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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바속촉

인생의 노래 한 곡과 애송시

by 다섯손가락

인생의 노래 한 곡과 애송시


한동안 나의 애송시는 정지용의 ‘향수’였다.

고향을 떠나온 뒤 그리워하는 마음은 절절했으나

적합한 시는 찾지 못했다.

‘내 고향 남쪽 바다~’ 같은 가곡 정도였다.

대학 시절 월북 작가들이 해금되면서 정지용의 ‘향수’를 접했다.

나의 마음을 우찌 그리 잘 담아냈던지

그 이후로 울적하면 그 시를 읊조리곤 했다.

모임에서 시를 낭송할 기회가 있으면 당연히 ‘향수’였다.

한동안 계속 그랬다.


오늘은 이형기의 ‘항복에 대하여’를 선택했다.

북 투어 과제로 애송시를 골라야 하는데

‘향수’는 신선하지 않다.

집에 있는 자료를 이것저것 만져보고

인터넷에서 여기저기 검색도 해 보았다.

우연히 다른 글을 읽다가 발견한 시가

오늘의 ‘항복에 대하여’이다.


하늘을 향해 앙상한 가지만 뻗어올린 겨울 나무,

기를 쓰고 가지려는 ‘행복’에서

작대기 하나를 버리면 되는 ‘항복’

얼마나 홀가분한가.

항복을 하고 나면 더 이상 후퇴하지 않아도 된다.

마지막이다.

모두 내려놓고 하늘 향해 빈손으로 올리기만 하면 된다.

최후의 몸짓이다.

이젠 자유다.


애송시는 흐른다.

머물지 않는다.

세상만사가 그렇듯이

우리 삶의 양상도 흐를 것이다.

끝을 모르는 강물처럼.


내 인생의 노래 한 곡을 뽑으라면,

노사연의 ‘만남’이다.

결혼식 피로연에서 불렀던 노래다.

그 시절 유행했던 노래이기에 그랬다.

남편은 기억하지 못한다.

강산이 두세 번 바뀔 만큼 세월이 흘러서 그런 게 아니다.

신혼 첫해에도 그랬다.

이젠 더 이상 논쟁도 안 한다.

그러니 되레 힐끔힐끔 쳐다본다.

나는 답으로 보일 듯 말 듯 삐쭉이고 만다.

남편은 그 정도 표정을 읽을 만큼 눈치는 있다.


‘만남’은 이제 더 이상 생각하기도 싫다.

남편을 대체할 만한 동갑내기 가수가 ‘강산에’다.

동창회 축제에도 초청가수로 왔던 그.

어쩐지 한편으론 통쾌하다.

약간 허스키에 가슴이 뻥 뚫리는

이 가수가 마음에 든다.

그의 노래 중 뭐니뭐니해도 ‘연어’가 당긴다.

물살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들처럼

나도 발바닥이 딱딱해질 때까지

걸어 걸어 걸어 가다보면

저 넓은 꽃밭과

나에게 뜨겁게 부서지는 햇살을 보게 되리라.

오늘은 ‘연어’다.

아니 ‘강산에’다.


그러고 보니

어쩐지 겉과 속이 다르게 선정한 듯하여

제목도 ‘겉바속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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