 핸드폰 개통자 62세 송기갑 부산 사망자와 비슷한 연령대다.


701호 그의 집은 최소한의 것만 있다. 미니멀리즘 라이프. 엘이디 등, 그레이 토고 소파, 크리스틸 스툴, 채워진 곳보다 빈 곳이 있어 사물들이 존재감을 드러냈다. 가구나 소파는 사람을 구속하지 않는다. 그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은 정보나 사람이 아니라 바로 그것이었다. 커피와 가구. '그'는 누구인가? 기억을 잃은 자가 자기 존재를 증명하는 방법. '그'는 무엇으로 증명되는가? 정지아는 ‘취향’이라고 답한다.


취향은 돈이 결정하지 않는다. 사람의 품격이 취향을 결정한다. 아니, 전제와 결론이 바뀌는 편이 더 진실에 가깝다. 취향이 사람의 품격을 결정한다. 취향이 곧 사람의 본질인 것이다. 기억은 사라져도 취향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는 그렇게 믿었다. 그게 그였다. 토고 소파가 잠을 불렀다.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채 편안한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혼란스럽고 고단한 하루였다. 그는 여전히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자신이 누구인지 몰라도 상관없었다. 이 집의 공간을 채운 것들이 곧 그였다.(37쪽)


취향이 무엇인가? 좋아하는 것, 즐기는 것, 행복을 느끼는 것일 게다. 그가 가구와 커피에 관심이 많고 즐기듯 나는 무엇에 매료되는가 싶다. 아이들이 어릴 적에는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는 데 전념했고 행복했다. 화초를 키우며 피어나는 꽃을 보며 미소를 짓기도 한다. 출처도 기억나지 않는 사주풀이에서는 재배와 양육이 적성이라 했다. 그래서일까. 요즘은 화초를 넘어 채소를 재배하는 취미도 생겼다. 더 나아가 글쓰기로 나만의 세상을 창작하는 기쁨이 있다고 하면 과장일까. 그러고 보니, 나의 존재를 증명할 요소는 변화와 성장을 이끄는 몸짓이다.  


<존재의 증명>은 취향의 첨단을 건드린다. ‘그’가 좋아하는 커피와 가구를 머릿속에 그리려면 수없이 검색하고 시간을 투자해야만 작품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독자는 난감하면서도 미지의 세계를 여행하는 신선함도 맛본다. 커피 마니아가 느끼는 감각과 찻잔, 의자, 조명과 소파, 스툴의 아름다운 디자인을 눈에 담는 검색 활동이 그랬다. 취향이란,  랭보에게 시와 커피, 무기처럼 없어도 사는 데 지장이 없지만 '그' 존재를 증명하기에는 가장 예민한  본질이다. 작가가 주인공이 되어 내면과 시선을 섬세하게 그린 덕에 ‘그’가 바라보고 생각하는 세상으로 한동안 깊숙이 들어가 살다가 빠져나온 느낌도 이 소설이 주는 차별적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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