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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로운 뉴욕의사 Aug 21. 2020

죽음에 관한 두 가지 오해.

호스피스 완화의학 두 달 남짓 하면서 내가 알게 된 것들.

완화의학을 이제 겨우 두 달 정도 하면서 알게 된 것은,

매일매일 죽음의 사투를 벌이는, 혹은 죽음을 목전에 둔 환자의 마음은 

절대 이해할 수도, 공감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 모두 매 순간 천천히 죽어가고 있지만, 

이렇게 막연히 조금씩 죽어가는 것과 

암 진단을 받고 온갖 치료를 받으면서 액티브하게 죽어가는 것은 확연히 차이가 난다. 


그래서 그런 사람한테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보다는

그냥 조용히 그 사람의 말을 들어주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들어서

난 그냥 조용히 듣는다. 

그리고 완화의학 의사를 하면 이 사람이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사는지 등을 빠른 시간에 알 수 있는 질문들을 하게 되는데 그러면서 병원 밖에서의 이 사람의 삶은 어땠을까... 를 혼자 생각해보곤 한다. 


    지난주 호스피스로 가신 A 씨는 벌써 10년 넘게 암투병을 해 오셨다. 이번에는 재발해서 장이 막혀서 오셨는데, 수술을 해 볼까 하다가 더 이상은 안 될 것 같다고 해서 호스피스로 가셨다. 나랑 나이도 비슷한데 가족이 없다고 해서 유난히 마음이 쓰이던 분인데, 참 밝고 긍정적이어서 내가 참 좋아하는 환자분이었는데, 어느 날 우리 어텐딩이 "A양 아버지가 어느 나라 대통령이래~" 그러시길래 진짜? 하며 만인의 친구 구글을 돌려봤더니 헉 진짜다. 그런데 나를 더 헉~ 하게 한 것은... 그녀의 이름과 함께 제일 먼저 뜬 사진 중에 하나가 그녀의 결혼사진이었다는 것이다. 아니, 3년 전에 결혼한 그분은 지금 어디에 있는 건가...? 


    그 사실을 알고 나서 너무 마음이 안 되어서 더 잘해 주고 싶었는데 사실 뭘 더 해 줄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래서 호스피스 시설로 가는 날 아침에 우리 오늘 마지막이네요? 하면서 가기 전에 올 수 있으면 얼굴 보러 한 번 더 올게요~ 하고 이리저리 바쁘게 일을 하다가 점심때가 되어 문득 맞다! 하고 올라가 봤더니 때마침 A씨는 운반용 침대에 실려 엘리베이터 앞에서 요원들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I caught you right before you leave! 타이밍이 환상이죠?" 


하면서 인사를 하려는데... 참 애매했다. 

호스피스로 가는 사람에게 '잘' 가라고 인사하기도 그렇고, '잘'지내~라고 말하기도 애매하고.  그래서 그냥 이번에 입원한 동안 당신을 알게 되어서 너무 좋았다고 말해주고는 엘리베이터 문 닫힐 때까지 같이 기다려 줬다. 우리 A씨, 어떻게 지내고 계실런가... 



    반면 B 아주머니는 최근에 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하신 후 1달이 넘도록 병원에 입원해 계신다. 내가 처음 만난 아주머니는 완전 까칠하고 무표정에 묻는 말에 답만 딱딱 하시는 분이셨는데, 더 무서운 건 그분 파트너다. B 아주머니보다 세 배는 더 무뚝뚝한데, 내가 문진 할 때마다 옆에서 실수라도 하면 잡아먹을듯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셔서 우리 어텐딩한테 나 그 방 들어가면 무섭다고 그러기까지 했었다. 그런데 매일매일 몇 주간을 보다 보니 점점 친해져서 어느 날 아침에는 두 분이서 대화를 나누고 계신데 언성이 좀 높으셔서, "어우야 나는 두 분 싸우는 줄 알았네. 나니까 이제 익숙해져서 가만히 있지 다른 사람 같으면 경비 불렀을 걸요?" 이런 농담을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내 말을 듣고는 두 분 "우리 안 싸워야~ "하면서 막 웃으시더니 그러고 보니 예전에 우리 친구 한 명이 너네랑 절대 차 같이 안 탈 거라고 그랬었어. 그러신다. 30여 년을 함께 해 오신 두 분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렇게 궁합이 잘 맞았단다. 


    원래 수술 예정 날보다 하루 전날 문제가 생겨서 응급 수술을 하게 된 아주머니였는데, 처음 뵀을 때는 경과가 별로라서 이거 낫겠나... 싶었는데 사랑의 힘인지 신기하게 나날이 좋아지시더니 곧 집에 가시게 되었다. 아주머니,  이젠 좀 다정하게 조곤조곤 사랑을 속삭이고 계시려나...  





    그리고 또 한 가지 알게 된 것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죽음인, 저 위의 배경 사진처럼 집에서 평소에 쓰던 침대에 누워 가족 친구들에 둘러 싸여 눈을 감는 것이- 물론 나도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 중에 하나다-, 정말로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질병을 앓다가 수술이라도 하게 되면 회복하는데 한두 달은 거동을 잘하지 못하고 그저 병상에 누워있게 되는데, 고령에 그렇게 장기간 누워있게 되면 상처가 회복된 후에도 거동을 잘할 수 없다. 그래서 대부분은 bed-bound로 상태가 점점 더 나빠지고, 그래도 기필코 거동을 하려면 물리치료라도 해야 하는데, 우리가 물리치료하면 흔히 생각하는 운동선수 재활 치료 같은 그런 치료가 아니라, 자리에 똑바로 앉는 법, 걷는 법, 이런 생활의 기본적인 동작들을 다시 배우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먹는 것도 잘 먹지 못하게 되어서 튜브를 박거나 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생기고, 여하튼 이 모든 것을 집에서 할 수 있게 되려면 엄청난 서포트가 필요한데, 대부분의 가족들은 그것을 감당해 낼 수가 없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시설로 가게 된다. 



    오랜 기간 동안 어텐딩을 하다가 펠로우를 하니 책임감의 크기에서 종종 헷갈릴 때가 있는데, 응급의학과 시절 생사가 오가는 큼직큼직한 결정을 성큼성큼 해야 하던 것에 익숙해져 있던 나라, 지금 여기서 자그마한 디테일들의 결정을 어텐딩과 의논해서 결정할 때, 어디까지가 주도적인 펠로우가 적극적으로 매니지를 해 가는 것이고 어디부터가 선을 넘는 것인지가 애매하다. 그래서 처음에는 엄청 조심하다가 이제는 그냥 이러이러하니 저렇게 하자고 내 생각을 말하는 것을 연습하고 있다. 그래도 말 정말 예쁘고 섬세하게 잘하시는 분들이 오글오글 모여있는 우리 과에서 간단명료 직설화법에 익숙한 내가 내 생각을 말하는 게 난 아직도 참 조심스럽다.  이 것도 연습하면 나아지겠지. 


    예전 응급의학과 할 때 운전석에서 전두 지휘하던 시절의 막중한 책임감에서 벗어나, 지금처럼 환자 케어 뒷좌석에 앉아서 결정은 primary team과 어텐딩에게 맡기고 그저 돌돌 얹혀가는 지금의 역할이 은근 마음 편하고 참 좋다. 많은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는 이런 기회를 가진 것에 감사하며 하루하루 보람차게 보내야지. 

 

사진은 역시나 인터넷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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