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마음 읽기
S 조교 전화가 왔다. 원고 수정에 대하여 말했다. 예전과는 달리 분량에 제한을 두지는 않지만 인용문은 삭제하기를 요청했다. 작가가 허용하면 쉽게 해결될 문제라 생각하고 간단히 대화한 후 끊었다.
중간다리 역할을 할 책방 실장한테 물으니 답은 명쾌하다. 작가는 괜찮다고 하더라도 출판사에서는 입장이 다르다고 한다. 한 문장, 한 단락에 대하여 차별적으로 원고료를 요청한다는 설명이다. 그러니까 조교샘이 말하고자 한 요점은 인용문을 빼라는 것이었지만 작가가 아니라 출판사와 마찰이 생길 수 있으므로 아예 넣지 말자는 말이었다.
몇 단락 끌어다 붙인 부분은 애써 골랐던 내용이다. 내 글을 더욱 단단하게 지지해 줄 받침돌 같은 문장이었다. 덕분에 그 작가와 비슷한 정서와 글솜씨를 갖춘 듯하여 어깨에 힘도 들어갔다. 남의 글을 다 지우고 나니 이빨 빠진 어린애 치열처럼 듬성듬성하다. 빈 곳이 자꾸 눈에 밟힌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처음부터 내 글이 아니었고 허락없이 사용했던 것을...
업어온 녀석들을 모두 제집으로 보내도 3500자가 넘는다. 적당한가. 모두 끌어안고 있을 때에는 4500자가 넘었다. 1000자 씩이나 오려서 붙였다고 생각하니 낯이 뜨거워진다. 하지만 오픈 플랫폼에서는 자유롭게 하지 않은가. 이런 공간을 찾아 다녀야겠다. 경제 논리에 휘둘리지 않는 곳으로.
오랜만에 필사팀을 만났다. 화면을 사이에 두고 얼굴을 맞대지만 우린 낯설지 않고 거북하지도 않다. 어느 분의 기억처럼 우린 만난 지 삼백 일을 넘어서고 있다. 그냥 얼굴만 보고 수다만 떠는 사이도 아니다. 마음과 생각, 경험과 철학을 담아 글로 만난다. 삼백 일이 아니라 삼천 일은 사귄 것 같다.
오늘 두 시간 화제는 다양했다. 그중에서 가슴에 선명하게 새겨지는 말. 읽어야 할 글이 너무 많이 밀려드니까 숙제처럼 여겨지고 모두 읽기는 힘들더라는 의견. 게다가 글 분량이 너무 길어지니까 질리더라는 평이다. 그러니 나의 원고가 인용문 삭제로 3500자로 변신한 건 행운이다.
* 오늘의 지침
- 업어온 남의 글은 나의 글이 될 수 없다.
- 독자 마음 헤아리기
- 독자도 바쁘다. 긴 글은 지겨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